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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함께하는 이야기

육군76사단 ‘진격 가위손 콘테스트’

    육군76사단 ‘진격 가위손 콘테스트’   
    눈물의 ‘바리캉’이 사랑의 이발기로   


『“막내야! 오늘 교보재좀 해라.”


   “어떤 교보재 말입니까?”


갓 자대배치를 받은 1993년 5월 초. 얼마 전부터 중대 이발병 임무를 맡은 장모 일병의 손에 떠밀려 정비실 의자에 앉았습니다.


“샤갹샤갹” 소리를 내며 뜯는 건지, 깎는 건지 모를 고통이
이어진 지 10여 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듬성듬성 속살이 보이는 게 영락없는 ‘영구’였습니다.


고참은 ‘하나님과 동기동창’이라는 말이 불문율이었던 그때. 한마디 불평도 할 수 없는 저에게 “다음 주에 또 보자”
장 일병의 속삭임이 왜 그리 야속하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로부터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2010년 2월 11일.
기자는 육군76사단에서 개최되는 
‘진격 가위손 콘테스트' 찾았습니다.


강당에 모인 26인의 ‘가위손’들은 ‘교보재’가 아닌 전우들의
머리를 정성껏 손질합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일병‧상병은 물론 부사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기구도 다양해졌습니다. 전기 이발기는 기본이요 숱을 치는 가위도 있더군요.


집체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격증 하나 없는 초보 중의 왕초보. 하지만 진지한 눈빛과 정성이 담긴 손놀림은 어느 유명 헤어디자이너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3cm의 짧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비슷비슷한 형태의 스타일에도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사단장도 경연장을 찾아 병사의 머리카락을 손수 깎아주며
가위손들을 격려해줬습니다. 예전처럼 머리카락 뜯길 때의
비명은 없고 경연장은 이날 내린 함박눈만큼이나 포근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정된 30분이 지나고 대회가 종료됐습니다.
최우수상은 각이 제대로 잡힌 두상과 전투모를 썼을 때의 모양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통신대대 이준혁 일병이
차지했습니다.


라성호(준장) 사단장은 “우리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는데 머리를 바보같이 깎아놔 속이 상한 적이 있다. 군인인 나도 이럴진대 일반 부모님들은 어떤 심정이겠나. 이발병이 동료들의 머리를 잘 손질하는 것도 효도”라고 말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미용사 박연숙 씨는 “이발병이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나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실력이 좋았다”“저도 가끔 부탁 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헤어스타일은 패션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군다나 한창 멋을 부릴 20대 초반의 남녀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아직도 미용사라고 하면 여자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남자가 미용을 한다면 곁눈질하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헤어디자이너는 감성을 파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남을 아름답게 해주고 기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군대 이발병은 따로 보직이 있는 게 아닙니다. 똑같이 훈련하고 똑같이 경계근무하고 자신의 자유시간과 주말을 반납한 채 전우들을 위해 희생하는 진정한 전우들입니다.


17년 전 기자의 머리를 쥐어뜯은 장 일병도 전역 때까지 후임병들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전투복을 다리고, 이발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미용사가 돼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 겨울이 가기 전 장성열 병장님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더듬어보고 싶습니다.




나도 한 때는 가위손… 경연대회장을 찾은 라성호(가운데) 사단장이 전기 바리캉으로 이발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전우야 나만 믿어!… 진지한 눈빛으로 전우의 머리카락을 정성껏 손질하는 이발병의 표정이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분대장도 이발병?… 분대장 견장을 단 이발병의 모습에서 예전과는 다른 군 풍속도를 알 수 있다.


<국방홍보원 신문부 윤병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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