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의 진화과정

공중에서 무엇인가를 지상으로 안전하게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속도를 크게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낙하산이다. 18세기부터 열기구가 등장하자 비상탈출용으로 다시 낙하산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사람이 착용하고 사용하는 낙하산이 1911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라이헬트’란 재봉사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진정한 낙하산은 1912년, 러시아 출신의 과학자 ‘그레브 코텔니코프’에 의해 만들어졌다. 낙하산은 곧 군사용으로 쓰여 질 듯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1차 대전에서 그 누구보다 비행기 조종사들에게 낙하산이 필요했지만 당시 군 수뇌부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종사들에게 낙하산을 지급하면 열심히 싸우지 않는 겁쟁이가 될 것이다.”

 

1차 대전에서 수 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군 수뇌부들의 이러한 시대착오적 인식은 결국 수많은 파일럿들의 생명을 잃게 만들었다. 이 당시 비행기들은 일단 피탄 되면 곧바로 검은 연기와 함께 불이 붙기 일쑤였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시착은 꿈도 못  꿨다. 결국 공중에서 온 몸에 불이 붙어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건 조종사가 사망하는 것은 마찬가지. 조종사들에게 권총이 한 자루씩 지급되었는데 이는 자살용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이 때는 아직 합성섬유가 나오기 전이라 섬유의 가격이 비싸서 현실적으로 대량의 낙하산 지급이 곤란하기도 했다.

 

피탄 되어 추락하는 독일 포커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추락하는 장면을 찍은 극적인 사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1935년 나일론이 발명되면서 섬유의 가격이 저렴해지자 낙하산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사용되었다. 가장 일반적으로 리본식 낙하산이 쓰였는데, 특히 2차 대전에서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각국의 공수부대는 낙하산의 애용자들이었다. 당시 공수부대는 낙하산을 이용한 대규모 공수작전으로 적 후방에 깊숙이 침투해 충격효과를 주는 등, 전략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최정예 부대로 자리매김 한다. 1940년 독일의 크레타 침공에서는 거의 1만에 달하는 독일군 공수부대가 전격적으로 공수낙하 했으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에는 무려 3개 사단 규모에 달하는 공수 병력이 투하되어 독일군의 후방을 괴롭혔다. 낙하산을 이용한 공수낙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물자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고립되자 독일공군사령관이었던 괴링은 공수낙하로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독일군에게 충분한 물자를 공급할 수 있다고 히틀러에게 말했다. 결국 수송기가 모자라 작전에 실패했지만, 이는 공수보급의 가능성을 보여준 예였다. 연합군의 유럽본토 상륙 후, 연합군은 심심치 않게 대규모 공수보급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공수보급은 단점도 있었다. 보급물자가 엉뚱하게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2차 대전 후반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은 이러한 횡재를 ‘처칠 보급, 또는 ’루즈벨트 보급‘이라 칭하며 야무지게 써먹었다.

 

2차 대전에서 대규모 공수작전은 드물지 않게 실시되었다. 적의 후방 깊숙이 침투한다는 작전개념이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루즈벨트 보급으로 미군 무기를 잔뜩 노획한 독일군의 사진.

 

현대전에 들어오면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공수작전은 점차 사라졌지만, 특수부대에 의한 공수작전은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고고도 이탈, 저고도 개방이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HALO 점프와 고고도 이탈, 고고도 개방에서 쓰이는 HAHO 점프는 특히 야간에 많은 작전이 이루어진다. 이 때 쓰이는 낙하산은 일반 공수병용 낙하산과는 약간 다른데, 이른바 ‘sell’이라고 불리는 기공이 있어 어느 정도의 활공과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HAHO의 경우 서해 상공에서 점프해 개성에 접지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이들 낙하산을 운용하는 공수병들은 경우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쓰고 작전하는 경우도 흔하다. 산소가 매우 희박한 초 고공에서 작전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HALO 점프를 실시중인 특수부대 요원들. 저고도에서 낙하산을 개방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HAHO 점프를 실시중인 특수부대 요원. 일반 리본낙하산과는 달리 낙하산에 공기 셀이 있어 방향전환과 활공이 가능하다. 산소마스크를 장착하고 있다.

