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자료/함께하는 이야기

꽃구름에 묻혀 활활 타오르는 ‘돌불꽃’이여!




전남 영암



                       < 월출산 아랫자락에 펼쳐진 화사한 벚꽃길 >



전남 영암은 전통이 깊은 고장이다. 왕인박사·도선국사가 이 고장에 태를 묻었고, 천년고찰 도갑사에는 너그러운 불법의 기운이 오늘도 가득하다. 무엇보다 갯내음 비릿한 바닷가 평야지대에 봄날 아지랑이 같은 환상으로 솟아난 월출산(809m)은 영암 사람들에게는 종교로까지 숭상된다. 특히 4월 초순이 되면 월출산은 연분홍 꽃구름에 잠기는데, ‘돌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암봉들과 연둣빛 보리밭 사이에서 펼쳐지는 벚꽃의 춤사위는 장관이다. 때맞춰 왕인문화축제도 펼쳐지는 고장, 영암으로 떠나자.


영암 월출산을 휘감은 100리 벚꽃길



전국에 내로라하는 벚꽃 명승지가 많지만, 길이로 보자면 월출산 주변의 벚꽃길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거기에 일부 구간은 수십 년 묵은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자라고 있으니 연륜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벚꽃길은 영암 읍내서부터 구 819번 지방도를 따르며 구림마을과 왕인박사 유적지를 지나 세발 낙지로 유명한 학산면 독천리에서 2번 국도를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약 15km. 이 구간에서는 20~30년생 벚나무 2만여 그루가 늘어서서 온몸으로 봄을 노래한다.



영암군에서는 이 길을 ‘100리 벚꽃길’이라 부른다. 산술적으로는 100리인 40km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구림마을에서 도갑사 입구, 왕인박사 유적지 주변의 벚꽃을 감상하다보면 심정적으로는 100리 이상의 감동을 받게 된다. 
아름드리 벚나무는 군서면 일대의 도갑사 진입로, 왕인박사 유적지 주변에 많다. 이중에서도 구림초등학교에서 도갑사 입구의 수박등 삼거리까지 300m 구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곳은 인파도 적기 때문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가롭게 거닐며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봄볕이 짙어지고 있는 왕인박사 유적지

벚꽃길 중심에 있는 구림마을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를 묻은 마을로 월출산 기슭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구림(鳩林)이란 지명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도선국사가 비둘기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탄생설화에서 유래한다. 도선국사는 음양이론과 풍수법을 다룬 <도선비기>를 써 당대에 유행하던 도참설을 정립하고, 월출산의 대표적인 절집인 도갑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의 조망.
                    온갖 기묘한 형태의 바위들이 모여 있는 전시장 같다>


월출산 서쪽에 자리한 구림마을의 성기동(聖基洞)은 왕인박사가 나고 자란 곳이다. 백제 고이왕 때 학자인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교를 전파했고, 그곳 왕실의 스승이 되어 왕의 정치 고문 역할을 했다. 당시 동행했던 기술자들이 종이와 토기제작 기술을 전수하면서 일본의 아스카문화를 촉발시킨 인물로서 일본에서 더욱 추앙받고 있다.


고장 전설에 따르면 왕인은 8살 때부터 서당을 다녔다고 한다. 그 서당은 지금의 양사재(養士齋) 자리에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산허리를 돌아가는 오솔길을 오르면 시누대 숲 속에 ‘선비 기르는 학교’ 양사재, 왕인이 책을 쌓아두었다는 책굴, 왕인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전해지는 왕인석상이 있다. 천천히 산책하는 데 왕복 2시간쯤 걸린다.


