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원자폭탄 사용을 포기했나?
日 원폭 참상에 충격 받은 트루먼 6·25 땐 투하 불허

 

맥아더(왼쪽)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 국방일보 DB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평양까지 점령하게 되자 중공군은 대규모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중공군이 대규모로 밀려오자 맥아더 사령관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고 워싱턴은 당황했다.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혹시 소련까지 끌어들여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추수감사절 때까지는 전쟁을 종식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중공군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그러자 애치슨 장관은 의회에 나와 “3차 대전이 임박한 것 같다”고 연설했다.

또한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원자폭탄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고, 맥아더는 원자폭탄 사용의 ‘재량권’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전쟁을 10일 안에 끝내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왜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졸라댔고 김일성은 큰 공포를 느끼면서 하나의 ‘기만전술’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1951년 4월, 중공군은 본토로부터 6개 군단의 병력을 추가로 증원하고 70만 대군으로 춘계공세를 강화했다. 이때도 맥아더는 핵 사용을 요구했다. 미 합참에서는 원자탄 사용을 검토했고, 4월 6일 트루먼은 원자탄 사용 명령을 재가했다. 그리고 실제로 원자폭탄 9발을 B-29에 탑재해 4월 6일 괌 기지로 보냈다. 그러나 6·25전쟁에서 원자탄은 사용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해서는 국제정치 학자나 군사정보 분석가들에 의해 여러 추측과 많은 분석이 행해졌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트루먼이 핵을 사용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자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lee) 총리가 즉시 미국으로 날아가 핵 사용을 만류하는 데 앞장섰다. 애틀리는 한국도 중요하지만 유럽 방어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하며,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를 대비해 전쟁억제력으로서 핵무기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유럽국가 지도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원자폭탄 폭발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 모습. 국방일보 DB

한편 6·25전쟁 당시 미 육군성 장관이었던 페이스(Frank Pace Jr)나 핵 전문가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한국전쟁은 원자폭탄을 사용할 만큼 큰 전쟁이 아니며 목표물도 없다. 둘째, 중국을 응징하기 위해 핵을 사용할 수 있으나 소련의 개입으로 3차 대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셋째, 작은 나라에서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담이 되고 비효율적이다.

또 이 무렵 소련도 이미 핵실험에 성공(1949년 8월)했기 때문에 소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소련을 의식해서 핵무기 사용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2015년 8월 9일 공개된 미국의 외교문서에 그 해답이 나왔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나가사키 원폭 투하 승인 직후, ‘후회’했다는 내용이 발견된 것이다. 트루먼은 민주당 소속 리처드 러셀 상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일국의 지도자들의 ‘외고집’으로 인해 인구를 말살하는 데 대해 분명히 후회하고 있다. 일본은 극도로 잔인하고 야만적인 전쟁국가지만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원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했다(연합뉴스 2015년 8월 9일 보도).

한편 트루먼 전 대통령의 외손자인 ‘클립튼 트루먼 대니얼’은 2015년 6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외할아버지인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한국전쟁에서 원폭을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라고 증언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6·25전쟁에서 원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전략상 공격목표물이 없거나 소련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최고통수권자인 트루먼 대통령의 ‘고뇌에 찬 심적 변화’의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일본에서 핵을 투하한 미국이 한반도에서 또 핵을 사용한다면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도덕적 비난’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트루먼이 기자회견에서 원폭 사용을 밝힌 것은 적에게는 일종의 ‘엄포’요, 국민에게는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방하려는 이중적인 포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면 의문점이 쉽게 풀린다.

한편 트루먼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원자폭탄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1950년 11월 30일 트루먼이 기자회견을 한 직후 즉시 반대 의견을 제시한 바 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1952년 11월 맥아더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핵무기 사용 건의를 받았지만 즉석에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두 번씩이나 원자탄 사용을 검토하고도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군사전략이나 정치적 판단보다는 인간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이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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