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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국방일보

닿을 듯 말 듯… 남해 상공에서 짜릿한 비행

닿을 듯 말 듯… 남해 상공에서 짜릿한 비행
블랙이글 싱가포르를 수놓다 <2> 블랙이글 탑승기(하)

짝 이뤄 이동해야 하는 T-50B 항공기 1번기·3번기 나란히 자유자재 비행에

최고의 공군 조종사 기량 몸소 체험 김해기지 이륙 20여 분만에 제주 도착

 

 

   T-50B 항공기가 최대 출력으로 활주로를 내달리다 자신의 몸매만큼이나 날렵하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동안 혼미해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김해기지 상공을 덮고 있던 낮은 구름을 뚫고 올라온 후였다.

 앉아 있는 자세는 그런대로 불편이 없었지만 이륙할 때 받은 압력 때문인지 엉덩이부터 이어진 등허리 쪽으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잔뜩 찌푸린 지상과 다르게 구름 위 하늘은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아래로는 구름이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매끈하게 깔려 있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봤더니 똑같은 모양의 T-50B 블랙이글 1번기와 3번기가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비행하고 있었다.

 “저러다가 부딪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메라를 들어 서로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는 장면을 찍으려는 순간 3호기가 갑자기 거리를 벌리더니 꽁무니를 뺐다. 오른쪽 시야에서 3번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1번기가 2번기 앞쪽으로 조금씩 나아가더니 전방석에서 2호기를 조종하던 이상욱 대위 헬멧 오른쪽 바로 위까지 다가왔다. 순간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서 브레이크를 밟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블랙이글 조종사들은 달랐다. 지금껏 10년 이상 군 관련 취재를 해 왔지만 육·해·공군을 망라해 항공기건 함정이건 이렇게 가깝게 붙어서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찔한 곡예비행은 아니었어도 항공기 날개가 서로 닿을 듯 스치며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항공기 안에 탑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짜릿한 일이었다.

 비행을 마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훈련기로 설계된 T-50 항공기에는 레이더가 장착돼 있지 않아 출발할 때도 활주로에서 한 대씩 뜨는 게 아니라 2~3대씩 짝을 이뤄 이륙하고 공중에서도 서로 잘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가깝게 비행하는 것이었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공중에서 고난도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블랙이글 조종사들의 조종 기량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방석의 이 대위가 왼쪽을 보라고 이야기해 왼쪽으로 보니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던 3호기가 후미 아랫쪽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블랙이글의 활약을 가장 가까이서 전하는 공군의 대표 공중촬영사 편보현 상사가 후방석에 타고 있는 항공기였다. 접근하던 3호기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이어졌다. 그 요구들에 맞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기도 하고 헬멧의 햇빛가리개를 올리기도 하는 사이 항공기가 급제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래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느새 제주도에 가까이 온 것이었다. 제주도 인근 기상은 김해와는 전혀 달랐다. 간간이 낮은 구름만이 흘러갈 뿐 제주 인근 해상의 짙고 푸른 바다를 온전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원주기지에서 이륙해 제주공항까지 1시간 가까이 비행할 수 있었지만 기상사정으로 김해기지에서 이륙한 터라 제주까지 불과 20여 분만에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륙하는 기지의 기상도 그렇지만 착륙하는 곳의 기상 상태도 고려돼야 했고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아예 비행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설명을 착륙 후에 듣고서야 서운함이 조금 가셨다.

 제주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싶더니 1번기가 갑자기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1번기를 따라 2번기도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순간 항공생리훈련을 받을 당시 가속도 내성 훈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활주로에 접근하기 위한 가벼운 선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암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순간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려고 했지만 중력을 이겨내기엔 근육의 힘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드는 것을 포기하고 무릎에 올려놓은 채 렌즈 방향만 조절해 셔터를 눌러댔다.

 “착착착착” 연속 촬영되는 셔터음이 이어지는 동안 항공기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제주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제주공항을 길게 한 바퀴 돌아 주기장으로 들어오는 데 정비사들이 환호하며 반갑게 맞아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귀환하는 항공기를 정성스럽게 맞아 주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남해바다를 건너 제주도까지 짧은 비행을 한 블랙이글 T-50B 항공기들은 간단한 점검과 급유만 받은 후 곧바로 싱가포르를 향해 아쉬움과 긴 여운을 남긴 채 떠나갔다.


 

첫 장거리 항로비행 나선 블랙이글 ‘결전의 땅’ 싱가포르 향해 순항중

 

<싱가포르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사상 첫 장거리 항로비행에 나선 블랙이글 T-50B 항공기가 브루나이 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53특수비행전대)이 세계 3대 에어쇼 중 하나이자 아시아 최대 에어쇼인 싱가포르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사상 첫 장거리 항로비행에 나섰다.

  블랙이글의 해외 에어쇼 참가는 지난 2012년 영국에서 개최된 와딩턴 에어쇼, RIAT(Royal International Air Tattoo), 판보로 에어쇼에 참가해 최우수디스플레이상·인기상 등을 휩쓴 지 1년 6개월 만이다.

 지난달 31일 모기지인 원주기지를 출발한 블랙이글 T-50B 항공기 9대는 각각 5대와 4대씩 편대를 이뤄 김해·제주·대만을 거쳐 순항하며 3일 현재 필리핀과 브루나이에 전개했다. 이와 함께 지원요원 100여 명과 각종 수리부속 등 군수지원 물품을 실은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C-130 수송기 3대 역시 같은 경로를 거치며 블랙이글의 사상 첫 장거리 항로비행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5400여㎞에 달하는 장거리 항로비행을 위해 T-50B 항공기는 보조연료탱크 3개를 부착한 채 비행하고 있다.

 또 C-130항공기 3대에 나눠 타고 대만·필리핀·브루나이에 각각 전개한 100여 명의 지원요원은 각 경유지에서의 정비와 급유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국산 초음속 항공기인 T-50B의 순항 능력을 입증을 지원하고 있다.

 블랙이글 T-50B 항공기와 지원요원이 탑승한 C-130 항공기는 4일 오후 결전의 땅 싱가포르에 도착한다.

 이후 현지 적응훈련을 마치고 블랙이글은 오는 11일부터 16일까지 6일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개최되는 싱가포르 에어쇼에 참가해 화려한 공중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글·사진=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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