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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육상무기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⑥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⑥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③편 '베트남전과 특수부대의 총기(1)'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49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④편 '베트남전과 특수부대의 총기(2)'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56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⑤편 1970년대 이후의 특수부대 총기(1):새로운 위협,테러'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60

 

 

1970년대 이후의 특수부대 총기(2)
: MP5, 테러리스트의 피를 먹고 자라다.

 

뮌헨 참사 이후, 서독정부는 영국 SAS의 도움을 받아 GSG9이라는 대테러 전문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또한 작전 실패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했고, 그 과정에서 대테러작전에 적합한 새로운 화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기존의 SMG(기관단총)는 테러범과 인질이 섞여있는 상태에서 마치 외과수술과도 같은 정교한 성능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바로 오픈볼트 격발방식(OBF : Opened Bolt Firing) 때문이었다. 오픈볼트 방식이란 노리쇠 뭉치 전체가 후퇴된 채 머물러 있다가 방아쇠를 당기면 ‘덜컹’ 하면서 뭉치 전체가 전진하며 발사되는 방식이다. 격발과정에서 노리쇠 전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진동으로 인해 사격정밀도가 떨어지게 되고, 마치 분무기 같은 형태의 탄착군을 형성한다. 즉, 인질구출작전 같은 정밀한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3차 중동전 당시 이집트군 포로를 잡은 이스라엘군 병사의 모습. UZI 기관단총을 휴대 한 모습이다.

UZI와 같은 OBF식 기관단총은 최전선에서 막 쓰는 용도로는 제격이다.

 

GSG9은 독일의 총기메이커 Heckler & Koch사(이하 H&K)에 새로운 방식의 SMG개발을 요구했고, H&K는 자동소총에나 쓰이는 클로즈드 볼트 방식(CBF : Closed Bolt Firing)의 기관단총을 개발한다. CBF방식은 노리쇠가 폐쇄 고정 된 상태에서 공이만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의 OBF식 기관단총에 비해 진동이 훨씬 적었다. 이 점은 특히 반자동 사격이나 자동사격시의 초탄 명중률이 극히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플라스틱 프레임을 적극 활용한 혁신성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개발 된 것이 바로 MP5였다.

 

 


MP5의 프로토 타입. 초기형 MP5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나나형 탄창이 아닌 막대형 탄창이 쓰였다.

 

사실 MP5가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 비싼 가격과 복잡한 구조덕분에 성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극적인 사건이 MP5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977년 10월17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서 적군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가 납치된다. 서독 정부는 즉시 GSG9을 투입했고, 이들은 MP5를 작전에 사용했다. 작전개시 6분만에 GSG9은 테러범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체포했으며, 인질 86명 전원을 구출하였다. 서독이 뮌헨의 악몽을 떨쳐내는 순간 이었다. 특히 이 작전에는 영국 SAS대원 두 명이 참가 했는데, 이들은 MP5의 성능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고 영국 SAS는 곧바로 MP5를 채용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4년 후, 이라크에서 훈련받은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이 런던의 이란 대사관을 점거하고 26명의 인질을 사로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정부는 곧 바로 SAS에 인질구출 작전을 명령했고,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에서 SAS는 MP5를 사용하여 역시 작전을 성공시켰다. 테러리스트들의 피를 먹고 자란 MP5 전설의 시작이었다.

 

 

1977년, 모가디슈 작전에서 인질을 구출중인 GSG9 대원들의 모습. 모두들 방탄조끼를 입고 있으며, 오른쪽의 대원은 MP5를 휴대하고 있다.

 

1981년, 영국에서 발생 한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대사관 내부로 진입하는 SAS 대원들의 모습. 바나나형 탄창이 장착 된 MP5를 휴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