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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함께하는 이야기

광복절, 독립운동가의 인물동산을 탐방하는 것은 어떨까?

대구에는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원들이 많이 있는데요. 대구지하철 2호선 두류역에 까지 겸하고 있어서 대구시민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는 7, 8월에는 한 밤에 더위를 식히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인물동산 취지문> 

 

대구두류공원에는 일제시대당시 민중의 저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상화시인, 박희광 독립운동가 등의 동상이 모셔져있는 인물동산과 2.28민주화운동 기념탑, 대구사범학생운동기념탑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구두류공원은 다양한 문화시설과 애국정신이 함께 공존하는 공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인물동산 입구>

 

인물동산에는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등 8분의 동상이 세워져있습니다. 동상 옆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역대 활동상이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평소에 몰랐던 대구지역의 독립운동가분들의 행적들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최양해 시인 동상>

 

최양해 선생은 1945년 조국의 광복이후에 대구에 거주하면서부터 대구 영남 시우회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아름다운 대구풍광을 자주 불렀다고 하는데요. 별세하기 전 까지 한시 260여수 중 대구를 소재로 한 시를 100여 수나 남겼다고 합니다.

 

<박회광 독립운동가 동상>

 

박희광 선생은 구미 봉곡동에서 태어나 8세 때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뒤, 18세에 만주에서 결성한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의 오동진 선생 휘하에서 김광추, 김병헌 등과 함께 임시정부 3인조 암살특공대원으로 맹활약했습니다. 1970년 향년 71세로 타계했는데요. 그의 활동과 업적은 대구시민들에게 산교육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 동상>

 

대표적인 동상은 이상화시인의 동상인데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5월 9일 대구에서 출생하셨고 1943년 4월 25일 숨을 거두는 마지막 날까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등을 활동하셨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작품비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일제에 저항정신이 드러난 작품입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떄 시를 외우기도 했었는데요. 그러한 작품을 직접 인물동산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탑>

 

두류공원 인물동산 내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일제시대 당시 비밀결사에 참여한 35인의 이름과 개인공적이 새겨진 병풍석 그리고 역사적 활동상을 기록한 공적석 등이 있습니다. 

 

<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탑>

 

이 비밀결사조직은 1942년 6월 ‘반딧불’이라는 문예지인데요. 문예부, 연구부, 다혁당 등으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일제시대에 민중을 대표해 저항정신의 문예활동을 펼치는 한편,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탑>

 

대구두류공원은 대구의 '심장'이라고 불리정도로 대표적인 공원인데요. 교통이 발달해 지리적으로도 접근이 아주 높은 공원입니다. 대구 시민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요. 인물동상은 이 덕분에 대구시민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높습니다. 교육과 문화라는 산 교육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구두류공원이 앞으로도 발길이 끊이질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종환 어울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