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과 포장, 믿음의 함수관계

 

 

 

낙하산의 역사

 

공중에서 무엇인가를 지상으로 안전하게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속도를 크게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낙하산이다. 최초의 낙하산에 대한 설계는 르네상스시절 이탈리아에서 있었지만 낙하산이라기보다는 우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천재화가이자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낙하산을 그럴듯하게 설계 했지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설계를 바탕으로 100년 후인 1595년에 한 이탈리아 발명가가 낙하산을 제작해 100m 상공의 종탑에서 뛰어내려 낙하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의 낙하산이라는 것이 자동으로 펴지는 개념의 낙하산이 아니라 이미 펴져있는 상태에서 낙하하는 물건이었다.

18세기부터 열기구가 등장하자 비상탈출용으로 다시 낙하산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프랑스의 한 발명가가 낙하산 실험을 하다가 추락사고로 사망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윽고 사람이 착용하고 사용하는 낙하산이 1911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라이헬트’란 재봉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좀 기괴하지만, 사람이 착용하고 있다가 필요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는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에펠탑에서 실험도중 사망했고, 진정한 낙하산은 1년 이후인 1912년, 러시아 출신의 과학자 ‘그레브 코텔니코프’에 의해 만들어졌다. 낙하산은 곧 군사용으로 쓰여 지기 시작했다. 비록 1차 대전에서는 군 수뇌부의 인식부족과 비싼 섬유가격 때문에 항공기 조종사들이 낙하산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1935년 나일론이 발명되면서 섬유의 가격이 저렴해지자 낙하산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사용되었다. 특히 2차 대전에서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공수부대는 낙하산의 애용자들이었다. 당시 공수부대는 낙하산을 이용한 대규모 공수작전으로 적 후방에 깊숙이 침투해 충격효과를 주는 등, 전략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최정예 부대로 자리매김 한다. 그리고 낙하산은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까지 군사작전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낙하산 발명 10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에서 발행된 그레브 코텔니코프의 우표이다.

 

낙하산의 포장, 왜 중요한가?
낙하산의 전술적 사용이 본격화 되던 2차 대전 당시, 공수부대들은 대부분 집단 전술 강하라고 해서 500m의 저고도에서 집단으로 강하하는 방법을 썼다. 주로 대규모 공수작전에서 쓰이는 방법인데, 부대원들은 낙하산의 ‘생명줄’을 비행기내부에 있는 줄에 걸고 수송기에서 뛰어 내리면 약 3초에서 4초가 지나서 생명줄이 풀리면서 낙하산의 즉시 개방되어 강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따로 강하대원이 낙하산을 펼치기 위해 수동조작을 할 필요가 없고, 낙하산이 자동으로 펴진다. 그러나 낙하산 포장이 잘못될 경우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설사 낙하산이 펴졌다 하더라도 줄이 서로 엉켜버리면 낙하산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낙하산의 포장은 낙하산이 펴 질 때의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낙하산 포장의 개념이 없었던 극 초기의 낙하산은 낙하산 사용자에게 심한 충격을 주어 부상을 초래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더욱이 고도 500m의 저고도 강하에서 낙하산이 한 번에 제대로 펴지지 않으면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순식간에 지면으로 추락하기 때문에 그만큼 낙하산 포장이 중요한 것이다. 낙하산이 보편화된 2차 대전에서도 낙하산 사고는 종종 있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 전투기 150대를 격추시켜 최고의 에이스로 명성이 자자했던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도 귀환도중 비행기가 엔진고장을 일으켜 탈출하였으나,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원인은 낙하산의 포장이 잘 못되어 개방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2차 대전당시 공수부대원의 낙하 직전 모습. 낙하산 생명줄을 비행기 내부의 선에 연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경우 낙하산이 하강 즉시 자동으로 펴진다.

 

2차 대전 당시 불세출의 슈퍼에이스였던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도 낙하산이 제때 펴지지 않아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특전사 낙하산의 포장 60만개 무사고


지난 4월 12일, 우리군의 특수전사령부 예하 특수전교육단은 육군에서 최초로 ‘낙하산 무사고 지원 60만개’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낙하산은 특수부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장비이다. 따라서 낙하산의 포장은 특수작전의 성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고된 업무이다. 그리고 22년간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완벽히 임무를 수행한 낙하산 포장병들의 수고와 노력은 칭찬도 부족할 정도이다. 당장 미군만 하더라도 2015년, 최정예 특수부대원인 SEAL팀 대원이 훈련도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즉, 매일 수십, 수백 개의 낙하산 포장 및 정비를 수행하면서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함이 요구되는 이들의 임무는 전문 주특기요원만이 할 수 있다. 특히 낙하산포장정비교육시에는 자신이 직접 포장한 낙하산을 메고 직접 강하를 해야 한다. 그만큼 낙하산 포장에 있어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하는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특수전교육단은 육군에서 최초로 ‘낙하산 무사고 지원 60만개’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낙하산 포장의 과정은 정확히 펴기에서부터 생명줄 및 하네스 정리까지 총 11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이 모든 작업이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3명 1개조로 포장이 실시되고,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검사관의 이상 유무를 일일이 확인받아야 하므로 단 한 개의 낙하산을 포장하기 위서는 약 1시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포장한지 120일이 경과하면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다시 포장을 실시합니다. 낙하산 줄 하나만 꼬이더라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 소홀히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최종 포장된 낙하산은 개인 실명제로 포장을 한 포장병이 검사지에 직접 서명합니다. 

 

낙하산 포장 작업은 매우 정교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포장된 낙하산은 일정조건이 갖추어진 저장고에서 최대 120일까지 저장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재포장해야 한다.

 

낙하산 포장과정 자세히 보러가

 

포장된 낙하산들은 최대 4천여 개의 낙하산을 보관할 수 있는 낙하산 저장고에서 일정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가운데 보관됩니다. 포장과정에서 포장검사관들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포장병들의 컨디션인데, 워낙 정교한 작업을 수행해야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직책은 아니지만 전우의 낙하산이 활짝 펴져 안전하게 회수될 때마다, 낙하산 포장병들은 항상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소명의식에 자긍심을 느끼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낙하산 포장병의 다짐에는 다음과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포장한 낙하산이 우리 대원들의 날개라고 생각하며 완벽하게 준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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