낙하산의 미래
현재 가장 진보된 낙하산의 형태는 ‘윙슈트(Wingsuit)’를 응용한 낙하산이다. 윙슈트란 양 다리사이와 팔 사이에 날개가 달린 공중활강을 할 수 있는 슈트로 날다람쥐의 모습에서 착안해 제작된 물건이다. 익스트림 스포츠용으로 사용돼온 윙슈트는 최근 군사용으로 제작됐다. 바로 '그리폰(Gryphon)'이다. 독일의 벤처회사인 스펠록(SPELOC)이 제작한 그리폰은 고고도 강하작전(HAHO)용 낙하시스템이다. 그리폰은 스포츠용 윙슈트를 응용해 견고한 FRP 소재의 소형 글라이더에 낙하산을 장착한 물건이다. 활공키트(글러이더) 내부에 각종 장비의 탑재가 가능하고 스텔스 기능까지 가지고 있어 적의 레이더에 걸릴 걱정 없이 활공이 가능하다. 특히 최고 강하시속이 200Km/h에 달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낙하산보다 훨씬 신속히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활공키트의 날개폭은 1.8m이며, 약 10㎞ 상공에서 강하하면 40㎞ 이상 활공해 순식간에 위험지역을 통과, 원하는 곳에 낙하할 수 있다. 최근에 개발 중인 소형 터보제트엔진이 실용화 된다면 이동거리는 8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낙하대원의 헬멧에는 GPS와 함께 디스플레이를 내장하고 있어 목적지의 좌표와 위치를 파악해 자동으로 비행이 가능하다. 군사전문가들은 그리폰을 군에서 활용하면 별도의 특수부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리폰의 모습. 활공키트 안에 예비군복과 화기류, 탄약 등 개인 물자를 수납할 수 있다.

 

낙하산을 통한 물자 공수에서는 더욱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공수물자의 낙하에서 가장 난감한 점은 엉뚱한 곳에 물자가 도착하거나 혹은 더 최악의 경우로 적에게 물자가 넘어갈 위험성이다. 따라서 최근의 공수 보급에 GPS로 유도되는 낙하산을 이용해서 정해진 위치에 물자를 공수하는 방법이 연구되었으나 이미 GPS를 교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기 때문에  미 육군은 합동 정밀 공수시스템 Joint Precision Airdrop System (JPADS)이라는 새로운 낙하 유도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른바 스마트공수시스템이라고 불리는 JPADS는 일종의 로봇 낙하산(Robo Parachute)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GPS의 도움 없이 이미지로 목표를 파악하고 목표로 한 지점까지 낙하산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응용한 이미지 기반 장치로 JPADS는 정확하게 목표로 한 위치를 찾아서 물자를 낙하산으로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최근 머신 러닝 및 인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카메라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은 드론이나 위성에서 넘겨받은 목표 위치의 이미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공수하고자 하는 화물을 대략 150m 이내의 목표지점에 도달하게 만들 수 있다. 아주 높은 정확도는 아닌 것 같지만, 다른 동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낙하산을 이용하는 만큼 이정도의 오차는 감수 할 수 있는 범위이다. 현재 연구되는 JPADS는 2000파운드 (약 900kg) 화물을 낙하산으로 공수하는 시스템으로 우선 개발되고 있으며 앞으로 1만 파운드 (약 4.5톤)의 화물을 250m 이내 거리에 낙하시키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계획이다. 특히 GPS 재밍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목표물에 공수물자를 착륙시킬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며, 앞으로 군사적 목적의 공수는 물론이고 재난이나 구호 목적의 화물 공수 등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미 육군이 실험중에 있는 JPADS의 모습. GPS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미지기반 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지점 반경 150m 안에 낙하물자를 투하시킬 수 있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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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Trackback 0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