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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훈련의 끝판왕 유격훈련

유격훈련

 

병역을 필한 분들께서 훈련병 또는 자대근무시절을 회상한다면, 아마 유격훈련이 가장 뇌리에 남을 것이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대답을 해도 조교들은 항상 목소리가 작다며 교육생들을 신랄하게 닦아세우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마지막 번호 구호는 언제나 튀어나온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이 훈련을 왜 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신과 육체가 한계에 다다를 무렵 어머님의 노래는 또 왜 시키는지....

이런 추억(?)이 가득한 유격훈련은 어느덧 교육생들을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탈바꿈시켜놓는다. 참으로 마법 같은 훈련이다. 오늘은 군 교육훈련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유격훈련에 대해 알아보자.

 

유격이 시작되자 훈련병들의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자~ 이제 시작이다.


유격훈련의 역사

일단 유격이란 말을 알아봐야 한다. 유격이란 말은 한 마디로 비정규전을 뜻하는데, 장거리 정찰이나 적 후방 등에서 교란작전 등을 수행하는 것이 통상적인 유격전의 의미이다. 이런 활동으로 유명한 것은 미국의 레인저(RANGER).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활약한 레인저는 영국군의 후방에서 히트 앤 런 작전을 펼치거나 장거리 강행정찰을 수행함으로 그 명성을 떨친바 있다. 보통 이들은 유능한 사냥꾼으로 구성되었는데, 넓은 지역(RANGE)에서 활동한다는 의미로 레인저란 명칭이 붙었다. 아무튼 영국군은 이 레인저들에게 혼쭐이 났고, 1차 대전 이후 영국군은 코만도부대를 창설하면서 과거 레인저 부대원들의 작전수행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훈련방식을 채택했다. 바로 이 훈련이 유격훈련의 시작이었다. 곧 레인저의 본가였던 미국도 유격훈련을 도입했고, 이 덕분에 아직도 레인저 훈련을 유격훈련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국군이 창설되면서 미국의 훈련방식을 도입해 유격훈련이 실시되었다.

 

18세기 레인저의 모습.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영국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유격훈련의 목적과 내용

과거 근대 군대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제식훈련, 사격훈련, 그리고 총검술 훈련 이었다. 전투에서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제식훈련을 했고, 사격은 기본이었으며, 당시의 전투는 대부분이 장렬한 백병전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의 기관총과 참호, 철조망은 이제껏 모든 전쟁의 상식을 뒤바꾸어 놨다. 일제돌격은 기관총 앞에 녹아 없어졌고, 수많은 참호와 포탄구멍, 철조망은 그때까지 제식훈련을 받아왔던 병사들에게 상상도하기 힘든 험악한 전장 환경을 선사했다. 당장 훈련의 변화가 필요했다. 기관총의 세례를 피하며 험지를 돌파하고, 각종 장애물을 신속히 돌파해 적을 제압하는 훈련이 그것이었다. 1차 대전의 교훈은 각국에 유격훈련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1차 대전의 전장 환경은 험지에 대한 신속한 이동 및 돌파가 필요함과 동시에 제식훈련이 전혀 필요 없는 곳 이었다.

 

 유격 훈련의 목적은 간단하다. 전장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험지를 신속하게 돌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고, 그 결과 악마의 체조라고 불리는 PT 체조가 탄생하게 된다. 유격훈련에는 장애물극복 훈련과 PT 체조 외에도 도하 및 탈출훈련, 참호격투훈련등도 추가된다. 참호격투훈련은 미군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은 훈련으로 진짜 격투를 벌이지는 않지만, 상대를 밀어내는 과정에서 집단 백병전의 묘미(?)를 실제보다 1/100 정도 느낄 수 있어 피교육생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도하훈련에는 꽤 다양한 도하코스가 있는데, 산지가 험하고 소규모 하천이 즐비한 한국의 지형에서는 정말 중요한 훈련코스중의 하나이다. 탈출훈련은 주로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유격 훈련이다. 보통 FTX 코스라고 하는데, 1주일간의 전술행군을 통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적 구역 밖으로 탈출하는 꽤나 강도 높은 훈련이다.

 

참호격투는 유격으로 지친 훈련병들에게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훈련병들은 유격훈련 중 다양한 종류의 도하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


 해병대는 더욱 강도 높은 유격훈련이 실시된다. 기본 유격 훈련에 산악과 레펠 코스가 추가된다. 산악유격훈련은 단순 산악 행군이나 구보는 물론, 암벽등반 등의 고난이도 코스도 포함되어있다. 역시 해병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암벽훈련 중인 해병대 훈련병의 모습. 해병대의 유격훈련은 강도 높기로 유명하다.

 

 

세계 각국의 유격훈련

영국은 앞서 얘기한 코만도 훈련 중 장애물극복 훈련내용을 일반 신병교육에 추가시켰고, 미국은 레인저훈련, 혹은 게릴라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유격훈련을 실시한다. 보통 미군의 유격훈련은 비교적 강도가 약할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미군의 유격훈련은 언제나 실전을 치루는 나라답게 매우 실전적이고 강도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유격훈련과 시가지전투훈련이 접목된 훈련은 마치 전장 한 복판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여타 유럽의 선진국들도 비슷한 코스의 유격훈련을 실시한다. 특히 독일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장애물 극복훈련방법을 개발했고, 이 시스템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에도 레인저코스가 있다. 일본 자위대 내에서 최강으로 불리는 레인저부대가 실시하는 훈련으로 전형적인 유격훈련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훈련을 참관하거나 직접 받아본 군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보이스카우트 훈련장에 온 것 같다고.....

 

레인저 스쿨에서 유격훈련중인 여성 대원. 미군은 여성대원들에게도 남성대원들과 동일한 훈련과정을 소화하도록 한다.

 

유격훈련중인 일본 자위대 최정예의 레인저 대원들. 누가 훈련병이고 누가 교관인지 모르겠다. 게다가.....유격훈련 치고 옷도 너무 깨끗한데?

정리하며

분명 유격훈련은 가장 강도 높은 훈련이다. 하지만 이 훈련의 목적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실전에서 험지에 봉착하면 훈련받지 않은 인원들은 당장 당황하게 되고 이는 곧 작전수행의 차질을 가져온다. 하지만 유격훈련 등으로 다져진 인원들이라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험지를 극복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승패의 결정적인 차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유격훈련을 그저 피교육생을 마구 굴리기 위한 훈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미군의 매우 실전적이고 복합적인 유격훈련은 매우 주목해볼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격훈련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피교육생들에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해주어야 한다. 실제 전장에서 훈련경험의 유무에 따라 승패를 가를 수 있는지, 나아가서는 생존에 어떤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피교육생들에게 강력히 각인시킨다면, 유격훈련은 가장 강도 높지만 가장 필요한 훈련이라고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유격훈련장 앞에 있는 문구. 무자비한 훈련은 전장에서 생존의 열쇠가 될 것이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