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평화 깬 도발에 우리는 이겼고 또 이기리라
연평도 포격도발 3주년 기획-리뷰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으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순간에도 K-9 자주포 적 진지 향해 불뿜어
적이 대한민국 영토와 국민을 무차별 공격한 연평도 포격도발이 어느덧 3년이 흘렀다. 북한이 기습도발을 자행한 날 평화롭던 연평도는 시뻘겋게 불타올랐다. 이로 인해 꽃다운 나이의 장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우리 군은 적의 만행에 절치부심, 서북도서를 중심으로 전력을 대폭 증강해 즉각 응징태세를 구축했다. 적의 기습도발 순간과 해병대 연평부대 장병들의 신속한 대응사격 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연평도 포격전이 발발한 2010년 11월 23일.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원이 화염 속에서도 대응 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연평부대원들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적 포탄 속에서도 신속한 대응사격으로 전투를 승리로 종결지었다. 사진=해병대 제공>
▲ 연평도 평화 깬 적 기습 포격
해병대 연평부대 권인태 소령(이하 당시 계급)은 2010년 11월 23일 아침 지휘통제실에서 당섬을 바라봤다. 여느 때보다 깨끗한 하늘과 바다, 꽃게잡이 출어를 준비하는 선박들이 마치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는 해상사격훈련 대비태세를 위해 해양경찰에 조업선 복귀 시간 준수 협조를 요청했다. 오전 10시 1차 사격훈련 주민 홍보방송과 함께 해상관측반을 각 숙영지와 초소에 배치했다. 2차 주민 홍보방송까지 차질 없이 준비를 마쳤다.
오후 1시 30분. 포7중대 K-9 자주포 원거리 사격은 순조로웠다. 표적은 연평도 서방 4.5㎞ 지점 해상이었다. 낙탄된 K-9 자주포 탄착점은 대부분 50m였고, 북방한계선(NLL) 밖으로는 단 한 발도 지향하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 포7중대 사격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포6중대 사격을 기다리던 중 고성능 카메라가 적 해안포 주둔 지역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포탄을 촬영했다. 권 소령은 고사포 사격으로 직감, 해안중대와 관측소에 철저한 해상관측 명령을 하달했다.
연평부대장은 어떤 종류의 화기가, 어느 지점에서,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분석해 나갔다. 그러나 채 1분도 흐르지 않아 ‘꽝’ 하는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적의 기습사격이 분명했다. 연평부대장은 지휘통제실을 안정시키고 상급부대에 대응사격 허가를 요청했다.
오후 2시 34분. 해상사격 훈련을 마친 김정수(대위) 포7중대장은 지축을 울리는 파열음에 깜짝 놀라 포상으로 뛰쳐 나갔다. 주둔지에 4발의 포탄이 떨어져 K-9 자주포 2문이 화염에 휩싸였다.
사격훈련 때 사용한 폐장약이 연소하면서 ○포 내부에 매캐한 연기와 불꽃이 진동했다. 이영주(하사) 포반장이 “가스”를 외치고 포반원들에게 방독면 착용을 지시했다. 장비 이상 유무를 확인한 결과 표적지시기(전시기)가 작동 불능이었고 포상의 불길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탄약과 장약에 불길이 옮길 수 있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화재진압에 돌입했다. 포반원들은 누구 하나 겁먹지 않고 불길을 잡아 나갔다.
그날의 영웅들을 기억하기에…더 강한 해병되려 쉼없이 훈련
▲ 승전 신호탄 K-9 자주포 대응사격
전역을 2주일 앞두고 있던 ○포 사수 정병문 병장은 폭발음에 잠시 청각을 잃었다. 김영복(하사) 포반장은 파편을 맞아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손짓으로 엎드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행히 포반원은 전원 무사했지만 구동제어기에 불량코드가 보였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장비를 소산시킨 후 재점검했다. 하지만 자동사격은 불가했다. 그때 ‘치지직’하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피해 현황 보고하고, 곧 사격명령 내릴 테니 준비하라”는 중대장의 명령이었다. 포반원들은 반자동 사격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포7중대원들은 침착하되 신속하게 사격절차에 들어갔다. 2문의 K-9 자주포가 “사격준비 끝”을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비가 일부 손상돼 임무가 불가능했던 자주포도 수동 사격으로 전환, 사격명령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2시 47분. “사격”이라는 연평부대장의 단호한 외침과 함께 ‘승전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졌다. K-9 자주포가 적 해안포 진지를 향해 불을 뿜은 것이다. 김 중대장은 포연탄우 속에서도 해병대 정신을 불사르는 중대원들을 보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사격 도중 포반과의 통신이 두절돼 복구조를 투입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 그러나 전명준 상병은 한치 망설임 없이 포반 유선망을 복구했고, 화염에 휩싸인 ○포 장병들을 포 밖으로 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적의 포탄은 군부대와 민간인 지역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말년 휴가를 떠나던 서정우 병장이 전사했다. 서 병장은 마지막 휴가명령를 받고 인천으로 나가기 위해 연평도 선착장에서 여객선에 탑승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부대로 자진 복귀하다 포탄 파편을 맞았다. 그는 연평부대 중화기중대 최고 공용화기 사수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문광욱 이병도 마찬가지다. 연평부대 본부중대 수송반에서 근무하던 문 이병은 이날 포병 사격훈련장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적 포탄 속에서 가장 먼저 달려나가 전투준비를 하던 중 포탄 파편상을 입어 전사했다.
▲ 필승 자부심 해병혼으로 영원히
의무실 주변에도 11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의무부사관 이재선 하사와 전입 3개월이던 의무병 강병욱 이병은 피 흘리는 전우를 살리기 위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군종목사 하승원 대위는 피로 얼룩진 부상자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또 포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본부중대 인사병 백종협 병장과 화재진압에 몸을 던졌다.
오후 3시 12분. 적의 포격도발이 재개됐다. 대포병 탐지레이더가 탄도를 잡아 적 발사 진지를 포착했다. 연평부대장은 화력참모와 포7중대장에게 탐지된 적 발사진지로 ○○발을 사격하라고 명령했다. 포7중대는 적 개머리 포진지에 대응사격을 가했다.
오후 3시 41분. 적의 포성이 멈췄다. 숨 가쁘게 전개한 아군의 대응사격도 종료했다. 북한은 이날 민간인 지역을 포함해 170여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연평부대는 2명이 전사하고 장병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연평부대 관계관은 “3년 전 그날 연평부대원들은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신속히 대응해 승리를 일궈냈다”며 “승리의 기억과 자부심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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