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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설 특집] 육군2군지사 떡국 어려운 시기에 마음 나눔

[육군2군지사] 떡국 어려운 시기에 마음 나눔

한서대 서은주 교수-육군2군지사 장병들, 설과 전통을 말하다

 

 

‘설’은 공평하다. 모두에게 새로운 해의 새로운 시작을 선사한다. 가족 재회의 기쁨과 심기일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설’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통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드물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휴식을 즐기는 ‘공휴일’로서 의미가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 이러한 상황에서 육군2군수지원사령부(이하 2군지사) 장병들이 ‘설’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기 위해 1일 체험으로 다례(茶禮) 인문학 연구가인 한서대학교 서은주 교수를 찾았다. 서울 용산구의 ‘다(茶) 함께 인성교육원’을 방문한 장병들은 서 교수로부터 ‘설’과 ‘전통’, 그리고 ‘다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하얀 떡 ‘하얗게 해가 다시 뜬다’ 잘못된 해석

 

설… ‘삼가다’·‘조심하다’라는 의미


 

“설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단어는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입에 익으면 ‘뜻’이 사라지고 의미 없는 용어만 회자되곤 한다. ‘설’ 역시 그러하다. 매년 찾아오지만 단어의 기원과 의미는 사그라진 지 오래다.


“설은 ‘사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가다’ ‘조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설날은 일 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이죠.”


질문은 간단했지만 답변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도 ‘설’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시작부터 간단치 않았다.


“그럼 설에는 왜 떡국을 먹을까요?”


두 번째 질문도 쉽지 않았다. 장병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했다. 하지만 모두의 눈빛은 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고백의 교환이었다.


“떡국에는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떡은 이웃과 함께 나눠 먹기 좋은 음식이었죠. 일설에 하얀 떡을 빗대 ‘하얗게 해가 다시 뜬다’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잘못된 유래죠. 어려운 시기에 마음을 나누는 명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심드렁하던 병사들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표정들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설’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초라했던가? 초롱초롱하던 눈빛에 민망함과 부끄러움도 살짝 스쳐 지나갔다.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랫사람 인사 예법에 어긋나

 

세배… 명절에는 ‘큰절’ 아닌 ‘평절’ 해야

 

‘설’과 끊을 수 없는 것이 ‘세배’다. 하지만 이 간단한 ‘세배’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장병들은 절에도 ‘큰절’과 ‘평절’, 그리고 ‘반절’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명절에는 큰절이 아닌 평절을 해야 합니다. 큰절은 관혼상례 때 올리는 절입니다. 특히 명절에 남자는 손을 모아서 절을 해야 하죠. 요즘 TV를 보면 손을 벌리고 엉덩이를 들고 넙죽 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손을 벌리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절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하는 고두배입니다.”



그럼 큰절과 평절의 차이는 무엇일까?



“남자의 경우 두 손을 눈까지 올리는 것이 큰절이고 입까지 올리는 것이 평절입니다. 여성은 손을 올리면 큰절이 됩니다. 따라서 설날에는 손을 올리지 않고 무릎을 굽히는 평절을 해야 하는 것이죠. 흔히 세배를 올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하죠? 그런데 복이라는 것도 원래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생각 없이 행해왔던 설 인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은 장병들의 자세는 더욱 진지해졌다. 그런데 서 교수의 다음 설명에 충격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설에는 차례를 지내죠? 이 차례는 한문으로 ‘茶禮’라고 씁니다. 사당에 올리던 차례는 설,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각종 명절에 지내던 것으로 술잔을 차리지 않고 찻잔만을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근래에는 사당이 사라져 이 차례가 명절의 제사로 남게 된 것이죠. 제사 중에서 가장 간략한 보름의 사당 참배에서 ‘차를 올리는 예’라 하여 ‘차례’가 유래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 지내는 제례는 의례에서 나오는 것과 차이가 있어 민간 신앙이나 집안의 전통, 지역적 성격 등이 혼합되며 술과 거창한 음식이 더해지게 됐고 이 결과 차와 간단한 음식으로 지내던 우리 고유의 전통이 사라진 것이죠.”


