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의 항공기술은 막 꽃을 피우며 황금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때 미국은 정말로 다양한 제트기를 내놓으며 그 기술력을 과시했으나, 이 당시 개발된 항공기들 중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항공기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아니, 한 가지는 예외이다. 바로 ‘스파이 항공기’의 대명사 U2가 그것이다. 오늘은 21세기에도 전설을 이어가는 U2기에 대해 알아보자.

 

U2의 탄생배경
2차 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세계는 미·소의 냉전으로 양분되었고, 이 시기는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던 때다. 1950년대 초반은 아직 인공위성이라는 물건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스파이나 정찰기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적의 주요 시설이나 군대가 어디 배치되어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항공정찰이 무엇보다도 요긴했다. 하지만 미국은 드넓은 소련 땅을 들키지 않고 기존의 정찰기로 항공 정찰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즉, ‘들키거나 격추될 염려 없이 적진을 드나들 수 있는’ 궁극의 정찰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계획은 미 공군이 아닌 CIA가 주도했다. 당시 그 어떤 기관보다도 소련에 대한 정보가 목말랐던 CIA는 미 공군 대신 신형 정찰기를 직접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CIA는 록히드사와 접촉하여 1955년 7월, 계약한지 8개월 만에 U2기를 인수받는다. U2기의 구체적 목표는 고도 20,000m 이상에서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5,000Km 이상의 거리를 비행하는 것 이었다. 이를 위해 제작사인 록히드사는 ‘엔진달린 글라이더’ 개념의 정찰기를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U2였다. 보통 정찰기는 R(Reconnaissance:정찰)코드가 붙는데, CIA는 보안유지를 위해 헬리콥터에나 붙는 U(Utility:다용도)코드를 붙여 운용하였다.

 

초기의 U2기 모습. 우리가 알던 모습과 약간 다르고 기체도 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U2의 데뷔와 활약
이듬해부터 실전 배치된 U2는 당시 냉전의 정점에 있었던 서독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련의 위성국인 동독과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 공산국가 전체를 샅샅이 훑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 본토까지 정찰영역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키예프나 민스크, 모스크바 같은 소련의 주요 도시들을 정찰하는데 성공했고, 점점 소련 내부의 군사시설들도 U2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아직은 정찰위성이 없던 시절, U2가 제공하는 정보들은 너무나 귀중했다. CIA의 인적자원(한마디로 스파이)만으로는 소련의 광대한 영토에 흩어져있는 중요군사시설의 정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었기에 U2가 제공하는 정보는 CIA에게 마치 복음과 같았다. 특히 냉전시절 최대의 위기였던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도 U2는 쿠바상공을 넘나들며 정찰활동을 했었고,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북한까지 미국이 정보를 원하는 나라가 있다면 U2는 마다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유럽에 배치된 U2기는 곧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작전을 수행하였다. 하늘에서는 의외로 검은색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

 

U2의 고난
하지만 U2에게 드디어 어둠의 그림자가 덮쳐왔다. 소련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국 영공을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항공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소련은 공식, 비공식 루트를 통해 미국의 불법적인 영공침입을 항의했지만 미국의 대답은 일관되게 다음과 같았다.

‘그런 것 없다’

 

소련은 무려 4년 동안 여러 방법으로 이 정체불명의 항공기를 격추하기위해 안간힘을 썼고, 드디어 1960년 5월, 무려 14발의 소련제 최신형 SA2 지대공 미사일이 U2를 향해 날아올랐고 이 중 한발이 명중했다. 그리고 ‘피격 시 청산가리 캡슐을 삼켜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U2기 조종사 ‘게리 파워즈’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고, U2 정찰기의 존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1962년에는 쿠바 상공에서 또 1대가 격추당했다. 하지만 악몽은 중국에서 일어났다. 특이하게 미국은 대만에 배치한 U2기에 대만인 조종사를 탑승케 하였는데, 1967년 까지 무려 5대의 U2기가 중국 상공에서 격추 당했다. 이로써 U2의 신화는 완전히 무너졌으며, 결국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상대방 국가의 국경을 넘지 않는 새로운 운용방법이 시행되었다. 더구나 새로운 강력한 라이벌이 출현했다. 마하 3.3이라는 가공할 속도를 내는 SR-71 정찰기가 등장한 것이다. SR-71은 미사일도 쫓아올 수 없는 속도로 엄청나게 높은 고도에서 작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격추되지 않는 항공기로 기록되고 있다. 이제 U2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

 

소련군에 포로가 된 게리 파워즈의 모습. 포로교환으로 고국에 돌아왔으나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 북경에 전시된 U2기의 잔해. 무려 다섯 대가 중국에서 격추되었다.

