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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참전용사 희망드림코리아] ③에티오피아의 코리아타운 '예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북동쪽 한국마을 "예카"로 들어가는 입구 간판에 에티오피아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셀라시에 황제가 참전용사 위해 하사

공산치하 때 땅 몰수 당하고 핍박·차별

'불패 신화' 강뉴전사 270여명 아직 생존

굶주림·질병에 시달리며 힘든 생활

 

지구촌 곳곳에는 코리안타운이 있다. 제2의 한국으로 불릴 만큼 많은 한국인이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곳으로는 미국 LA를 비롯해 일본 도쿄 신오쿠보, 중국 베이징 왕징이 대표적이다.
 머나먼 이국땅 아프리카에도 코리안타운이 있다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아프리카 오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북동쪽에 ‘예카’라는 코리안타운(한국마을)이 있다. 이곳은 한국인이 사는 마을은 아니다. 6ㆍ25전쟁에 파병됐다 귀환한 참전용사들의 정착촌이다.

 

낙후된 구릉지에 형성된 한국마을 '예카'의 모습은 녹슨 함석지붕으로 뒤덮여 초라한 모습이다.


 예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곳은 도로가 끊기고 먼지가 펄펄 날리는 깡촌이다. 이 동네를 ‘코리아 사파르(한국마을)’라고 한다. 이 마을은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alassie) 황제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하사했다. 한국전쟁에서 귀환한 그들은 자랑스러운 에티오피아 군인으로서 황제의 총애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1974년 쿠데타로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핍박과 차별을 받았다. 그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고, 지역 사회로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됐다.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땅도 모두 몰수당했다. 평화롭고 풍요롭던 마을이 순식간에 풍비박산 났다.
 현재 아디스아바바 빈민가 언덕배기 예카에는 녹슨 함석지붕 아래 3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그 중에 5천~6천여 명이 참전용사와 후손들이다. 참전 영웅 후손들이 세계 최빈국의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하층민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모여 사는 한국마을 입구에는 에티오피아 국기와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진 간판을 설치해 놓았다. 6ㆍ25전쟁 포성이 멎은 지 65년이 지났지만 참전용사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산다. 한국전에서 받은 훈장을 소중히 간직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은 앞으로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다시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 가난 때문에 병원지료 엄두도 못 내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는 1951년 4월 황실근위대인 ‘강뉴(KAGNEW)’ 부대 1300명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인 1956년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6037명을 파병했다. 5진까지 모두 미군 대형 함정을 타고 태국, 필리핀을 거쳐 3주일 만에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들은 2개월간의 적응 훈련을 거쳐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참전 시절 촬영했던 사진을 보여주는 참전용사

 

 미 7사단 32연대에 배속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는 강원도 중동부전선인 적근산과 단장의 능선, 펀치볼 등의 전투에 참가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모두 최정예답게 용맹하게 싸워 253전 253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23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지만 포로는 한 명도 없었다.
 순수 전투부대로 파병된 강뉴부대는 전쟁고아들을 위해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고아원을 설립해 한국 어린이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특히 휴전 후에는 UN 국제아동긴급기금, 교회세계봉사단 등을 통해 전후 복구에 이바지하며 단계적 철수를 통해 1965년까지 한반도 안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참전영웅. 최근 세상을 떠나 이제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현재 약 270여 명이 생존해 있으며, 모두 80∼90대 노인이다. 참전영웅들은 대부분 굶주림으로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가난 때문에 병원 문턱을 넘을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국제개발협력 NGO 월드투게더 에티오피아지부장 이은태 씨는 “매번 들려오는 참전용사분들의 부고 소식에 마음이 급하다”며“ 더 늦기 전에 한분이라도 더, 한번이라도 더 그분들의 손을 잡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