 

 

한서대학교 서은주 교수가 육군2군지사 이찬미 중위와 함께 올바른 세배 방법에 대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배 시 여성은 오른손이 남성은 왼손이 위로 올라가야 하며 '큰절'이 아닌 '평절'을 해야 한다. 사진=정의훈 기자


 

 

한서대학교 서은주 교수가 육군2군지사 이학선 상병과 함께 올바른 세배 방법에 대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세배 시 여성은 오른손이 남성은 왼손이 위로 올라가야 하며 '큰절'이 아닌 '평절'을 해야 한다. 사진=정의훈 기자

 

 

한국 정신문화의 대표 브랜드 ‘다례’

 

예절…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부터 잘하는 것

 

대화는 범위를 넓혀갔다. 설과 전통을 넘어 다례(茶禮)로 이어졌다. 물론 주로 일방향의 대화였지만 그 내용의 가치로 장병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서 교수는 찻잔을 두 손으로 쥐는 것부터가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설명했다.



“예절은 나 자신부터 잘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죠. 그럼 다례(茶禮)란 무엇일까요? 바로 다(茶)를 통해 나 자신과 손님을 두 손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럼 동양 3국의 차 문화, 즉 한국과 중국, 일본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은 다례(茶禮)라고 하지만 중국은 다예(茶藝), 일본은 다도(茶道)라고 합니다. 한국은 예절로 보았지만 중국은 예기, 일본은 형식적인 의식으로 접근한 것이죠. 다례(茶禮)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브랜드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차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명확하게 설명해 줬다. 찻잎으로 만드는 것만을 차라고 하고 그 외의 것은 ‘대용차’가 된다고 했다.



다례는 단순히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습으로 이어졌다. 손님에 대한 예법을 배우고 그 마음가짐을 익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를 즐겨 마시는 백성은 흥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차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마시는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나아가 그 나라 문화 수준의 향상에 기여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설’에 대한 배움의 시간은 화살과 같이 흘렀다. 2군지사 장병들은 이날 배움의 시간 덕에 올해 설은 분명 예전의 그것과 다른 명절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 서은주 한서대학교 교수

 

장병과 진솔한 대화 나누며 ‘느림’의 중요성 전달

 

다례-예절 결합…인성 함양 인문학프로그램 개발

 

 


 


서은주 교수의 ‘다례’는 현재 ‘병영 인성교육’으로 발전하며 병영에서 그 향기를 넓히고 있다. 서 교수는 다례교육을 예절교육과 결합하는 인성 함양 인문학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장병들에게 적용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프로그램은 ‘다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인성교육과 차별화된다. 차를 우려 마시며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 등 우리 사회에서 잊힌 전통예절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프로그램은 다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장병들은 다과상을 중심으로 앉아 서로 눈을 맞추며 잊고 있던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시작한다.



차를 마시며 상호 칭찬을 하고 감사의 엽서를 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장병 간 경직된 문화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장병들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높이게 되고 선·후임병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면서 전우애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차(茶)’는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현대사회의 ‘속도’에 길든 장병들에게 ‘느림’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은 ‘노이지 보이즈’ 랩 가수의 인성 랩 음악을 도입해 몰입도를 높이기도 한다. ‘도전 골든벨’ 형식의 퀴즈로 흥미를 돋우기도 한다. 효과도 확실하다. 프로그램을 접한 수많은 장병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서 교수는 “차를 함께 마시는 茶 함께 인성프로그램은 상호 간 닫힌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한다”면서 “이를 통해 자아 존중감 향상과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시킴으로써 건전한 병영문화 정착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장병들의 한마디

 

이도연 중위



새해 안부 인사부터 차례상까지 한국사람이지만 우리 문화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바쁘고 정신없는 요즘 세상에 다례를 통해 쉬어가는 시간을 가진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찬미 중위


 

설 차례상에 대한 의미부터 절하는 방법, 그 안에 담긴 정신까지 새롭게 알게 됐다. 그전까지 무관심하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됐다. 우리 전통이 실제 의도와 달리 퇴색된 점이 안타깝고 이번 설부터 그 의미를 가족들에게 전하려 한다.

 

이용백 병장


 

설에 대해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머지않아 전역을 앞두고 있는데 사회로 돌아가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오늘 배운 내용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례’에도 행동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학선 상병



우리의 전통문화가 상당 부분 잘못 알려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참가했는데 정말 뜻깊고 값진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다례’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이 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