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타격 ‘원조’…北 총격 도발에 포격 격멸

- 육군3사단 71포병대대, ‘3·7 완전작전’ 44주년 기념행사

 


1973년 3월 7일 고립된 아군 구하고 적 GP 초토화

사단 모든 트럭 조명 켠 채 돌진…북측 ‘간담 서늘’케


육군3사단 71포병대대 장병들이 전사에 빛나는 ‘3·7 완전작전’ 44주년을 맞아 선배 전우들의 옛 군복을 입고 당시 포격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부대 제공



“북괴 놈들의 만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사단장이 지시한다! 지금 당장 71대대는 적 GP를 향해 포격을 실시하라!”


고(故) 박정인 육군3사단장의 추상 같은 명령을 재연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뒤, 우리 군의 옛 군복을 입은 3사단 71대대 장병들이 일사불란하게 견인포를 장전했다. 이어 견인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자 북한군 GP로 설정된 가건물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3사단 예하 71포병대대는 7일 ‘3·7 완전작전’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고, 정신적 대비태세를 고취하기 위해 기념행사를 했다.


이날 행사는 당시 상황을 부대 장병들이 생생하게 모사하는 작전 재연과 지난해 타계한 박정인 장군 추모, 3·7완전작전 경과보고, 부대관리 유공자 표창으로 이뤄졌다. 또 전반기 부대개방 행사와 함께 진행돼 북한군에게 공포를 안겨준 우리 군의 용맹한 역사를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 


3·7완전작전은 1973년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우리 장병들에게 불법 총격 도발을 한 북한군을 포병 화력으로 완벽히 제압한 ‘도발원점 타격’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는 등 남북 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3사단 지역의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들며 표지판을 훼손하는 등 상습적으로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화전양면전술이었다. 


 



73년 3월 7일, 북한군이 훼손한 표지판을 수리하기 위해 DMZ에 진입한 우리 병력들에게 적의 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근 우리 군 GP와 GOP에서도 박격포 등으로 대응사격을 했으나 북한군의 기습적인 총격 도발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3사단장이었던 박 장군은 부상한 채 고립돼 있는 장병들을 구출하고 북한군에게 도발의 말로를 알려주기 위해 포병사격을 지시했다. 71포병대대의 사격으로 적 GP가 침묵하는 사이 우리 군은 부상한 병력을 신속히 구해냈다. 





작전 직후 귀순한 북한군 군관 유대윤 소위는 “북한군 GP에 포탄이 정확히 떨어져 북한군 29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이로 인해 북한군에서는 백골사단을 가장 무서운 부대로 생각하게 됐다”고 증언해 당시 북한군의 피해가 상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장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같은 날 밤, 사단 내 모든 트럭의 조명을 켜고 DMZ 남방한계선까지 돌진하게 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김일성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당시 지휘의 취지를 밝혔다. 실제 사건 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전군에 비상동원령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연 행사에 국군 역할로 참가한 이정훈 상병은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며 “선배 전우들의 위업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승(중령) 71포병대대장도 “적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처절한 응징을 맛보게 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적에게 공포 안긴 ‘영원한 백골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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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잠자리 옆에 군화를 놓고 양말을 신은 채 잠을 자. 대한민국 장군으로서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곧바로 전선으로 달려가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내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지.”


‘3·7 완전작전’을 통해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으로 대응해야 함을 알려준 고(故) 박정인(예비역 육군준장) 장군은 지난 2010년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언제나 적과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박 장군은 1928년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태어났다. 월남한 그는 육사6기로 대한민국 군문에 들어섰다. 


6·25전쟁에 참전해 미군 전차 1개 소대와 함께 영천을 탈환하는 활약을 했으며, 6사단 19연대 작전주임으로서 북진 중 평안북도 희천에서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포로가 된 뒤 두 차례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 5개월여 만에 귀환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육군33사단장을 지낸 후 전방을 지키는 육군3사단장으로 보임됐다. 3사단장 시절이던 1973년, 북한군의 불법적인 총격 도발에 대응해 포 사격으로 적의 도발 원점을 타격한 ‘3·7 완전작전’을 지휘해 적에게 공포를 안겨준 맹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역 후 박 장군은 과거 육군본부 군사(軍史)처장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을 맡는 등 우리 군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과업에 매진했다. 또 2009년부터 2010년까지 142회에 걸쳐 국방일보 군사기획 연재물인 ‘남기고 싶은 그때 그 이야기’ 9편 ‘풍운의 별’을 통해 본인이 겪은 생생한 우리 군의 역사를 독자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본인과 아들, 손자까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호국 가문의 선례를 남기기도 한 박 장군은 후배들에게 “북한은 강에는 약으로, 약에는 강으로 대응하는 집단”이라며 도발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채 2016년 2월 3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故 박정인 장군 약력 


● 1928년 함경남도 신흥군 출생


● 1948년 육사6기 졸업


● 1949년 육본 작전국 작전장교


● 1952년 보병 제12사단 37연대 1대대장


● 1963년 육군본부 작전과장


● 1966년 육본 군사(軍史)처장


● 1968년 울산특정지역 경비사령관


● 1971년 보병 제33사단장


● 1972년 보병 제3사단장


● 1979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 1999년 향군 호국정신선양운동 총재


● 2016년 별세


국방일보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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