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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

가시철사는 미국 농부의 세계적인 발명품


 '군대' 또는 '전쟁'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군복, 전투식량, 각종 무기까지 다양한 사물이 떠오르지만 그 중 '가시철사(Barbed wire)'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실제로 우리는 군 부대를 지나면서 혹은 스크린 속 전쟁영화에서 가시철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시철사(Barbed wire), 읍천항, 2012, 작가 : 손혁

 현재 가시철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에 따른 비극과 억압을 상징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시철사는 군에서 고안해 낸 것일까? 놀랍게도 가시철사는 미국 일리노이 주의 농부가 만들어서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큰 변화를 남긴 발명품이다.

조셉 글리든이 초기에 손으로 만든 가시철사의 견본. "The Winner"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리노이 주 드칼브 시의 Ellwood House Visitor Center에 있는 Barbed Wire History Museum에 보관. 사진 : A. McMurray

1862년, 이민자가 미국에 거주하거나 토지를 개척하는 경우 최대 160에이커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홈스테드 법'이 제정되어 값싼 울타리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가시철사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의 시도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시철사의 발명에 마지막으로 기여하여 생산기계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고(1874), 이후 엄청난 이익을 거두어들인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조셉 글리든(1813~1906)'이었다. 열 세살때부터 목동 일을 했던 그는 양들이 철사로 된 울타리를 넘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일을 했는데, 양들이 울타리를 넘어 이웃 농장에 피해를 주는 일일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셉 글리든은 양들이 장미 넝쿨의 울타리로는 접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시철사의 구조를 설계한다.

조셉 글리든의 가시철사 특허 도안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의 들에는 목장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작물을 지키려는 농부들이 가시철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설치방법과 재료가 간단하고 효용성이 높아 글리든의 가시철사는 1874년 1만 파운드어치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1876년에는 300만 파운드나 팔렸다. 그리고 글리든이 처음 가시철사 다발을 판매한지 2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 서부의 모든 개인 사유지에 철조망이 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셉 글리든이 사망한 1906년, 그는 미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토머스J.크로웰, 역사를 수놓은 발명 250가지 참고)

이처럼 가시철사는 한 농부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고 농부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카메론 주드는 가시철사에 대해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

"가시 철사의 원료를 찾는 것이 두려웠으며,
 
가시철사의 가시는 작은 비수처럼 보였다."
 
발명품의 시작은 단지 목장의 울타리였지만,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시철사가 전쟁과 경계의 상징이 될 것을 예견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시철사가 처음으로 전쟁에서 쓰인 것은 미국-스페인 전쟁이었고 1년 후 보어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1930-1940년대에 걸쳐 유럽에서는 나치가 강제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가시철사에 전기를 가해 사용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웃 목장과의 경계 역할을 하던 가시철사가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또는 사람 간의 경계가 된 것이다.

"An attack : A wiring party going forward"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자 군인들이 가시철사로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전진한다.

 한 농부의 일상적인 발명품이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이를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안타까운 점이 있다. 역사 속에서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며 갈등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이나 칼과 같이 인류 역사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발전을 이끌어 낸 발명품 또한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낳는다. 가시철사의 경우에도 조셉 글리든의 눈에는 농부의 편의를 돕는 울타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에 대한 갈등을 쌓으면서 조금씩 전쟁과 억압의 도구로 변화한 것은 아닐까? 지금 누군가가 세계적인 발명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최고'의 발명품이기를 기대해 본다.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 김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