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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육상무기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⑤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⑤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①편 '1차 세계대전과 특수부대의 총기'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25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②편 '2차 세계대전과 특수부대의 총기'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37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③편 '베트남전과 특수부대의 총기(1)'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49

지난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④편 '베트남전과 특수부대의 총기(2)' 읽기 : http://demaclub.tistory.com/2456

 

 

1970년대 이후의 특수부대 총기(1)

:새로운 위협, 테러

 

 

1970년대 이전까지의 특수부대 총기는 철저히 군사적인 목적에만 쓰였다. 즉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원들에 적합한 무기였다. 하지만 1972년 일어난 비극이 모든 상황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바로 뮌헨 올림픽 참사가 그것이다. 이 사건이 특수부대 총기 발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날의 참사를 면밀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피가 흥건한 사건 당시 이스라엘선수촌 내부모습. 벽에는 여러 발의 총탄자국이 선명하다.

 

제20회 뮌헨 올림픽이 종반을 향하던 9월 5일, 팔레스타인의 과격 단체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리스트 8명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했다. 운동복을 입어 선수로 보였던 이들은 너무도 손쉽게 선수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AK - 47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이들은 저항하는 이스라엘 선수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9명의 선수를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팔레스타인 정치범 200여 명과 일본·서독 출신 적군파들을 4시간 내에 석방하고 안전한 탈출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당일 9시까지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30분 간격으로 인질 2명씩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서독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의 요구 조건을 놓고 이스라엘 정부와도 협의에 들어갔다.

 

카메라에 잡힌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의 모습. 이 사건을 계기로 전 세계는 테러라는 새로운 공포를 맞이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다만 인질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선수 9명 전원 석방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제3국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용인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사건 초기, 서독 경찰은 선수로 위장하고 건물 내 진입을 시도했으나 하필이면 이 장면들이 TV 카메라에 잡혔고,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던 테러범들도 이 장면을 TV를 통해 보고 말았다. 테러범들은 즉각적인 경찰의 철수가 없다면 인질을 추가로 사살하겠다고 위협했으며, 결국 어설픈 작전을 시도하던 서독 경찰은 국제적 망신만 당한 채 현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인질구출작전의 노하우가 전혀 없었던 서독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것이었다.

 

사건발생 초기 선수로 위장한 채 건물진입을 시도하는 서독 경찰의 모습. 들고 있는 무기는 독일 발터사의 MPL 9mm SMG이다. 군사적인 목적의 특수작전용으로는 그럭저럭 쓸 만하지만, 정교함을 요하는 인질구출작전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는 무기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단호한 대응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테러리스트들은 아랍국가로의 탈출을 모색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 서독정부는 이집트 정부와 협의했고,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이용해 이집트로 갈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집트로 갈 비행기와 비행장까지 이동할 헬기를 요구했다.
서독 경찰은 공군기지에 여객기를 준비해 놓고 헬기를 선수촌으로 보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이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헬기에 탑승할 때 제압하거나 그것이 실패했을 때 여객기 안에 승무원을 가장한 무장경찰을 잠복시키고 비행기 주변의 건물과 엄폐장소에 저격수를 배치해 전격 진압한 다음 인질을 구출한다는 작전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정작 테러범들과 인질들이 비행장에 도착하자, 여객기에 미리 배치되어있던 6명의 경찰은 모여서 작전 실행에 관한 투표를 했다. 결과는 사상 초유의 ‘작전 수행 불가’! 대테러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던 대원들은 도저히 작전수행에 자신이 없었던 것 이었다.
헬기가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테러리스트 2명이 먼저 내려 그들이 타고 갈 여객기에 접근하다가 조종실에 승무원이 없음을 확인, 또 다른 진압작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급히 헬기로 되돌아오는 순간 저격수들의 사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곧 재앙이 시작 되었다.

 

 

 

공항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당시 서독 경찰들. 왼쪽의 대원은 제대로 된 조준경조차 달려있지 않은 G3 소총을 들고 있다. 비록 G3자체가 우수한 명중률을 자랑하는 소총 이지만, 조준경도 없이 정밀한 인질구출작전을 수행 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당시 투입된 서독 경찰의 저격수들은 조준경조차 준비되지 않은 소총을 사용했고, 더군다나 실전경험이 전혀 없었던 경찰 저격수들은 마지막 사격 순간에 주저하여 끝내 대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사실 이들은 저격수라기보다 경찰 내에서 총을 잘 쏘는 인원들에 불과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즉각 반격에 나섰고 인질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테러리스트들은 헬기 안에 있는 인질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했다. 이 진압작전으로 테러리스트 5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 작전은 종료됐지만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선수 9명 전원과 진압경찰 2명이 사망, 서독 경찰은 대테러작전에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수류탄 폭발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헬기. 서독 경찰의 어설픈 작전은 대 재앙을 초래했다.

 

 

 

뮌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때 생포된 3명은 그해 10월 29일 서독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한 아랍 무장단체의 요구로 석방돼 이스라엘을 격분시켰다.
이제 전 세계는 테러리스트라는 새로운 위협을 맞이해야 했고, 거기에 따라 마치 정교한 외과수술과도 같은 인질구출작전을 위한 새로운 인력과 장비가 필요해졌다.

 

 

 

당시의 참상을 공중에서 본 장면. 경험미숙과 대테러작전의 노하우가 전혀 없었던 서독 경찰은 결국 참사를 막을 수 없었고, 서독 정부는 이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고 거기에 걸 맞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