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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도로명 주소 속에 담긴 6ㆍ25 이야기

“6ㆍ25전쟁 비극 되풀이되지 말아야”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1 (서울대병원 내)

  

 

 

625개전 초 부상 장병·환자 1000여 명 넘어 의료진, 피난 잊은 채

치료 전념 1963년 전사자와 의사·간호사숭고한 넋기리기 위해 건립

 

‘1950년 6월 28일/여기 자유를 사랑하고/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시민이/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붉은 군대들이 침공해 오던 날//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 투사들이/참혹히 학살되어//마지막 조국을 부른 소리 남겼노라//중략…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현충탑)’에 새겨진 비문이다. 당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투 현장이 비문에 묻어난다. 우리나라 최상위 1%만 간다는 서울대, 그것도 출세 보증수표로 통하는 서울대병원에 이 비가 있다. 서울 한복판 대학로 서울대병원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듬고 있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대병원의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는 병원 장례식장과 의생명연구원 빌딩 사이에 있다. 하얀 철재 담장 내부에는 나라꽃 무궁화가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를 감싸고 있다. 곧 꽃봉우리를 터트릴 듯 파란 몽우리가 무궁화 나무 가지마다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파란 잔디밭 위에 높이 솟은 하얀 현충탑 주변에는 단풍나무ㆍ은행나무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뤄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창경궁쪽에서 병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이 비에서 멎는다.

 6ㆍ25개전 초 서울대병원에는 부상 장병과 중증 환자 등 1000여 명이 응급실ㆍ입원실ㆍ수술실은 물론 병원 복도까지 넘쳤고,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피난도 잊은 채 오직 환자 치료에만 전념했다.

 부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에는 남 소위가 지휘하는 국군 1개 경비소대 병력과 육군본부 병참장교 조용일 소령이 지원하고 있었다. 6월 28일 새벽, 국군 경비소대는 북한군 1개 대대 병력과 뒷산(당시 조그마한 동산)에서 결사항전을 펼쳐 소대원 전원이 전사했다.

 병원을 장악한 북한군은 국군 부상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또 입원한 일반 환자 등 900여 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거나 불 태우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바로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가 서 있는 서울대병원이 그 처참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포성이 멎고 10년이 지난 후 1963년 모 신문사가 전사자와 의사, 간호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현충탑)’를 세웠다. 이곳에서 매년 설날·현충일·6월 28일·추석·순국선열의 날에 이들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지난 6월 27일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추모제를 서울북부보훈지청ㆍ종로보훈단체협의회ㆍ서울대병원의 공동 주관행사로 이끌어 낸 강성만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서울시내에서 6ㆍ25전쟁의 비극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서울대병원 참상”이라며 “당시 부상한 국군, 피난 가지 못한 중증 입원환자 등 1000여 명이 무참히 학살됐다. 이런 비극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제공:서울지방보훈청>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