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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성공으로 이끈 '19개의 별들'의 열정★★★

19개의 별들은 조지 S. 패튼 대장, 아이젠하워 원수, 맥아더 원수, 조지마샬 원수의 계급을 합한 것을 말합니다. 이들의 리더십을 비교 분석해보고 군사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① 조지 S. 패튼(George Smith Patton)

★ 유럽공격 당시 독일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미 제 3군단을 지휘했던 3군 사령관 조지 패튼 대장







▶사관생도 시절

조지 패튼의 사관생도 시절은 매우 독특합니다. 웨스트포인트를 1909년에 졸업했지만, 웨스트포인트에 오기 전 1년 동안 버지니아 주립사관학교에 다녔으며, 웨스트포인트 또한 1학년 때 1년을 유급당하여 사관학교를 사실상 총 6년을 다녔기 때문입니다.

패튼은 전형적인 무인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무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버지니아 주립사관학교 출신인 탓에 그는 버지니아로 먼저 진학하였습니다. 1년 후 웨스트포인트에 다시 입학했을 때 그의 아버지께서는 이미 백만장자였기 때문에 험난한 군인의 길을 들어서지 않아도 되었지만, 미 육사에 들어갔으며 그 이후 단 한번도 군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0\~

정말 멋지죠. ㅋㅋ 이를 생각해 봤을 때 그는 무인으로서의 기질이 탁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인다운 패튼의 기질은 그가 사관생도 시절 품었던 세 가지의 꿈에 비추어보아도 드러납니다.
그가 졸업하기 전까지 달성하고자 하였던 꿈은
  • 훈련규정 시험에서 1등하는 것
  • 4학년 때 '[각주:1]부관 생도'에 지명되는 것
  • 사관학교 단거리 육상 기록을 경신하는 것


이었는데 그는 이 세가지 모두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총점 20점인 훈련규정 시험에 집중하는 바람에 총점 200점인 수학 시험에서 실패하여 1년 동안 유급 당하게 되었습니다. 훈련규정 시험에 몰두하여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수학에서 낙제를 하고 말았죠.ㅠㅠ  그래서 1년을 유급하게 됩니다.

1학년을 두 번이나 다니게 되면서 동기생보다 1년 늦게 졸업하게 되지만 패튼은 4학년 때 마침내 훈련규정 시험에서 1위를 하고, 부관생도에 지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육상 단거리 기록을 갈아 치움으로써 생도 시절 가졌던 꿈을 모두 성취하였던 것입니다.

무인기질로 인해 일반학보다는 군사학에 치중하여 군사학 성적이 탁월했던 패튼. 하지만 일반학에서 처져 그의 졸업성적은 상위권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그는 모든 규정에 철저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엄격한 그 원칙을 남에게도 요구하여 동기생들간에 그리 높은 인기를 끌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주번사관이 되는 날에는 규정을 어긴 생도들 명단으로 노트 몇 페이지가 가득 채워질 정도였으니 그를 좋아할 생도가 별로 없었다고 하네요. ^^;

▶ 리더십
패튼은 사령부에서 병력을 지휘하는 것보다 직접 야전에서 병사들과 함께하면서 병력을 지휘하는 매우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항상 솔선수범하며 부하들과 함께 생활하고, 부하들에게 끊임없이 신뢰를 확인시켜주며, 그들을 아끼고,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열정과 사기를 끌어내는 최고의 명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또한 '방어를 명라혀면 차라리 해임을 시켜달라'고 말할 정도로 공격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돌적인 작전과 욕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②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끌었고, 훗날 미국의 제 34대 대통령이 되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



▶사관생도 시절

아이젠하워는 패튼과는 정반대의 기질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1915년에 졸업해서 패튼보다는 6년 후배였지만, 훗날 연합군 총사령관에 보직되어서 제 3군 사령관인 패튼의 직속상관이 됩니다. 엄격히 말하면 패튼을 제 3군 사령관으로 보직시킨 사람이 바로 아이젠하워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젠하워 또한 독특한 생도시절을 보냈는데요. 무인기질이 충만했던 패튼과는 달리 그는 애초부터 군인을 목표로 웨스트포인트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는 고교 졸업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쉬다가 해군사관학교에 먼저 입학했던 친구의 권유로 해사시험에 응시해 주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연령을 엄격하게 제한했던 해사의 규칙때문에 실패하고 연령 제한의 폭이 컸던 육사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탓에 입학때 부터 아이젠하워는 생도시절에 공부와 규정 어느 것에도 그닥 흥미를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반학 성적도 신통치 못했으며 군사학에는 더더욱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규정은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어기곤 했답니다.ㅋㅋ
그가 졸업할 때 가장 많은 규정을 어긴 생도에게 주는 상을 두개나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고 하네요. 규정준수의 기율에 철저하지 못했던 탓인지 그는 저녁시간에 상관의 눈을 피해 학교를 빠져나가 강을 건너 상점에 가 샌드위치나 커피 등을 먹고 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말썽꾸러기죠~
그 거리가 왕복 30마일에 달했다고 하니, 그의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발각되면 퇴교까지도 당할 수 있는 일을 서슴없이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
패튼과는 달리 규정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죠.

