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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

37년전 제1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1974년 11월15일 아침 7시30분, 북한의 남침의욕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남침용땅굴이 발견됐다.
당시 육군 25사단소속 선임하사 구중섭이 지휘하는 육군 수색조가 수색임무 를 수행 하던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수상이 여겨 그 곳을 파던 중 북한 초소로부터 갑자기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응사하면서 조사를 계속 한 결과 땅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로 남침용 제1호 땅굴이다.

당시 북한이 땅굴을 판 목적은 남침 시 1시간 내에 1개 연대 규모를 침투시키고, 남파 간첩의 비밀 통로로 이용하며, 요인의 납북 시에 빠른 길로 이용할 수 있고, 우리 군의 기밀을 탐지해 내기 위한 것 등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제1땅굴은 서울로부터 52km, 개성으로부터는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지표에서 250~450cm 깊이로 잔디가 죽지 않을 정도로 얕게 파고 철근이 세
가닥 들어간 조립식 콘크리트를 사다리꼴로 엮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당시는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어 남북이 서로 비방을 중지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모색하고자 다정하게 손을 잡던 시기여서 우리 국민의 충격은 몹시 컸으며, 동시에 북한의 상이한 속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74년 11월 15일에 최초 발견된 제1땅굴은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국민안보 교육 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오다가 1988년 이후 안전문제로 일반인 공개가 중단되어 왔으나 이번 행사로 23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육군 25사단에서는 제1땅굴 발견 37주년 기념 ‘Remember 제1땅굴’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땅굴을 발견하는데 참여했던 주인공 10여명과 25사단 사단장 및 장병 5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평도 포격도발 1주년과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이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장병들의 안보의식을 다지고 더욱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유지를 다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1부 초빙강연, 2부 땅굴 도보답사 순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1부 초빙강연에서 땅굴 수색 당시 북한군이 설치한 폭발장치로 인해 부상을 입은 예비역 박광호 소령(63세, 당시 수색 중대장)이 ‘제1땅굴 발견과 교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실시했다.

부대에 도착한 예비역 박광호 소령(63세, 당시 수색 중대장)과 예비역 구정섭 상사(63세, 당시 해룡연대 수색중대 선임하사)

박 소령은 “37년 만에 사단을 찾아 후배 장병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는 말로 시작된 강연에서 37년 전 땅굴 내부 수색작전의 생생한 설명과 함께 “겉으로는 평화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적화통일을 위해 땅굴을 파고 내려온 북한의 이중성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땅굴발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구정섭 상사(63세, 당시 해룡연대 수색중대 선임하사)는 "그때 갑자기 추워지지 않았으면 제1땅굴은 발견되지 않았을겁니다. 제1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구 상사는 “내가 땅굴을 발견한 것은 땅굴이 반드시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며 “후배 장병들도 북한은 절대 변하지 않았고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도발할 것이라는 경각심을 갖기 바란다”고 열변을 토했다. 또한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예비역 전우들도 당시의 작전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장병들의 안보의식 확립에 기여했다.

이어서 진행된 2부 땅굴 도보답사에서는 제1땅굴을 최초로 발견한 예비역 구정섭 상사와 작전에 참여했던 예비역 전우 10여명, 육군본부 땅굴 탐지과장 윤석담 대령, 육군 땅굴탐지 전문가 4명, 사단장, 장병 20여명 등이 땅굴 발견 현장에 직접 방문했다.


부대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제1땅굴 발견일인 11월 15일에 제1땅굴과 관련 장병 정신교육을 실시해 왔으나 이번처럼 당시 직접 땅굴을 발견하고 수색작전에 직접 참여했던 주인공과 현역 장병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땅굴발견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임영식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을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