 

U2, 그 끝나지 않은 전설
하지만 U2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후발주자인 SR-71에 문제가 많았다. 엄청난 성능을 가진 SR-71이었으나 그만큼 연료소모량도 상상을 초월했다. 더군다나 고온·고압을 견디기 위해 기체 전체가 티타늄으로 제작되었고(그것도 소련산!), 기체전체에 레이더흡수 도료를 코팅했기 때문에 한번 비행 후 이를 유지보수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SR-71은 1m 날아갈 때 마다 1달러짜리 지폐를 뿌리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용이드는 항공기였다. 결국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CIA와 미 공군은 U2를 업그레이드한 U2R을 새로 만들어 일선에 배치했다. 비록 SR-71에 비해 성능은 부족했지만, 비용 대 효과 면에서 U2는 여전히 SR-71보다 뛰어났고, 광학기술의 발달로 U2는 더욱 정밀하고 먼 거리를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동안 체공할 수 있는 U2는 사진촬영뿐만 아니라 우수한 전자정보수집 장비를 탑재해 그 역할의 다양성마저 확보하게 되었다. SR-71이 일찌감치 퇴역한 지금, U2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세계 곳곳에서 알찬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U2를 대신할 목적으로 제작된 SR-71. 미래 항공기의 모든 조건을 갖췄으나 무지막지한 유지비는 천하의 미국도 손을 들게 만들었다.

오늘날 U2R의 모습. 기체위에 대형 합성개구레이더 돔이 보인다. U2는 아직도 현역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현재 U2기의 최대 라이벌은 글로벌 호크.

 

U2의 이야기 거리
▶ 1960년 5월 1일에 최초로 U2기가 격추 될 당시, 소련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U2기의 영공침입에 골머리를 앓던 소련은 반드시 정체불명의 항공기를 격추하겠다는 일념 하에 그동안 면밀하게 U2기의 비행경로를 분석했고, 이 비행경로에 위치한 산악지역에 당시 최신형 지대공미사일이었던 SA-2를 촘촘히 배치했다. 이윽고 U2기가 나타나자 소련군은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소련 미사일의 제1격은 어이없게도 요격을 위해 정찰기에 다가가던 소련 방공군 소속의 MIG-19 한 대를 날려 버렸고, 제 2파의 미사일이 게리 파워즈의 U2기를 포착하는데 성공, 기체 후미에 적중한다. 당시 초고고도용의 엔진들은 저연비와 저출력, 또 조종간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비행 중에 엔진이 멎어버리곤 하는 일이 매우 빈번했다. 이럴 경우 높은 고도를 활용해 최대한 활공하면서 엔진을 재시동 하도록 훈련받았다. 게리 파워즈는 격추 당시 엔진이 정지한 상태에서 통상운용고도 아래로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게리 파워즈는 교범대로 청산가리캡슐을 이용해 자살해야 했으나 그는 생존을 선택했고, 지상에 낙하하는 즉시 소련군에 생포되었다. 더구나 소련이 U2기를 격추한 사실을 알지 못 했던 미국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다 게리 파워즈의 생존을 확인한 후 국제적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포로교환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온 게리 파워즈는 방송국 헬기조종사로 취직했으나 1977년, 귀환도중 연료부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소련의 SA-2 지대공 미사일. 소련은 당시 이 최신예 미사일을 집중 배치해 U2를 격추했다.

 

▶ U2기는 고도 20km 이상에서 정찰활동을 할 수 있다. 최고 고도는 26km로써 거의 대기권에서 비행할 수 있다. 당시 소련의 최신예 요격기였던 MIG-19와 MIG-21도 U2기의 절반밖에 안 되는 고도로밖에 올라갈 수 없어서 요격이 불가능 했다. 당연히 U2기의 조종사는 기존 비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비행복을 착용했고, 사실상 우주복과 다름없는 여압복을 입는다. 특히 U-2의 고고도 장거리 체공능력으로 인해 파일럿은 장시간 비행을 하게 되므로 음료의 취수는 물론 식사와 심지어는 대소변까지 볼 수 있는 특수한 여압복이다.

 

U2 앞에서 포즈를 취한 U2 파일럿들의 모습. 파일럿이라기보다는 우주비행사에 가깝다.

 

U2 파일럿들의 식사용 튜브. 장시간 작전을 해야 하는 U2 파일럿들에게 식사는 필수적이어서 이런 튜브형 식사가 제공된다. 이 역시 우주비행사와 마찬가지이다.

 

▶ U2기는 동체보다 날개의 길이가 훨씬 긴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착륙이 쉬울 리가 없다. 랜딩기어는 동체에만 있기 때문에 기나긴 날개는 땅에 닿게 되기 때문에 이륙 시에는 날개에 보조바퀴기 장착된다. 착륙은 더욱 정교한 과정이 필요하다. U2기가 착륙할 때는 날개가 한쪽으로 처지지 않는지 봐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고성능의 스포츠카에 다른 U2기 파일럿이 탑승해 착륙하는 U2기의 뒤를 전속력으로 따라 달리면서 착륙을 컨트롤해줘야 한다.

 

이륙 시 U2는 날개에 이렇게 보조바퀴를 장착해야 한다.

 

U2가 착륙할 때 동료 스포츠카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U2에서 촬영된 지구의 모습. 날개의 실루엣이 없다면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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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