일반학도, 군사학에도 관심이 많지 않았던 그 였지만 아이젠하워는 영어에 흥미를 느껴 영어 공부만큼은 철저히 했으며, 그 덕에 4년 내내 영어는 톱을 달렸다고 합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부문에서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융통성이 없었던 패튼과는 대조적으로 아이젠하워는 규정보다는 인간관계 혹은 의리를 중시했고 그 덕에 그의 주변에는 늘 동료들이 따랐습니다. 동료가 어려움에 처하면 솔선하여 도왔고, 박학하고 다변이면서 유머가 넘치는 성격으로 동료들이 그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질로 4학년 때 그는 가장 인기있는 생도에게 돌아가는 응원단장생도 직책을 맡았고, 졸업성적은 164명 중 61등이었다고 합니다. 성적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유롭고 동료에게 인기를 얻는 그의 성격이 연상되시나요~? ^^

▶ 리더십
아이젠하워는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서로 개상이 판이한 인물들을 모아서 하나의 팀으로 빚어내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여 그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지휘관 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대표적인 리더십은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기회를 준비했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유럽사령관을 맡기 전, 허드렛일을 하는 소령을 몇 년째 계속하였지만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결국 상관의 눈에 들어 초고속 승진으로 이어졌습니다. 항상 솔선수범하고 부하를 격려해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아줌으로써 부하들이 죽는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잘 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비행기 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대통령인데 이 비행기 자격증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정찰 및 이동 시에 이용하였습니다. 이는 아이젠하워가 기회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극동군 사령관이었고 전쟁 후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전후 일본의 복구에 이바지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극동군 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사관생도 시절
맥아더는 필리핀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아더 맥아더 소장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부친으로부터 군인기질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육사에 입학할 때도 수석으로 합격할만큼 학업성취도도 뛰어난 생도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준수하게 생긴 용모에 언변 또한 뛰어나 누구에게나 최고의 찬사를 받는 인물이었다네요~

철저한 군인정신과 생활태도가 몸에 배어 규정도 엄격히 지켰고 일반학은 물론 군사학에서도 탁월한 성적을 내어 웨스트포인트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평점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웨스트포인트에서는 구두시험이 중요한 시험 중 하나였는데요. 맥아더는 구두시험에서 매번 하나의 완성품이었다고 동료들이 말했다고 합니다.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답이었다고 하네요. 3학년 때 단 한번 일등을 놓친 것을 제외하고는 전 학년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맥아더는 공부를 위해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모포를 뒤집어쓰고 공부하기도 하면서 노력 또한 부단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학년 때 생도신분으로서는 최고의 계급인 여단장 생도에 발탁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지만 맥아더에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건 아닙니다. 동료들이 그의 완벽함에 기가 죽은 것인지 그에게는 존경과 경탄의 시선을 보냈을 뿐, 애정과 우정의 손길을 보낸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늘 완벽을 추구하고 그 자신 또한 완벽한 생도였지만, 최고의 자리가 항상 그렇듯이 고고한 만큼이나 고독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아이젠하워와 똑같은 전쟁 영웅으로서 국민들의 존경과 인기를 한 몸에 얻었습니다.

▶ 리더십
맥아더는 "한 위대한 인물은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항상 자기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부하를 대할 때의 태도를 한번 더 생각했다고 합니다.

* 맥아더의 체크리스트

  • 나는 부하를 부당하게 비방하고 있지는 않는가?
  • 나는 틀림없이 부적격임을 스스로 증명한 부하를 제대시킬 때에도 그에게 정신적인 용기를 주고 있는가?
  • 나는 내 임무에 대해서 이를 수행하기 위한 기능, 임무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것, 조직을 관리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을 숙지하고 있는가?
  • 나는 "일"보다도 "지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 내 방의 문은 부하에 늘 개방되어 있는가?

(이외의 12개가 있음)

④ 조지 마샬(George Marshall)

★ 제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의 육군 참모총장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조지마샬 원수


▶사관생도 시절
패튼, 아이젠하워,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를 나왔지만 마샬은 버지니아 주립 사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마샬이 버지니아 주립사관학교에 입학할 당시 최상위급의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큰 키와 마른 체격 때문이었는지 1학년 시절, 마샬은 훌륭한 군인기질을 가진 생도로 인정받지 못했으며오히려 굼뜨고 어정쩡한 생도로 동료들에게 각인되었죠. 하지만 혹독한 군사훈련을 이겨내었고, 졸업 성적 또한 5등으로 우수하게 졸업하게 됩니다~!

2학년 때 군사학 성적에 탁월함을 인정받으면서 마샬은 서서히 사관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3학년을 거치면서 달라지더니 4학년 때 활짝 피게 됩니다. 일반학 성적은 물론이고 군사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군인적 자질을 최대로 발휘하여 마침내 생도 최고의 영예인 여단장 생도에 오르게 된다. 꾸준한 성장의 결과인 것이죠.

▶ 리더십
마샬의 리더십원칙은 9가지였습니다.
신념 리더십/행동 리더십/이타적 리더십/정직 리더십/미래지향적 리더십/코칭 리더십/공평 리더십/비전 리더십/멘토 리더십 입니다.

마샬은 자기가 속한 조직에 정직의 문화가 필요함을 말했습니다. 그는 리더가 자기에게 주어지는 비평이나 의견을 수용해야할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가 정직함을 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한 그는 모든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간결하고 요약된 형태로 설명하거나 브리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어떤 문제든 한 페이지 이내로 요약되지 않으면 충분히 연구 검토되지 않은 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이상에서 패튼과 아이젠하워, 맥아더, 마샬의 생도시절과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성취하고자 하는 과목이나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인데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강점을 더욱 뚜렷하게 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

                    배수나기자(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기자단)


  1. 부관생도란 생도의식시 전체 생도를 대표하는 여단장 생도의 지시를 큰 목소리로 하급제대에 다시 전달하는 것이 주요 임무인 생도보직으로서 목소리가 우렁차고 행동에도 절도가 있어야만 되기 때문에 웨스트포인트에서는 많은 생도들이 선망하는 직책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