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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포토] 뿌리깊은 우리 민족 '시련' 이겨내다

임시정부 청사는지금 공사 중 리모델링에 들어가 재개관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청사 입구. 번화한 국제도시 상하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임시정부 청사는 가난한 현지인들의 허름한 뒷골목 생활공간의 일부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방문객들이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망국의 뼈저린 아픔을 느끼고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독립운동사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크고 아픈 상처를 남긴 한국사의 특수한 시기였다.

 근대화에 뒤처진 우리 민족은 우월한 무력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유사 이래 지켜온 나라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 민족은 이에 굴종해 식민지 민족의 오욕을 감수하지는 않았다.

 애국계몽운동과 의병항일전을 통한 한말 구국운동은 1910년 국치 전후부터 국내외에 걸친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일제의 탄압과 간섭으로 많은 제약을 받던 국내와는 달리, 국외에는 수많은 민족운동자가 망명해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각 지역 간에 서로 연계를 맺으면서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한국 독립운동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만큼 한국독립운동이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2000여 개, 국외에 산재한 한국 독립운동사적지는 900여 개다. 특히 국외 독립운동은 한인이 많이 사는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의 서북간도를 비롯해 남북만주인 중국 동북지방에서 추진됐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멀리 하와이, 미주본토에서도 독립운동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돼 활동한 중국 본토에서도 강력하게 추진됐다. 이 시기에는 이미 모든 지역에서 국외 독립운동기지의 확고한 기반이 구축됐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구한말 일제 침략과 이를 이은 식민지 지배라는 ‘민족수난’을 국내외에서 강인하게 전개된 숭고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