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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창간51주년 기획] 기자 5人의 현장취재와 에피소드

창간51주년 국방일보를 말한다 - 기자 5人의 현장취재와 에피소드

웃음 한 잎, 감동 한 잎… 잊지 못할 ‘취재의 추억’

 

취재 현장에는 늘 뒷이야기가 남게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자라 할지라도 기사에 오롯이 녹여내지 못한 앙금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발로 뛰는 취재’를 모토로 육·해·공군, 해병대, 국방부 등 각지에서 우리 군의 소식을 전해온 국방일보 기자들 역시 기사에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국방일보 기자들의 취재수첩 속 못다한 이야기…. 지금부터 열어보자.

  

 

 

 

아프리카 아이들 ‘아직도 생생’

김철환 기자

 

 남수단 재건지원단 한빛부대의 활약상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면서 취재장비 사이에 큰 사탕봉지와 아트용 풍선을 함께 챙겼다. 유니세프 등 저개발국가 지원을 위한 공익광고에서 본, 눈물이 그렁그렁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현지 아이들에게 작게나마 기쁨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였다.

 그러나 사탕봉지를 꺼내자마자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질서 있게 사탕을 받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한순간에 날아갔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사탕을 쥔 손을 향해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들어 쟁탈전을 벌였는데, 아이들의 억센 손톱에 상처만 잔뜩 입었다. 게다가 사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손을 내밀며 쫓아오는데 달리기는 어찌나 빠른지 결국 가지고 나간 사탕을 모두 강탈당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먹을 것을 나눠줄 때 이런 무질서한 혼란 상황이 발생해 한빛부대 경호팀이 굉장히 싫어한단다. 기대와는 다른 체험이었지만 사탕 하나도 절실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안쓰럽다. 남수단의 재건이 속히 이뤄지길 기원해 본다.

 

 


 

 

K2 전차가 야속해 ㅠ.ㅠ

맹수열 기자


 지난 2월 9일 경기도 양평군 종합훈련장. 혹독한 한기가 두꺼운 패딩 점퍼마저 파고들어 왔다. 나는 우리 육군이 자랑하는 차세대 전차 K2의 정규훈련을 참관하고 있었다. “직접 사격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은 안전문제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단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직접 K2 전차를 타고 기동하는 것. “기자로서는 처음이고 민간인으로는 두 번째”라는 그들의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기란 불가능했다.

 해치 밖으로 상반신을 내놓은 채 전차에 올라타자 헤드셋에서 이런 대화가 들렸다. “자~ 기자님이 타셨으니 살살 달립니다. 출발!”

 분명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그 안락함은 1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다음 들려온 지시. “시간이 없으니 지금부터 속도를 올려봅시다.” 그와 동시에 급가속. “흡!”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얼굴을 직격했다. 그렇게 ‘30분 같은 3분’이 지나고 만신창이가 된 나는 쓰라린 얼굴을 부여잡은 채 전차에서 ‘기어 내려왔다’.

 


 

 

마의 62시간 ‘아~ 씻고 싶어라’

이주형 기자

 

  지난 7월 광복 70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진행된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도중의 일이었다. 당시 객차마다 화장실과 세면실은 앞뒤로 각각 한 개씩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남녀용으로 지정해 사용했기에 200여 명이 넘는 우리 일행으로서는 필요한 때에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툭하면 2~3개 차량을 건너뛰며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불거진 것은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에 이르는 무려 62시간을 달려야 하는 구간이었다. 이 시기를 맞아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드라이 샴푸를 챙기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 가며 ‘도전! 머리 감기’에 참여,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한 이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양치와 세면 등 기본만을 유지하려고 한 이들이 있었다. 대다수는 기본 유지 쪽. 나도 그런 대세에 동참, 갈수록 자연인에 가까워졌다. 덩달아 수염도 이후 더 길고 하얗게 자라났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도 내 휴대폰 배경 사진으로 남아 있다.

 


 

 

장병 울린 ‘父情’ 기자도 울었다

조아미 기자

 


 꽃들이 만발한 지난 4월, ‘아들과 함께하는 하루’ 취재를 위해 육군15사단 포병연대 정홍선 일병과 정 일병의 가족을 부대에서 만났다. 정 일병의 아버지는 2009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는 정 일병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라고 물었다. 정 일병은 어두운 표정으로 “야단치고 때리던 분이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너와 두 동생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우리 장남 믿고 눈감을 수 있겠구나. 맏이라 강하게 키우려고 엄하게 대했고, 잘못하면 더 매를 들었다’고 말씀하셨어.”

 정 일병은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이를 보던 어머니도 소리 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몰라줬던, 그리고 다시 알게 된 아버지 사랑에 기자도 작고하신 아버지가 떠올라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

 충실히 군 생활을 해나가는 아들을 지켜주실 정 일병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부모님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영원한 나의 수호신’이라는 말이 취재 내내 맴돌았다.

 


 

커피향 타고 온 ‘반가운 편지’

김상윤 기자

 

  지난 9월, 반가운 편지 한 통이 기자 앞으로 도착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6월에 인터뷰했던 티토 피니야 주한 콜롬비아대사가 보낸 감사 서한이었다. 편지와 함께 도착한 콜롬비아산 커피 원두의 은은한 향기가 대사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영국·프랑스 등 총 7개 나라를 대상으로 진행한 ‘참전국 주한 대사 릴레이 인터뷰’는 섭외부터 취재까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가끔 통역이 없는 경우, 기자의 부족한 영어 회화실력을 대사 앞에서 선보여야 하는 진땀 나는 순간도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놀랐던 것은 각국 대사들의 병역에 대한 긍지였다. 군에 자원입대한 찰스 헤이 영국대사를 비롯한 다수가 “군 복무는 오늘의 나를 만든 소중한 경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황금 같은 젊음을 나라와 가족을 위해 바치고 있는 우리 장병들에게도 군 복무가 좋은 추억이자 명예로운 훈장으로 남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