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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서울에 신식 인쇄소 박문국 설치(1883.8.17)

 현대 사회에서 신문과 잡지는 첨단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그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미디어 산업에서 쓸쓸하게 퇴장할때가 됐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신문과 잡지가 지식정보의 보고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근대사회의 인쇄술 발달과 직결된다. 윤전기를 타고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인쇄물은 지식과 정보에 목말라 있던 대중의 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는 박문국으로 1883년 오늘 설치됐다. 신문과 잡지등을 편찬하고 인쇄하던 출판기관으로 정부 조직이었다. 그해 10월 31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도 박문국에서 발행했다. 그 때문에 박문국은 한국 최초의 신문사이기도 했다.


 활자는 납으로 만든 연(鉛)활자였으며, 인쇄기는 발로 밟아 작동시키는 족답(足踏)식이었다. 모두 일본에서 들여왔다. 박문국은 고종의 명에 의해 박영효등이 일본시찰을 다녀온 뒤 일본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설치됐다. 갑신정변 때는 수구파의 사주를 받은 군중이 들이닥쳐 기계들을 부수었다. 박문국이 개화파의 온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 폐지됐지만 1885년 다시 설치됐다.


 그 사이 1884년 민간인 최초의 인쇄소인 광인사가 설립됐고, 뒤이어 배재학당에도 인쇄시설이 들어섰다. 갑오경장 이후 인쇄시설이 대거 설치되면서 우리나라도 자못 출판물이 넘쳐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