< 구유바위 근처에 있는 성천. 음력 3월3일에 이 샘물을 마시고 구유바위에서 목욕을 하면 왕인박사 같은 대학자를 낳는다는 풍습이 전해온다>


성기동에 있는 성천(聖泉)은 왕인박사를 키운 샘물이다.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의 정기뿐만이 아니고 왕인박사가 정기를 받은 문필봉의 기운이 몸으로 전해져올 정도로 시원하다. 이 고장에서는 음력 3월3일에 성천 샘물을 마시고 구유바위에서 목욕을 하면 왕인박사 같은 대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린 도갑사의 도선·수미비>


벚꽃 구경과 더불어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갑사(道岬寺) 답사도 빼놓을 수 없다. 동백꽃 그늘 아래에 자리 잡은 해탈문(국보 제50호)은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사천왕이 아닌 금강역사 둘과 동자 둘이 지키고 있는데 나무를 깎아 만든 금강역사상은 치켜든 주먹으로 한방 내리칠 것만 같이 사실적이다. 또 이 절집 안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 커다란 사세를 일러주는 커다란 석조(石槽)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도갑사 문화재관람료 2000원.


4월5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왕인박사 문화축제


매년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1600여 년 전 천자문을 비롯해 백제의 선진 학문과 문물을 일본에 전해 고대 아스카문화를 꽃피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영암 출신 왕인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4월 4일(토)부터 7일(화)까지 나흘간 100리 벚꽃길이 위치한 군서면 왕인박사 유적지, 구림마을, 도기문화센터 등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흘 동안 날마다 각각 왕인(王仁)의 날, 소통(疏通)의 날, 상생(相生)의 날, 대동(大同)의 날이란 주제로 펼쳐진다.



왕인축제 행사 중
‘왕인 학문의 길 답사’ 프로그램은 왕인박사유적지와 구림마을에 산재한 왕인박사의 탄생과 학문수학, 성장, 도일, 전래문물 등의 역사유적을 찾아 성천에서 상대포까지 돌아보는 체험행사. 매일 1회(14:00~17:00) 운영한다. 참가비 1인당 1만원.


또 벚꽃 감상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행사인 영암꽃길 건강걷기대회는 일요일인 5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열린다. 코스는 주무대~구림 사거리~수박등 삼거리~회사정~주무대 회귀 코스다. 이곳은 아름드리 벚꽃이 줄지어 서있어 영암 100리 벚꽃길의 핵심 구간으로 꼽히니 꼭 걸어보자.



                                   <개막식 행사인 왕인행차.
            백제 장군을 앞세운 왕인 박사 일행이 벚꽃길을 지나고 있다>



영암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행사도 많다. 유서 깊은 구림마을 일원에서는 2200년 역사마을 구림스테이, 구림마을 전통문화 체험존, 상대포 뗏목타기 등 전통문화 체험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도기체험교실, 영암도기 장작가마 소성 및 출요 등 풍성한 문화 체험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월출산은 조물주가 정성들여 빚은 ‘돌불꽃’


이런 평지 답사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월출산
(809m) 산행에 도전해보자. 호남평야 남서쪽 끄트머리에 솟아오른 영암 월출산은 조물주가 바위로 정성들여 빚은 예술품이다. 구정봉 아래 여성을 닮은 베틀굴, 그리고 천황봉에서 구정봉에 이르는 능선에는 이와 어울리는 남근바위도 있다. 또 돼지바위·오리바위·말바위·코뿔소바위·올빼미바위 등등 마치 산 전체가 만물상인 듯하다.

월출산 산행 들머리는 천황봉 북동쪽의 천황사, 서쪽의 도갑사, 남쪽의 금릉경포대계곡이 전부다. 이 코스들은 봄철 산불경방기간에도 폐쇄하지 않으니 여느 국립공원이라면 산행하기 어려운 봄·가을철에도 산에 들어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망이 빼어나 월출산의 최고 명물로 꼽히는 구름다리. 
                                    최근에 아주 튼튼하게 새로 만들었다>


월출산의 구경거리는 구름다리다. 2006년 새롭게 단장한 월출산 구름다리는 길이 52m, 지상 높이 120m로 국내 구름다리 가운데 가장 높다고 한다. 조망도 좋아 올려다보면 사자봉과 장군봉 일대의 빼어난 암봉들이 위압적이고, 내려다보면 깊은 바람골이 까마득하다. 장군봉 너머로는 영암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황봉은 월출산의 최고봉답게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으로는 사자봉과 장군봉 아래로 빨간 구름다리도 보인다. 남쪽으론 월출산에서 계곡의 경치가 가장 좋다는 금릉경포대계곡, 서쪽으로는 바람재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향연에 마음 뿌듯하다. 또 북쪽 역시 덩치는 크지 않아도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온갖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눈요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부분의 등산인들은 정상 주변의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조망을 즐기며 점심이나 간식을 든다.


