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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올바른 언어 사용 '제2의 광복' 이루자

생각이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것이 언어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개인과 사회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지 벌써 70년이 흘렀지만 ‘식민’의 잔재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그중 하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며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지난 2일 전 세계 29개국 200여 명의 재외동포 대학생들과 공연단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의 독립만세운동을 그린 우금치 공연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8·15 해방’ 아닌 적극 투쟁했다는 의미의 ‘8·15 광복’

 

 ‘8·15 해방’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두루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역사적 사실은 ‘해방(解放)’이 아닌 ‘광복(光復)’이다. ‘해방’은 ‘굴레에서 풀려나는 것’이란 뜻으로 이 말에는 외세에 의해 일제로부터 풀려났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면 ‘광복’은 ‘빛을 되찾다’라는 의미로 우리 민족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국내외 투쟁을 통해 주권을 되찾았다는 자주적 국권 회복의 뜻을 포함한다. 즉 광복은 능동성을, 해방은 수동성을 지닌다. 8·15 광복이 단순히 연합국의 승리에 따른 부수적 결과가 아닌 우리 민족의 끈질긴 독립투쟁이 그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땅히 ‘광복’이라 불러야 한다.

 부지불식 중 사용하는 ‘일제시대’라는 말도 우리가 사용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용어다. ‘시대’라는 말에는 그 대상의 주체적 행위가 포함돼 있다. 민족과 역사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숨은 의미도 있다. ‘조선시대’는 조선왕조의 시대가 되고 ‘영웅시대’는 영웅들이 주인공인 시대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식민지 시대’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대신 ‘일제강점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 ‘강점’이란 단어에는 강제성과 불법성이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국권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사실도 이 용어의 적절성을 담보해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국권상실의 시기를 ‘일제강점기’로 정의하고 있다.

 

 

   ‘한일합방’ 아닌 무력 침략을 의미하는 ‘조선병탄’


 1910년 8월 29일은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일’이다. 이 비극적 사건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일합방’ 또는 ‘한일합병’이라 말한다. 일제가 억지로 만든 ‘한일병합’이란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잘못된 용어다. 우선 ‘합방’은 대등한 관계에서 하나로 합한다는 의미다. 국권 강탈 당시 우리 민족을 동등한 입장으로 간주하기 싫었던 일제조차 ‘합방’이란 용어를 기피했다. ‘합병’과 ‘병합’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평화적으로 합의해 흡수 통합한다는 의미다. 일제 군경이 서울을 장악하고 창덕궁을 포위한 상황에서, 그나마 날조된 문건으로 국권을 강탈한 사건에 ‘합방’과 ‘합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신 무력에 의한 침탈의 뜻을 지닌 ‘병탄(倂呑)’이란 말을 써야 한다. 굳이 ‘합병’ 또는 ‘병합’이란 단어를 사용하려면 ‘강제 한일합병(병합)’처럼 그 앞에 ‘강제’란 단어를 써야 한다.

 1905년 일제가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사건을 ‘을사조약’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을사보호조약’이라는 용어까지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조약’은 국가 간 정식 절차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대신 강제적 조약이란 의미의 ‘늑약’으로 불러야 한다. 당시 신채호와 박은식 역시 ‘늑약’과 ‘늑체’란 말을 썼다.

 

 

광복 후 7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잘못된 역사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사진은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일제의 만행과 우리 민족의 독립 투쟁의 역사에 대한 전시물을 보고 있는 시민의 모습. 한재호 기자 


 

 



 ‘욱일승천기’ 아닌 범죄자들의 ‘전범기’


 붉은 태양과 16개의 햇살이 퍼져나가는 형상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기를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욱일승천기’(욱일기)라고 부른다. 심지어 이 기를 디자인에 차용하는 경우조차 있다. 하지만 ‘욱일기’란 명칭은 ‘전범기’로 불러야 한다. 전범으로 처리된 일제가 동아시아를 유린할 때 사용하던 군기이기 때문이다. 독일 나치가 당기로 사용하던 ‘하켄크로이츠’ 역시 전범기다. 서구사회에서 ‘하켄크로이츠’의 사용과 언급을 금하는 것은 불문율에 속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보다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은 ‘암살’이 아니라 ‘의거’다. ‘암살’은 몰래 죽였다는 의미로 ‘대한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저격한 안 장군 의거의 대의명분을 크게 훼손한다. 일본군이 구한말 의병과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표현도 우리 조상들을 욕되게 하는 표현이다. ‘토벌’은 특정 세력에 대한 징벌적 원정 행위의 뜻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불복종, 또는 도덕적 불온세력에 대한 원정을 의미한다. 우리 의병과 독립군에게 적용할 수 없는 단어다. ‘의병 토벌’이 아닌 ‘학살’을 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일본 깡패들에게 살해당한 조선의 국모는 ‘민비’가 아니라 ‘명성황후’다. 한 국가의 국모를 살해하고 불에 태운 이 엄청난 사건을 을미년의 작은 변고란 의미의 ‘을미사변’으로 부르는 것도 피해야 한다. ‘명성황후 시해(살해) 사건’이 적절하다.

