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이야기(5)
동북아에서 항공모함의 의미
중국의 랴오닝 함은 중국 동북부 다렌항이 모항이다. 그렇다면 랴오닝의 주 무대는 우리의 서해일까? 사실 서해는 지도상으로 보았을 때 지중해의 7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연못과 같은 형국이다. 더구나 민감한 NLL선이 있고, 한국과 미국의 잠수함이 득실거리고 있어 랴오닝과 같은 항모가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실질적으로 중국이 항모 보유를 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태평양에 진출해 미 해군과 세력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이미 중국도 해군력에 있어서 미국이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라면 상황이 다르다. 남중국해에는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같은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격고 있는 지역이 있다.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물론 심지어 필리핀과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매우 복잡한 형국이다. 이러한 영토분쟁 지역에 세력투사 수단으로써 더할 나위 없는 존재가 바로 항공모함이다. 즉, 실질적인 작전능력 보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과거 미 해군이 필리핀 수빅만을 사용했을 때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에서 조차 필리핀의 눈치를 봤어야 했다. 그리고 미 해군이 수빅만에서 철수하자 중국은 본격적인 도서 영유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최근 필리핀은 슬금슬금 미 해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조만간 다시 미 해군이 수빅만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 남중국해는 여러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항모의 효과는 대단히 높다. (자료출처 : 서울신문)
일본은 우리와 독도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일본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된다면 전격적으로 동해에 항모 전력을 투사할까?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해 역시 서해 못지않은 연못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항이 인접한 이곳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항모 전단을 밀어 넣는다는 것은 유사시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블라디보스톡엔 러시아 최신형 원자력 잠수함이 집중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 러시아의 24,000톤 보레이급 잠수함. 우리나라의 독도급보다도 배수량이 크다.
러시아의 최신예 잠수함은 많은 숫자가 블라디보스톡항에 배치되어있다.
둘째, 스텔스 전투기인 F-35B의 위력으로 동해를 평정할 수 있다는 이론은 아마추어적 시각이다. 냉정히 말해 F-35B는 아직 개발이 완료 되지 못 했으며, 설계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해도 수직이착륙기라는 한계로 인해 기본형 F-35A에 비해 작전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상대편에서 제대로 된 조기경보기 한 대만 떠 있어도 F-35B는 자랑거리인 스텔스 성능을 발휘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F-35B.
복잡한 추진시스템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그 능력에도 의심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독도 분쟁에 항모전단을 이용한다? 이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유지되는 한 한국과 일본의 무력 분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위력과시가 목적이고, 일본은 숙원이었던 항모를 보유함으로써 미국과의 공조로 중국을 견제 하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일본은 정규항모의 보유계획은커녕 해군항공전단의 구성계획도 없다.
이렇듯 동북아에서 항공모함의 의미는 실제 전력상 큰 의미가 없으니 우리는 마냥 안심해도 되는 것이냐 하면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도 항모전단 보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 인가?
한국해군과 항공모함
항공모함은 해군전력의 정점을 찍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항공모함의 건조를 단순 논리로 접근하기 매우 어렵다. 혹자는 세계 최고의 조선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항공모함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항공모함전단의 구성에 있어서 항공모함 건조 자체는 오히려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당장에 2~30여대의 함재기 구매와 훈련, 그리고 2척 정도의 이지스 함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지스 함 1척에 1조원의 건조비가 소요되고, 차기 전투기 40대를 구매하는데 8조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항공모함전단 구성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보다 국방예산이 두 배 정도인 중국 및 일본의 사정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중국은 현재 명실상부한 G2 국가이고, 일본은 우리 경제보다 7~8배 규모가 큰 나라이다. 이런 나라들조차 상당한 부담을 각오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거쳐 건조를 결심할 수 있는 것이 항공모함이다.
이렇듯 항공모함은 막대한 예산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요하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면밀한 검토와 세밀한 분석을 거쳐 항공모함 건조의 타당성을 타진해봄과 동시에, 주변국의 해군 전력증강에 대한 건전하고도 합리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건조비만 1조원이 넘는 함정이어서 1년 국방예산이 30조원 남짓한
우리나라 실정에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된다.
사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항공모함끼리의 함대 결전은 발생하기 힘들다. 앞서 밝혔듯 항공모함은 매우 요긴한 정치적 위력투사수단이다. 예산이 넉넉하다면야 한 대 쯤 보유할 법도 하지만, 과연 그런 나라가 몇이나 될까? 따라서 항공모함을 보유한 상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대칭적인 대응이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최근 인도네시아와 대만의 행보는 아주 흥미롭다. 인도네시아는 랴오닝의 출현 이후 AIP 추진식 잠수함의 보유를 도모하고 있다. AIP 추진식 잠수함은 기존의 배터리 충전식 잠수함과는 달리 최장 14일간 수면에 떠오르지 않고 작전이 가능해 항공모함 최대의 천적으로 유명하다. 대만은 기존의 대함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른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스텔스 미사일 고속정을 2015년부터 배치하기로 했다. 이 모두가 랴오닝을 의식한 조치들이다. 우리 해군에게 시사 하는바가 큰 대목이다.
▲ 대만의 최신예 스텔스 미사일 고속정 ‘퉈장’.
스텔스 성능에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어 랴오닝에게는 매우 골치 아픈 존재이다.
세계 최강의 수퍼파워 국가들로 둘러싸인 한국 해군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 될 수밖에 없다. 화려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실질적인 해군전력을 증강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대로 된 항공모함을 건조하려 한다면 랴오닝이나 이즈모의 최소 두 배에 가까운 항공모함을 건조해야 하며, 그 마저도 비용대효과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이정도 항공모함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지금의 GNP의 두 배가 되어 영국이나 프랑스와 유사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의 항공모함 보유여부의 결정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잠수함전력이나 초음속대함미사일등의 비대칭전력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 프랑스의 45,000톤 급 샤를 드골 핵추진 항공모함.
경항모 몇 척을 보유할 바에 이것 한척이 낫다.
이번으로 항공모함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저격수에 대한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뵐까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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