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空襲)의 발자취

 공군비행기이용하여 총격이나 폭격으로써

 습격하는 일 - 공중습격의 줄인 말

 

 

전쟁에서 항공기가 쓰인 이래 공습은 적에 대한 가장 유효한 타격수단이 되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습은 그 실질적인 위력+공포효과까지 더해져 공격을 받는 지상병력에겐 지옥에서 떨어지는 불벼락과 다름이 없다. 이는 현대전에서 제공권의 장악이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오늘은 세계최초의 공습에서부터 현대의 공습까지 공습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공습의 시작
역사상 최초의 공습은 1차 대전 당시인 1914년 8월 30일, 독일 항공기가 파리를 공습한 것이 기록된 최초의 공습이다. 하지만 전쟁초기에는 제대로 된 폭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폭탄을 승무원이 안고 날아올라 손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식의 공습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공습의 가능성을 직감한 독일은 ‘체펠린’이란 거대비행선을 만들어 영국의 수도 런던에 대한 장거리 공습에 성공한다. 이 공습은 영국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 1916년 9월 2일 14척의 비행선은 런던 상공에 나타나 수백 톤의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수백 명의 시민들을 사망케 하고 일부 공장들에 상당기간 조업중단을 하게 한 피해를 입혔다. 그 후 공습을 계속했으나 예상한 만큼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사이렌 경고로 미리 대피할 줄을 알게 되고 또한 대공화기와 전투기를 이용해 체펠린을 공격함으로써 독일의 폭격을 잘 막아냈다.

 

영국 상공에 나타난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 실질적 효과는 미미했으나 심리적 효과는 대단했다.

 

1차 대전 후반이 되자 참전국들은 제대로 된 폭격기를 만들고자 했으며, 특히 독일이 개발한 폭격기는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래서 탄생한 것이 고타 G IV 이다. 사진에 보면 아시겠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들은 조종석에 방풍유리가 없었다. 즉, 완전 개방된 조종석이어서 조종사들은 한 결 같이 에스키모 수준의 비행복을 입었다. 특히 고타 폭격기는 세계 최초의 산소마스크 장치도 장비되어있었고, 항공기내에 휴대용 액체 산소통을 싣고 임무 비행에 들어갔다. 또 임무 비행도중 비행기지에 급히 연락할 사항이 생기면, 기내에 보관된 새장에서 비둘기의 다리에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달고 기지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직 항공기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무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제국 육군 항공대는 이 쌍발 폭격기를 이용하여 꽤 쏠쏠한 재미를 봤다. 웬만한 당시 전투기들보다 순항 고도가 높고, 속력도 빨라서 전투기들도 따라잡기 힘들어 했다. 그러나 당시 항공기술의 한계가 명확했고, 또 숫자도 크게 부족했거니와 제대로 된 전술폭격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테러병기 이상의 활약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고타 폭격기를 보며 미래전쟁의 양상을 예측했다.

 

독일의 고타 폭격기. 한계점이 명확했으나 가능성 또한 무궁했다.

 

공습의 제왕 폭격기
1930년대가 되자 세계 각국의 항공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급기야 제대로 된 폭격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이 때부터 폭격은 지상군의 전투를 돕는 전술폭격과 궁극의 전쟁승리를 위한 전략폭격으로 나뉘어졌다. 폭격기가 공습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였다. 전술폭격기의 대명사에는 스페인내전 때부터 독일이 즐겨 사용한 슈투카가 있다. 풍압식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하늘에서 내리꽂는 슈투카의 모습은 그야말로 당시 공습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였을 것이다. 그 유명한 마지노선도 슈투카의 공격에 맥을 못 추었고,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 강대국들이 앞 다투어 이와 비슷한 급강하 폭격기나 전술 폭격기를 개발하는데 열을 올린다. 오롯이 공습만으로 대 성공을 거둔 진주만 공습에서도 이 급강하 폭격기가 대 활약을 했다. 일본군의 99식 함상폭격기는 전형적인 급강하 폭격기로 태평양기간동안 그 어떠한 무기보다 많이 미군 함선을 격침시킨다.

 

독일의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 현대로 말하면 정밀 폭격기이다.

 

일본 해군항공대의 99식 함상폭격기. 곧 구식이 되지만 미군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준 급강하폭격기이다.

 

전략폭격 또한 나날이 심해져갔다. 1943년부터 독일 전토는 거의 주‧야간 가릴 것 없이 공습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낮에는 미군 폭격기, 밤에는 영국군 폭격기가 독일을 공습했으며, 독일도 이에 질세라 꾸준히 양국의 폭격기들을 떨어뜨렸다. 미국의 B-17 ‘플라잉 포트리스’는 말 그대로 나는 요새답게 엄청난 폭장략과 방어용 총좌를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의 대표적 폭격기 ‘랭카스터’도 독일 본토 공습에 항상 앞장서왔다. 그리고 반대로 독일이 개발한 야간전투기는 영국군 공습을 약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법.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연합군은 공습의 강도를 높여갔고, 드레스덴 대공습의 경우 그야말로 드레스덴 시가지는 잿더미가 되었다. 드레스덴 시가지 중 6.5제곱킬로미터가 파괴되었으며 15만 채 이상의 집들이 파괴되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만 3만 5천이 넘었고, 공습에 따른 이재민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독일의 모든 도시들이 공습으로 파괴되어가자, 독일국민들의 사기는 눈에 띠게 저하된다.

