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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함께하는 이야기

이것이 야전(野戰)이로구나!!!

비와 눈이 섞여오고, 옷과 구두는 다 젖었다…

이것이 야전(野戰)이로구나!!!

거센 바람에 뒤집어지기를 몇 번 반복한 우산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빗물이 줄줄 스며들었다.
구두에는 물이 가득 차올랐고,
빗방울이 튄 수첩에는 볼펜잉크가 번지고 있었다.
찬바람에 얼어붙어 잘 돌아가지 않던 머릿속에 한 줄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야전(野戰)이다…’    


<이날 취재하러 갔던 전차 파워팩 교환 훈련. 사진에 왜 비오는 것이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눈과 비가 뒤섞인 비가 좔좔 오고 있었다.>                                      사진 박흥배 기자님


국방일보 입사 후
첫 취재로 육군 제1군수지원사령부 혹한기 훈련을 맡게 됐다. 취재 당일 아침,
사령부가 소재한 원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정훈장교 분에게 연락을 해서 최종적으로 만날 장소를 확인했더니…
강릉으로 오셔야 한단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머리털이 쭈뼛거리는 느낌이 한순간에 몰아쳐왔다.
첫 취재부터 실수라니!!! 심지어 팀장님께서 취재기사가 오늘 올라가야 할 거라고 말씀하신 터라 정신이 아뜩한 것이,
혼이 저 멀리 빠져나가는 듯 했다.


넋이 반쯤 나간 나를 태우고 사진팀 박흥배 선배님께서
질풍같이 차를 몰아 강릉으로 향하셨다.
안 그래도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이래저래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는데, 톨게이트 전광판에 ‘강원도 지역 대설주의보’라는 문구가 당당하게 떠올랐다.
특히 ‘대설주의보’는 눈에 확 띄는 씨뻘건 글씨라 잘못 볼 염려를 줄여줬다.


대관령 터널을 통과하자 거짓말 같이 눈꽃이 가득한 세계로 튀어나왔다. 터널 저편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이편은 눈이 보송보송 오고 있다니…
이런 신묘한 조화를 봤나…


오늘 기사를 바로 송고하기에 시간이 너무 지체된 관계로 점심식사는 건너뛰고, 훈련이 이루어질 583부대까지 전화로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아갔다. 부대 찾아오시기 힘들진 않으셨느냐 묻던 대위님께 군부대가 찾기 쉬운 곳에 있으면 국가 안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답해드렸다.

한마디로 찾기 엄청 어려웠다는 말이다.


<저 멀리 우산을 쓰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가 바로 본 기자. 워낙이 악필이라 취재할 때 한 메모를 잘 못 알아보는 편인데, 이번엔 빗물에 젖기까지 해서 더 알아볼 수 없었다.> 사진 박흥배 기자님

게다가 판초우의나 방수코트를 걸치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군인들 사이에서 단정한 반코트에 줄 세운
양복바지를 입고 있자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불편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눈이 섞인 비인지, 비가 와서 좀 얼은 것인지 싶은 물질이 땅에 그득 쌓여있어서, 구두를 신고 팥빙수 위를 거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군부대 취재도 예전에 나가본 일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행사’ 취재였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자리에 가서 우아하게 있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만을 기억하며 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연하게 비를 맞으며 메모를 하다가 박 선배님께서 방수 재킷을 꺼내 입으시고 사진촬영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부러웠다…

야전 취재용으로 방수, 방화, 방한, 방탄, 방음, 방충, 방진 기능을 갖춘 의류와 신발을 장만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수첩도 물속에서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이런 망상을 하면서 박 선배님 차 뒷좌석에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정비작업을 스펙터클하게 묘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굴리고 또 굴렸다. 시간폭탄의 카운트다운 장면이 자꾸 연상되는 가운데, 기사를 마무리하고 얼어붙은 손을 벌벌 떨면서 팀장님께 이메일을 보내는데… 주소창에 주소도 치지 않고, 왜 전송이 안 되나 한참을 들여다봤다.

박 선배님께서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다…

좌충우돌 첫 취재를 마친 뒤에 1군지사 정훈 관계자 분들과
주문진의 한 해물탕 집에 들어가 완전히 늦어버린 점심식사를 했다. 운전병인 이병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하나 꺼내왔는데, 물을 따라 먹으니 맛이 달달하고 몸이 보신되는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해물탕 집 사장님 약으로 쓰기위해 힘들게 구한 고로쇠 물이었단다. 겨울에는 더욱 구하기 힘들다는 그 귀한 고로쇠 물이었다. 어렵사리 3병밖에 못 구하셨다는 소중한 약물 중 한 병을 4/5나 마셔버린 것이다…

사방팔방 사고가 다발한 첫 취재였지만, 훈련이 무사히 잘 진행됐으니 만사 OK.

사족. 결국 다음 날 신문에는 실리지 못 했다.


-국방일보 국방야전팀 김철환 기자의 첫 취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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