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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함께하는 이야기

육군2사단 40km 혹한기 복귀행군 동행취재

별빛 쏟아지는 연병장, 아름다운 전우애 가득

군 훈련의 양대산맥 유격·혹한기 훈련.
유격이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혹한기는 추위와 배고픔이 추가된 야외 전술훈련의 ‘종합선물 세트’라고 할 수 있다. 군에 다녀온 예비역이라면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혹한기 훈련.
군문을 나선 지 15년이 흐른 지난달 22일 강원도 양구군 일대에서 펼쳐진 육군2사단 독수리연대 장병들의 40km 혹한기 복귀행군을 함께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갈무리했다.


“설마 40km 못 걸을까.”
군을 전역한 지 15년, 불혹(不惑)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편안한 등산복 차림 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웠다. 그러나 그것이 자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후 1시30분 출사표가 던져졌다. 수능 시험일만 되면 한파가 찾아오듯 힘든 야외취재 때마다 기온이 급강하는 건 왜일까? 쉴새없이 불어오는 북풍한설에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고 산야를 꽁꽁 얼려버린 한파는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완주할 수 있을까? 공보장교 말대로 조금만 걷다 차에 탑승할까? 데스크도 무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잔머리’를 굴리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중 ‘그럼 기사는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 죽이되든 밥이되든 갈 때까지 가보는 수밖에….
다행히 최악의 기상조건으로 산악 위주의 행군로가 평탄한 둑방길로 급변경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오후 6시, 야간행군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길을 재촉한 결과 20km 가까이를 걸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완주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차갑게 식은 밥을 뚝딱 해치우고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발걸음을 뗐다. 강원도 첩첩산중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지가 언제였던가.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영롱한 별빛은 욱신거리는 무릎의 통증을 잊게 해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등산화 덕분에 발은 이상 없었지만 칼바람과 강추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서인지 오한이 들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수통의 물도 꽝꽝 얼어붙고 준비해온 간식도 떨어진지 오래. 이대로 가면 백발백중 낙오가 뻔했다.
동행하던 ‘전우’들을 힐끗 바라봤다. 20kg이 넘는 완전군장이 어깨를 짓누르고 빙판에 미끌미끌거리는 전투화였지만 장병들은 무심(無心)을 터득한듯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그때 한 병사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기자님, 이거 드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미니 쵸콜릿 두 개였다. 4박 5일 야외훈련, 겨울비 속에서의 공격·방어 임무, 완전군장 행군….
기자보다 몇 배나 힘들었을텐데 아껴둔 일용한 양식을 선뜻 내준 병사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크기는 작지만 전우애가 꽉찬 쵸콜릿은 상상 이상의 힘을 줬다.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뚝거렸지만 희미하게 전해지는 군악대의 팡파르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참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장병들은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군가를 불렀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기자도 웅얼웅얼 따라 불렀다. 위병소에는 사단장이 나와 파이팅을 외쳐줬고 연병장엔 살얼음이 낀 막걸리와 김치가 준비돼 있었다.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정확히 15년 만에 만끼한 맛과 기분. 어쩌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황홀한 막걸리가 아닐까 싶다. 23일 새벽 1시43분. 첫 발걸음을 뗀 지 꼬박 12시간이 흘렀다. 둑방길을 걸으며 만난 수많은 별들이 기자의 완주를 축하해주며 밝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연병장엔 아름다운 전우애가 흘러 넘쳤다.

윤병노 기자 trylover@dema.kr


춥다 추워! 살을 에일 듯한 칼바람을 견디기 위해 방한모를 뒤집어 쓴 기자(오른쪽 셋째)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복귀행군도 식후경! 차디차게 식은 저녁이었지만 추위와 피로를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물아 나와라! 강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수통의 물을 먹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병사와 환희 웃고 있는 병사의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드디어 집이다! 새벽 1시43분, 장병들이 40km 복귀행군의 마지막 관문인 위병소를 통과하며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다.

<국방홍보원 신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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