구정봉은 바위굴을 통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월출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지만,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 구정봉도 천황봉에 뒤지지 않는 심리적 높이로 다가온다. 구정봉 아래의 베틀굴은 깊이 10m쯤 되는데,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여근바위, 또는 음굴이라고도 한다.


천황사~천황봉~도갑사 종주 코스 총 5~6시간 소요


바닷가 평야 지대에 솟아난 월출산은 해발 809m에 불과하지만 해발 0m의 수면에서 곧바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니 여느 1000m급 산을 오르는 것과 맞먹는다. 따라서 처음 오르막길을 우습게보고 대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

월출산 산행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미왕재~도갑사 종주 코스로서 총 5~6시간 정도 걸린다. 만약 주능선 종주가 부담이 된다면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바람골~주차장 회귀코스(2시간 30분)를 선택해도 괜찮다. 정상까지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바람골~주차장 원점 회귀 코스는 4시간 소요. 도갑사~미왕재 왕복코스는 2시간 30분 소요. 도갑사는 문화재관람료(2000원)를 받는다.

  
여행정보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광산 나들목→13번 국도(해남 방면)→나주→영암 /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강진 방면)→학산면→819번 지방도→영암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맛집 =
갈낙탕은 호남한우갈비와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함께 넣어 끓인 음식으로 영암 별미 중 최고로 꼽힌다. 영암 읍내에서는 영암군청 맞은편에 있는 중원회관(061-473-6700)이 갈낙탕을 잘 하는 식당으로 소문나 있다. 갈낙탕, 낙지연포탕이 각각 1만5000원.


왕인박사유적지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에 있는 학산면 독천리는 세발낙지의 대명사로 꼽히는 마을이다. 한때 세발낙지 최고 산지로 이름을 날리다가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현지에서는 세발낙지를 잡을 수 없지만, 그 요리만큼은 아직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영명식당(061-472-4027), 독천식당(061-472-4222) 등 세발낙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20여 곳이나 된다.
세발낙지 1마리에 6000원, 낙지구이 1접시(4~5인분) 7만원.


●숙소 =
영암읍에 소프트모텔(061-471-8101~2), 르네상스모텔(061-471-5225), 도갑사와 가까운 군서면에 월출산장여관(061-472-0405), 화이트모텔(061-471-4998~9), 과수원모텔(061-473-9939) 등이 있다.


구암면 구림마을 주변에 아래사위민박(061-473-6122), 왕실민박(061-472-0456), 벽오동민박(061-472-0151), 아침민박(061-472-0242), 죽정기와집민박(061-472-0211), 영래민박(061-472-7540), 고향민박(061-472-0155),
대동계사민박(061-472-0174) 등이 있다.


천황사쪽의 천황탐방지원센터 주변에 산장식당(061-473-4900), 월출산민박집(
061-473-8780), 월출산산악인의집(061-473-3778), 바우식당(061-473-3784), 감나무집민박(061-473-3782), 월출산천황사민박(061-471-3313), 대나무민박(061-473-3971), 남도민박(061-473-5353) 등이 있다.


도갑사 지구에는 호남식당(
061-472-0509), 도갑사가는길(061-471-1030) 등 모두 10여 곳의 음식점과 민박집이 있다.


※참조 =
왕인문화축제 홈페이지 www.wangin.org 전화 061-470-2350,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255, 월출산 국립공원 061-473-5210, 도갑사 061-473-9734.

 



사진 & 글 : 여행작가 민병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