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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지 "그날의 꿈과 열정을 기억합니다"

2009년 미국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졸업식 축사는 국가를 위해 헌신의 길을 택한 군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준 명연설로 꼽힌다. 축사 곳곳에서 ‘We need you!’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사명감을 강조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축사를 마무리할 즈음에 이르자 ‘반지’를 언급했다.

“이제 여러분 손가락의 ‘반지’를 보세요

(Well, just look at that ring on your finger).
이곳에서 배우고 성취한 모든 일들을 기억하세요. ‘명예에 대한 헌신, 용기로부터 온 강인함.’ 이런 가치
들과 함께 사십시오. 이런 덕목들과 함께 살아가길 바랍니다.
( Remember all you achieved here and all that you learned here. ‘Devotion to Honor, Strength from Courage.’ Live these values. Live these virtues.).”

 

그대 야전에 나가거든 반지에 담은 초심과 다짐을 생각하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졸업반지 증정식

 

생도 때 꿈과 희망, 의지와 열정, 그리고 다짐
- 2월 사관학교 졸업 시즌에 만나는 ‘졸업 반지’

 

반지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결혼반지, 우정 반지, 졸업 반지, 우승 반지 등 의미를 담아 기억하고자 하는 일들에는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한 반지가 있다. 군대 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을 졸업 또는 수료할 즈음에는 졸업 반지(class ring)를 만들어 끼는 것이다.
2월은 ‘졸업 시즌’이다. 각급 학교별로 졸업식이 내내 열리다시피 한다. 우리 군에서도 임관식에 앞서 각 사관학교 졸업식이 2월 하순에 학교별로 진행된다. 그리고 ‘반지’와 관련된 특별한 프로그램(Ring Ceremony)이 졸업식을 전후로 열려 졸업의 기쁨과 다짐을 새롭게 해준다.

공군사관학교는 보통 졸업식 전날 명예광장에서 ‘지환 증정식’을 갖는다. 전교생이 환한 미소와 함께한다. 해군사관학교는 전통적으로 졸업식 2주를 전후해 지환식 행사를 개최한다. 지환식 날은 학교가 생도들의 가족과 애인·친구들에게 완전 개방한다. 육군사관학교에도 반지 관련 행사가 있다. 졸업을 100일 앞두고 열리는 화랑제의 일환으로 열린다. 지환식 행사에서는 졸업하는 생도들이 모형 반지를 통과한다. 그리고 후배나 초청을 받고 찾아온 가족·친지들이 보관해 둔 반지를 생도들의 손가락에 끼워 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반지 증정은 우리나라만의 행사는 아니다. 선배들의 졸업기간 중 4학년으로 진학하는 3학년 생도들에게 링 디너(Ring Dinner) 행사를 통해 반지를 주는 미국 공군사관학교의 사례가 있듯 나라마다, 학교마다 전통에 따라 각기 달리 실시된다.

 

군사관학교의 지환식 모습

 

후보생 등도 마찬가지. 색깔로 보면 3군 사관학교는 빨강이며, 3사관학교는 파랑이다. 초록색은 학군장교, 보라는학사장교, 그리고 노랑은 특수사관 등이다.
반지의 보석들 또한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3군 사관학교에서 함께 사용하는 루비의 경우 졸업생들에게, 몸은 학교를 떠나 전선이나 기타 근무지로 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진리를 배우고 탐구하던 학교와 교훈을 간직하고 애국애족을 위해 뜨거운 정열을 불태우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 반지 테두리에는 학교 마크·기수가 공통적으로 들어가지만, 학교·기수에 따라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진다. 임관 연도와 상징동물, 동기회 이름 또는 개인 이름이 새겨질 때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가족이나 애인과 공유하기 위한 피앙세 반지도 종종 주문한다.
생도들의 졸업 반지는 후배들이 제작해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증정하는 것이 관례다. 후배들이 반지 제작에 드는 경비를 부담한다. 매달 일정 금액을 생도동기회에 적립하는데, 3년 동안 선배를 챙기고 자신이 졸업할 때는 후배들로부터 선물 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통은 사관학교가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반지 제작은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세공업체가 맡는다. 만들어진 반지를 사서 증정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 제작하는데, 원본 디자인 제작부터 광내기까지 크게 10여 개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졸업반지는 졸업이나 임관 시기에 잠깐 끼다 빼서 보관하지는 않는다. 복무하는 동안, 혹은 복무 후에도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임무를 수행하고, 생활한다. 그 의미에 대해 저마다 “반지를 볼 때 마다 생도 시절 가졌던 열정과 힘을 생각한다”며 생도 시절의 꿈과 희망, 의지와 열정, 그리고 다짐을 이야기 하곤 한다. 그리고 중요한 판단의 시기에,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반지를 통해 생도 때의 초심과 다짐을 떠올린다.
오래 전에 읽었던 글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를 인용한다.
“세 번째 가르침은 사관학교 졸업 전에 어느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신 ‘링 노크(Ring Knock)’의 정신이다. 임무수행
중 생존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울 때 ‘누가 수행하느냐’하는 순간에 반지로 책상을 두드려 ‘내가 가겠다’는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시 배운 링 노크 정신은 내가 군 생활을 하며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정면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국방일보 2008년 8월 5일자, 당시 오춘언 공군중령).

 

 

 

공군사관학교 반지                                                           육군사관학교 반지  

 

해군사관학교 반지

 

졸업반지의 전통, 미 육사에서 시작
우리 군은 해사 8기가 최초

이런 졸업 반지의 전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군사 교육기관의 졸업 반지의 기원은 미 육군사관학교 1835년 졸업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반지 한쪽 면에 북(drum)과 대포(cannon)를 새겨 넣고, 다른 면에는 칼과 총포를 새겨 넣었다. 보석은 자수정(amethyst)이었으며 방패(shield) 모양을 하고 있었고 보석 주위의 금테두리에는 졸업년도를 새겨 넣었다. 하지만 통일된 형태는 아니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부터 같은 도안, 자수정, 그리고 자수정 둘레에 ‘West Point’와 졸업년도를 새겨넣고 ‘West Point’ 문장(모표)을 반지의 한쪽 바깥 면에, 기별 문장은 다른 쪽에 넣는 형태로 통일된 디자인으로 제작했다.
우리나라 사관학교에서는 1954년 4월 15일에 졸업한 해군사관학교 8기 졸업생들이 처음으로 졸업반지만들어 끼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지환식(Ring ceremony)을 따라서 각자 적립금으로 만들었고, 1954년 당시는 국내 형편상 반지 제작이 곤란해 일본에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는 임관일 저녁에 해군사관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육군사관학교는 1955년 졸업한 11기 졸업생들이 처음이며, 공군사관학교는 7기부터이다. 육군3사관학교와 국군간호사관학교도 1기부터 반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각 군의 간부 양성기관들이 생도들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화합을 다지기 위해 반지를 만드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