 

미군의 B-17 ‘플라잉 포트리스폭격기. 2차 대전 미군 주력 폭격기이다.

 

연합군 폭격기를 요격하기위해 개발된 독일의 야간전투기. 기수에 레이더 안테나가 보인다. 

 

도쿄 대공습도 일본제국의 의지를 꺾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본은 1945년이 되어서야 미군으로부터 첫 공습을 맞이하게 되는데, 일본의 시가지가 목조주택이 많다는 것에 착안해 미군은 전격적으로 소이탄공격을 실시한다. 그리고 도쿄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소실된다. 이 도쿄 대공습은 일본제국 국민들의 의지를 철저히 부셔놨으나, 광적인 군국주의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며 이른바 ‘1억 총 옥쇄’를 부르짖다가 두 발의 원자폭탄을 맞고 비로써 항복을 하게 된다. 이렇든 현대전에 가까워 올수록 공습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공습의 중심에는 죽음의 폭격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도쿄 시가지. 소이탄 공습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현대의 공습
2차 대전 후, 공습은 이제 제공권을 장악한 측에서 매우 결정적 수단으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되었다. 6.25전쟁에서도 북한전토를 B-29가 융단폭격하자, 북한군의 전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더불어 공습은 전쟁개시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공습으로 전쟁을 개시했으며, 이른바 미군의 ‘북폭’은 월맹정부를 압박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제트기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전폭기가 등장하여 폭격기 없이도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구성하여 적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새로운 전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3차중동전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전술이다. 당시 이스라엘공군은 미라지Ⅲ 전폭기를 스트라이크 패키지로 묶어 초 저공으로 사막을 가로질러 이집트 공군기지를 급습함으로써, 초반 전쟁의 승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러한 전술은 이 후 선진국 공군들의 전매특허가 된다.

 

북한을 공습중인 B-29. 하지만 제트기의 요격에 의한 피해도 컸다.

 

이스라엘공군의 미라지 스트라이크 패키지의 모습. 폭격기가 없어도 전폭기로 이집트 전략시설을 완전히 제압했다. 

 

이윽고 1990년대가 되자 공습은 그 수단의 다양성으로 전쟁을 지배하게 된다. 기존의 폭격기와 전폭기에 더해 스텔스 폭격기가 등장해 기술의 무서움을 보여줬으며, 항공기 이외에도 순항미사일, 전술탄도미사일 등 공습의 수단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탄도미사일이다. 탄도미사일은 그 어떤 공습수단과 비교해 봐도 요격하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쏘는 입장에서는 요긴한 수단이지만, 방어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상황이다. 더욱이 탄도미사일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과 같이 비대칭전략을 구사하는 깡패국가에게는 마치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다. 따라서 이를 요격하기 위한 수단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다만, 방어용 무기가 공격용 무기보다 대략 10배가량 비싼 것은 함정. 아무튼 이제 공습은 현대전의 시작이자 그 향방을 가르는 매우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문제는 내가 공습을 하느냐 아니면 받느냐 그 차이다. 당연히 이왕이면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걸프전당시 미 전함 뉴저지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전함도 공습에 참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스라엘 상공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항공기가 아닌 탄도미사일에 의한 공습으로, 이 후 탄도 미사일은 우리나라에서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공습의 미래
공습의 미래는 더욱 가공할만하다. 필자는 미래의 공습 특징을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무인기를 이용한 공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을 통한 공습이다. 무인기의 공습은 이미 현실화 되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무인기 ‘프레데터’에 무장이 탑재된 ‘리퍼’는 이미 수많은 알카에다 및 탈레반 요인들을 공습으로 저세상에 보냈고, 미 공군의 경우 향후 전폭기의 60% 이상을 무인기로 교체할 계획이다. 여타 선진국 역시 무인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인전폭기의 가장 큰 장점은 인명손실이 없다는 점인데, 대신 무인기의 공습에 의해 희생되는 인간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미공군의 MQ-9 리퍼. 무인기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습능력을 벌써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인공위성무기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 때 미군이 착안한 ‘신의 지팡이(Rod of God)’이는 무거운 물체를 자유낙하 시켜 거의 핵폭탄 급의 파괴력을 적에게 선사해주는 무기이다. 비록 비용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현재는 중단되었지만, 중국이 이러한 개념의 연구에 뛰어들었음을 감안할 때, 비현실적인 아니라 생각된다. 더욱이 영화에서 보듯 고출력 에너지를 인공위성에서 발사한다는 개념은 이미 상당 수준 연구가 진행된 상황이다. 인공위성 무기의 무서운 점은 파괴력이 다소 낮더라도 궤도폭격 특성상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데다 상대할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즉 인공위성을 통한 궁극의 공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해 전 중국이 성층권에서 인공위성 요격 실험을 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다만, 1967년 우주조약, 1977년 전략핵무기협정에서 인공위성의 무기화를 금지했기에 이러한 무기가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지는 않고 있으나, 조약이란 필요에 따라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제발 이러한 무서운 현실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신의 지팡이 개념도. 아직 실용화까지는 요원하지만 비 현실적인 개념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중국이 이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

 

<글, 사진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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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Trackback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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