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기네스] <6> 라이트형제의 플라이어호 보다 3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비행기, 조선의 비차(飛車)

 

지금까지 세계 최초의 비행기 라 하면 19세기 말, 미국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호’를 떠올리셨죠?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이전인 1590년대에 이미 비행기가 만들어졌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말이에요‘ㅁ’! 상상만으로도 흥미롭죠:)

기록으로 보는 재밌는 이야기, ‘M-기네스’에서 오늘은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 보다 무려 300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비행기, 비차(飛車)’ 를 소개합니다~!

 

 

 

 

 


 

 

# 세계 최초의 비행기,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조선의 '비차'

 

 


 

 

19세기 말, 라이트 형제가 동력을 이용한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하늘은 멀고도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사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호(號)

 

 

▲ 1905년10월에 성공한 플라이어3호의 비행  1908년11월3일 미국 국방부를 상대로 보인 시험 비행 

 

 

그런데 이보다 훨씬 앞선 임진왜란 중 우리나라에서 활약한 ‘비행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계신가요?!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과 이규경이 기록으로 남긴 ‘비차(비거)’가 그 주인공입니다.

 

 

▲ 공군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모형 비차의 모습

 

< 제   원 >

 전 장

6.3m

 전 폭

11.5m

 전 고

 1.3m x 6.3m

 총 중 량

 32.5㎏

 구 성 재 료

 대나무, 무명천, 마끈, 한지 등

 기  록

 조선시대 철종(1831 ~ 1863)때 고증학자 이 규경 선생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비차변증설(飛車辯證說)’ “임진왜란 (1592 ~ 1598)당시, 영남의 어느 고성이 왜군에 포위 당했을 때 비차(飛車)를 이용하여 성주를 탈출시켰다“ 고 기록되어 있음.

 고  증

 KBS 역사스페셜(2000년 4월 8일 방영)에서 고증 진행
건국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비차연구팀 설계 / 제작 (팀장 : 윤 광준 교수)
1590년대에 활용 가능한 재료와 수레, 연, 선박 등의 제조 기술을 이용하여 제작
2000년 3월 4일, 고도 20m에서 74m 활공비행 성공

 

 

19세기 고증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임진왜란 때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차(飛車)를 만들어 영남의 어느 고성(古城)이 왜군에 포위당했을 때 성주(城主)를 탈출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임진왜란 때(1590년대) 정평구란 사람이 비차를 만들어 진주성에 갇힌 사람들을 성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 비거(비차)는 30리를 날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죠.

30리는 약 12km.정도의 거리를 말하는데요~ 용도나 비행거리를 볼 때 비거는 바람을 타고 나는 일종의 ‘헹글라이더’였던 셈인 것 같네요.


비차가 실존했다면 이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무려 300년이나 더 앞선 것으로 세계 비행역사를 바꿀만한 발명품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부품이나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아 비차의 형태나 존재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ㅠㅠ

설계도 등 기초 자료가 남아 있었다면 세계 비행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텐데 안타깝지요.. 발명가인 정평구도 진주성 전투 중 전사했기 때문에 제작방법이 후세에 전해지지도 않았어요. 
 
정평구 에 대한 기록은「오주 연문장전산고」이외에도 실학자 신경준의「여암전서」에도 남아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정리된 「김제 군지」와 정평구 후손들의 족보에서도 정평구의 비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재주를 부려서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을 농락했고, 비차를 만들어서 포위를 뚫고 연락과 물자를 운반했으며, 화약을 다루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벌통과 화약상자를 만들어 왜군을 혼냈다는 야사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 비차의 탄생

 

 


 


비차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92년, 약 300년 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남의 진주성이 왜군에 포위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 정평구(본명은 유연)라는 사람이 이상한 모양의 탈 것(날틀)을 만들었는데요.

이 신기한 것은 비행기의 전신인 비차, 곧 하늘을 나는 수레였던 것이지요.

비차는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한 번에 네 사람이 탈 수 있었습니다. 날아가는 모양을 땅에서 보면 마치 따오기 모습 같았고,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생겨 공중으로 떠오르는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100길(약 150미 터) 가량 높이 날았다는 이 비행기는 돌개바람이 불면 힘없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 과천국립과학관에 전시되어있는 모형 비차의 모습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던 진주성은 이 비차로 긴급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또 다른 성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탈출시키는데도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하도 신기하여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하네요.
게다가 정평구는 비거를 활용하여 왜군의 후방과 측면을 공격해 왜군을 교란시켜 진주성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비차는 어떻게 날았을까?!

 

 


 



비차는 어떤 원리로 하늘을 날았을까요?
 
“그 기술을 모방하려면 먼저 하나의 수레를 만들어 나르는 연처럼 깃과 날개를 달고 그 속에 기구를 설치하고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는 자벌레가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하여 바람과 기운을 내게 한다면, 두 날개가 자연히 날아서 한순간에 천 리를 가는 형세를 짓고 그것을 줄로 가로 세로 엮어 매어 신축성이 있게 하고, 비차 속에서 풀무질하여 규칙적으로 센 바람을 일으켜 대기 위에 뜨게 한다면 그 형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비차는 정확한 그림 자료가 없어서 지금으로서는 그 모양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으로 그 생김새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비차의 모양이 나는 연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 '연'이라는 글자에는 새, 즉 제비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서 새의 모양이 비차 의 기본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비차는 비행기와 같이 스스로 추진력을 가지고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받아 날아오르는 연의 원리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 비차의 복원

 

 



 
KBS ‘역사스페셜 팀’에서 건국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에 의뢰하여 과연 조선시대에 이러한 글라이더 같은 것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였는가에 대해 실제로 시험을 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이규경의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재료 즉 대나무, 광목 그리고 그 시대에 쓰였던 매듭을 사용하여 정평구의 비거를 복원, 시험비행을 시도했었는데요. 그 결과 당시의 기술과 재료만 으로 사람을 태우고 20미터 높이에서 70미터까지 날 수 있는 글라이더 정도는 실제로 제작이 가능했으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정평구의 비차를 복원해 시험비행을 시도하는 모습


 
세계 최초로 제대로 된 글라이더 비행을 한 것은 1800년대오토 릴리엔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동력 글라이더는 비행기로 분류되지 않지만 만약 비차가 동력이 없는 무동력 글라이더였다하더라도 그 당시에 실존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요?!..

 

 

 

'M-기네스' 는?! 기네스북에 오른 군 관련 기록이나

최고, 최초, 최대, 최소 등 기록과 군을 연결한 흥미로운 소재를 기사화한 블로그 컨텐츠 입니다.

다음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헬기' 에 대해 알려드릴께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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