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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환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저격수 이야기(2)

 

미국의 남북전쟁 때는 라이플 사수들을 샤프슈터(SharpShooter)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샤프슈터들이 사용하는 라이플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우선 기존의 전장식(탄환을 총구로 집어넣어야 하는) 라이플이 아닌 후장식 라이플이 보편화 되었고, 방아쇠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함으로써 명중률 향상에 기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광학장비의 발전과 더불어 라이플에 조준경을 장착하는 시도가 있었다. 즉, 저격이란 행위의 기술적 토대가 비로써 마련된 것이다.

초기 후장식 소총의 장전 순서 사진.

후장식 라이플의 등장으로 라인배틀과 같은 무식한(?) 방법이 사라지고

병사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 사격하기 시작했다.

 

이들 샤프슈터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1864년 5월 스폿실배니아 코트의 전투에서는 한 남군 샤프슈터가 북군 대령 1명을 사살하고, 장군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심지어 며칠 후에는 남군 샤프슈터 때문에 바짝 얼어있는 부하들을 독려하기위해 말 위에서 허세를 부리던 북군 6군단장 세지윅 장군이 역시 남군 샤프슈터에 의해 절명하고 말았다. 남군역시 전쟁기간동안 적어도 6명의 장군을 북군 샤프슈터에게 잃었다. 특히 남북전쟁의 샤프슈터들은 저격의 행위뿐만 아니라 적진의 움직임과 상태를 감시해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즉, 현대전에서 스카웃 스나이퍼(Scout Sniper:정찰저격수)의 개념을 최초로 확립한 것이다.

 

남북전쟁 당시 샤프슈터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다. 잘 보면 총신 위에 긴 조준경이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전쟁 당시 샤프슈터들에 의해 쓰였던 표적사격용 라이플.

8각형의 총구를 가진 아주 굵은 총신 위에 총신보다 긴 조준경이 달려있다.

 

시간이 지나 20세기 초가 되었고, 20세기 초반에 벌어진 대 ‘학살극’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저격수의 틀이 자리 잡히게 된다. ‘스나이퍼(Sniper:저격수)'란 표현이 영어권의 언론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도 1차 대전 초반의 일로, 그 뒤로 이 단어는 조준경이 장착된 소총을 든 병사를 뜻하게 됐다. 특히 저격수(Sniper)와 표적을 찾는 감적수(Spotter)라는 2인1조의 저격수 운용방식은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고, 은폐를 위한 위장복의 개념도 어렴풋하게나마 생기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저격수. 아마 선전용 사진인 듯한데, 저격수와

감적수 콤비라는 전형적인 2인 1조 시스템을 보여준다.

 

역시 1차 대전 당시 저격수의 모습.

전체적인 실루엣을 부드럽게 보이기 위해 초보적인 개념의 위장복을 착용했다.


 

지루한 참호전에서 저격수는 공포 그 자체였다. 조금만 몸을 노출시켜도 저격수의 총탄이 파고들었고, 때로는 저격수끼리의 교전도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1차 대전 기간 내내 양측은 저격수 학교를 따로 두어 저격수 양성에 힘을 쏟았다. 전쟁이란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만큼 저격수의 양성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저격수에 대한 훈련 내용도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했으며, 정찰 및 정보수집과 장비사용 등에 대한 훈련교범도 출간되었다. 특히 연합군에 비해 앞선 광학기술력을 갖고 있던 독일은 초반에 연합군보다 우수한 조준경을 사용해 높은 전과를 올렸고, 결국 전체적인 광학기술 발달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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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채형 2018.06.15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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