 우리 민족의 성(性)을 빼앗은 ‘창씨개명’이란 표현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창씨개명’이란 용어에는 그 주체를 숨겨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이보다 ‘일본식 성명(이름) 강요’로 칭해야 한다.

 

 

 


 

 

사회보다 군에서 사용빈도 높아

산화·견출지 등 일본식 한자어가 더 문제

 

   국방부는 일본어식 표현을 ‘군 내 언어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어 단어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통해 한국어에 강제로 주입된 것으로, 우리 민족의 강제와 억압의 역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수십 년간 군 내 일본어 잔재를 척결하는 작업을 진행해 대부분의 일본어 표현을 일소해냈다. 2009년부터는 병영언어순화의 일환으로 일본어식 표현의 잔재를 없애나가고 있다. 국방부 조사 결과 우리 장병들이 꼽는 군 내 용어의 문제점으로는 ‘외국어나 약어로 돼 있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움(22.7%)’과, ‘어려운 한자어로 돼 있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착각하기 쉬움(19%)’이 대표적이다. 장병들도 일본식 표현이 주는 불편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이뤄진 ‘군 내 언어 실태조사’에서도 다수의 군 간부들이 군 내 언어의 심각한 문제로 일본어 잔재를 지목했으며, 사회보다 군대 내에서의 일본식 표현 사용빈도가 더 높다고 답한 바 있다.

 군 내 일본식 표현은 ‘일본어’, ‘일본식 외래어’, ‘일본식 한자어’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핀잔’을 뜻하는 ‘쿠사리’와 ‘작업’이란 의미의 ‘노가다’ 등은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와 약간의 의미 수정을 통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비교적 일본어 표현이라는 인식이 명확해 쉽게 순화되는 편이다. 가장 척결하기 어려운 것이 일본식 한자어다. 이는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와 구분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다음날을 뜻하는 ‘익일’, 찾아보기 표로 번역할 수 있는 ‘견출지’, 분필을 말하는 ‘백묵’ 등이 그것이다.

 군 내 언어순화 사업을 추진 중인 국방부 강성구 사무관은 “이와 같이 일본어 발음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표현은 군 내 여러 곳에 매복해 있다”면서 “구어나 문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어를 전수 조사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에 순화 의뢰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혀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일제의 전범적 행위가 배어든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은 그 대표적인 예로 ‘산화(散花)’를 들었다. 정 학회장은 “‘장렬히 산화하다’ 등에 사용되는 ‘산화’는 원래 불교용어로 흩을 산(散)과 빛날 화(華)로 썼으나, 일제가 빛날 화가 아닌 꽃 화를 정착시켰다”면서 “순식간에 떨어지는 벚꽃 잎처럼 목숨을 천황을 위해 바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日 잔재 용어 뿌리뽑기’ 나선 군대

‘용어 순화 추진단’ 구성·국방TV 홍보 등 시행

 

   요즘 병사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말 중 하나가 ‘짬찌’다. 짬찌는 ‘짬밥’과 ‘찌끄레기’(찌꺼기의 경상도 사투리)의 합성어를 축약해 표현한 단어다. 짬밥은 먹고 남은 음식을 뜻하는 ‘잔반’이 변형된 단어지만 군대 식사, 군 복무 기간, 노하우를 뜻하기도 한다. 선임병이 먹다 남긴 잔반의 양이 후임병이 먹은 식사량보다 많다는 의미에서 선임병들은 후임병을 짬밥 찌끄레기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군대 안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일제 잔재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말 대신 ‘작일’ ‘금일’ ‘명일’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병, 새것을 뜻하는 단어 중에는 신삥, 아쎄이가 있다. 신삥(←しんぴん)은 신품(新品)의 일본식 발음이다. 새로 들어온 병사를 물건에 빗대 말한 것이다. 아쎄이는 조립을 뜻하는 ‘어셈블리(assembly)’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예전 한국군이 미군으로부터 공여 부품을 받을 때 포장지에 ‘ASSY’(조립 부품)라고 적힌 것을 보고 오인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나라시(땅 평탄화 작업·고루펴기), 시마이(마감), 주계병(취사병), 마이가리(진급 전 미리 상위계급장을 다는 것), 오함마(큰 망치), 모도시(핸들 제자리), 호루(차 덮개), 당까(들것), 빠루(쇠막대), 반합(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도수체조(맨손체조), 고참(선임병), 관물대(사물함), 불침번(잠을 자지 않고 병력 점검), 기리까시(사병에서 부사관으로의 신분 변환), 오장(군기 담당) 등이 있다. 이런 단어들은 군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군은 2000년대 초부터 언어폭력 근절에 나섰다. 욕설 외에 잘못된 표현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2009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군 용어 순화 추진단’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정비에 나서기도 했으며, 군대에서만 통하는 용어를 순화하기 위해 국방TV 홍보와 부대 자체 순화교육을 권장해 잘못된 군 용어 뿌리뽑기를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