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잊으면 모두를 잃는다

전쟁과 심리학 : 스톡홀름 증후군

 

영화 ‘콰이강의 다리’ 전쟁포로 니컬슨 대령

다리건설을 처음엔 국가간 전쟁 차원 이해, 후반엔 영국 장교 사실 망각 개인문제화 해

결국 목숨 걸고 쌓아온 영웅적 명예도 잃어

어려울수록 굳건한 정신력과 팀워크 필수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한 장면. 니컬슨 대령은 포로가 된 장교들을 다리 건설에 투입하려는 사이토 소장에게 저항하면서 심한 처벌을 받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용기를 보여준다. 필자 제공

 

 

전쟁에서 포로가 된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억류 그 이상이다. 적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때로 그들에게 마음까지 전향함으로써 심리적으로도 그들의 포로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적군과 아군이 뒤바뀜으로써 어제의 전우가 오늘의 적으로 만나는 영화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전쟁 포로에게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명심하고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사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주어진 임무를 다하는 길이다. 그것이 전투에서 정신적인 항복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다양한 종류의 인질이나 전쟁에서 사로잡힌 군인이 인질범이나 적군에게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보이는 충성을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고 한다. 이때 이 포로는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여기는데 그들이 인질범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질 중의 한 여성이 한 강도에게 강한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그 강도가 복역하는 동안에도 충성을 다했다. 이 사례에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 이후에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례가 보고됐다. 예를 들면 전직 기자인 이본 리들리(Yvonne Ridley)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돼 11일 동안 잡혀 있었다. 석방된 후 2003년 런던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을 방어하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견해들을 피력했으며 서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이슬람이 여성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의 권한을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들리는 서구 언론이 탈레반을 불공정하게 취급한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했다. 그녀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리들리를 스톡홀름 증후군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니컬슨 대령이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한 후 그곳에 현판을 달고 있다. 이때 그는 국가 간의 전쟁에서 이 다리가 갖는 의미를 잊은 듯하다. 필자 제공

 

스톡홀름 증후군은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산물이지만 그 핵심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가지는 긍정적 감정이 이성적 선택이나 의식적인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한 설명에 따르면 인질과 같은 포로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질범이나 적군의 친절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포로들은 다른 탈출 방법을 찾지 못할 때 그들과 유대를 형성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학대에 대한 부정이나 합리화 혹은 인질극의 정당화 등을 통해 가해자를 옹호하고 그들과 유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물론 이와 정반대인 리마 증후군(Lima Syndrome)도 있다. 때로 인질범은 인질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이 명칭은 1996년 12월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대사관을 점거한 페루의 반정부 조직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대원 14명은 페루 정부군의 작전으로 사살될 때까지 129일 동안 인질과 함께 지냈다. 그들은 외교관, 정부 인사, 군인, 기업인 등 400명의 인질을 억류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대부분의 인질을 풀어줬고 인질들에게 점차 동화돼 가족과의 안부 편지, 미사 개최, 의약품과 의류 반입을 허용했으며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놓기도 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의 일면을 보여주는 전쟁영화가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데이비드 린 감독, 1957년 작)’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니컬슨 대령이 이끄는 영국군 공병대가 타이의 밀림 속 일본군 포로수용소로 잡혀 온다. 이곳의 소장인 사이토 대령은 방콕과 랑군(양곤)을 잇는 철도를 놓기 위해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영국군 포로들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포로 중 장교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네바 협정과 관련해 두 지휘관이 대립함으로써 공사는 진전 없이 답보 상태에 처하게 된다.

사이토 소장이 노동을 거부한 장교들을 사면함으로써 공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니컬슨 대령은 다리 건설을 통해 군대의 기강을 잡고 병사들의 동기를 유발하고자 한다. 또한 이 작업을 통해 영국인의 기술과 효율성을 보여 우월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다리를 잘 건설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교들을 설득하고, 부족한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장교와 환자들에게도 작업을 요청하는 상황에 이른다. 심지어 니컬슨 대령은 일본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 다리를 폭파하려는 영국군 유격대원들과 대치하기도 한다.

니컬슨 대령은 왜 이처럼 아이러니한 행동을 보인 것일까? 그것은 그가 교량건설이라는 사건을 다른 수준과 관점에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즉 니컬슨 대령은 이 사건을 초반부에는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 반면 후반부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 장교의 노동과 관련해 그가 초반에 보인 저항은 이 문제가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일본과 전쟁을 하는 영국군이라는 정체성에 근거해 나온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하들을 일본군의 압박이나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후반부의 니컬슨은 이 사안을 국가보다는 매우 개인적 수준에서 바라봄으로써 교량 건설에 대해 자신이 부여한 의미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영국군 장교라는 사실을 망각해 저항의 근거가 된 제네바 협정을 스스로 어기는 모순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또한 포로의 신분으로 적에게 동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솔선수범해 다리를 건설할 뿐만 아니라 아군과 대치하는 행동을 한다.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이다. 결국 그는 다리 건설이라는 사안을 좀 더 큰 틀에서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영웅적인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모두 잃는 비극을 맞게 된다.

전쟁 포로처럼 적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제대로 이끄는 일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어렵다. 지휘관 역시 인간인지라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의 첫걸음은 그와 같은 자신의 나약함과 약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하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주변 상황에 대한 균형 잡힌 객관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때 부하와 리더 간에 신뢰와 공감이 생긴다. 그 속에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끈기로 뭉친 팀이 만들어진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개인적 작업이 아니라 팀워크와 공동의 작전이 필요하다. 전투는 말할 것도 없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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