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한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합니다”
6‧25전쟁 65주년을 맞이하는 6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에 위치한 동락초등학교에 육군참모총장이 방문했습니다.
총 학생수 20명인 이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 육군참모총장이 방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락초등학교는 6‧25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6일, 북한군 수천 명이 학교에 집결해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6‧25전쟁 첫 승리인 동락리전투의 승전현장입니다. 육군은 바로 이 곳 6‧25전쟁 최초의 전승지인 충주 동락초등학교와 음성군 맹동면의 참전용사 자택에서「6·25 상기 보훈행사」를 실시했습니다.
▲ 신용관 장군이 동락초등학교의 참전기념비앞에서당시의 전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동락리 전투는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을 한 개전 이래 최대의 전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적 1,000여명을 사살한 전과를 올렸고, 122mm 곡사포 6문, 76mm 곡사포 6문, 기관총 41정, 권총 및 소총 2,000여 정, 장갑차 10대, 모터사이클 20대, 지프 20대, 2.5톤 차량 40대, 통신장비 등을 노획한 전과를 세웠습니다.
동락리전투는 첫째 개전 이후 국군의 가장 통쾌한 승리요, 둘째 북한군의 음성 진출을 지연시키고 국군은 저지선(진천~음성~충주)을 형성‧전열 재정비를 가능케 했고, 셋째 소련제 무기‧장비를 노획해 소련의 전쟁 개입을 알려 UN군 참전 결정에 기여를 한 의미있는 전투중 하나입니다.
이 동락리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제보를 한 공헌자는 바로 동락초등학교 여교사인 故 김재옥 선생입니다.
김재옥 선생은 6‧25당시 기지를 발휘해 북한군에게 국군이 철수하고 있다고 안심시킨 후 국군 제2대대장에게 적의 상황을 상세히 제보하여 국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 적 1,000명을 사살하고 90여 명의 포로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릴수 있었다고 합니다.
▲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 김재옥여교사 현충탑과 김재옥교사 기념관,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국가현충시설로 지정해서 기념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19세였던 김재옥선생은 당시의 소대장이었던 이득주 소위와 결혼하여 강원도 인제에 전방을 지키는 군인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3년 12월 세상을 놀라게 했던 고재봉사건때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후 국방부에서는 김재옥선생의 빛나는 반공정신을 널리 알리기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전국에 상영하였고, 동락 전투 당시 박격포 대장이었던 신용관 중위가 군 제대후 해양 경찰대장으로 재임되었을 때 고인이 된 김재옥건생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현충비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976년 7월에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김 여사의 업적을 기록한 행적비를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세웠습니다.
김교사는 그 후 62년만인 2012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습니다.
김재옥교사 기념관은 6·25 당시 국군을 도와 북한 공산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김교사의 호국 충성심을 기리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유적으로 동락 전승지이며 김재옥 교사가 근무하였던 동락 초등학교 교정에 총 2억 여원의 예산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 후 전시실을 정비하여 1990년 7월 7일 동락 전승 기념일에 개관되어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선열의 얼을 기억케 하고 조국 수호와 자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통일 성업을 이루는 산 교육장 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신용관 장군이 행사에 참석한 김요환 육군참모총장과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하고 있다.
특히 동락리전투의 주역인 신용관 장군이 아흔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이날 행사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전투 당시 8중대장이었던 신 장군은 김재옥 교사가 신고한 북한군 포진지에 박격포 초탄을 시작으로 2탄과 3탄을 연속 명중시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단번에 궤멸시킴으로써 우리 군의 전투의지와 사기를 높이고 적을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신용관장군과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손을 마주잡고 김재옥교사 기념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 신용관장군의 안내로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김재옥교사 기념관을 관람하고 있다.
이날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행사 참석자들은 학교 내에 있는 故 김재옥 교사 현충탑과 6‧25 참전 기념비에 헌화·묵념하고 이어 김재옥 교사 기념관에서 당시 전투상황을 살펴보며 6‧25전쟁을 상기했습니다.
이어 김 총장은 동락리전투의 주역인 신용관 장군에게 꽃다발과 함께 장군의 사진과 전투기록이 새겨진 전승기념패를 증정하고 위국헌신을 몸소 실천한 선배 전우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이날 6‧25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11사단 오영헌 하사(87세)와 5사단 故 황찬승 일등상사, 6사단 故 김영무 일병, 수도사단 故 이인영 일병의 유족 등 4명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무공훈장 수여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투유공으로 무공훈장을 서훈 받았으나 긴박한 전장 상황으로 인해 훈장을 받지 못하고 ‘가(假)수여증‘만 받은 참전용사들에게 찾아드리는 것입니다. 육군은 6·25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지금까지 ‘무공훈장 찾아주기’ 행사를 꾸준히 전개해 훈장을 받지 못한 참전용사 162,950명 중 102,619명에게 전했습니다.
이어 충북 음성군 맹동면으로 자리를 옮겨 6·25참전용사인 윤덕영(86세) 옹의 ‘나라사랑 보금자리’ 제235호 준공 및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새로운 보금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윤덕영 옹은 6·25전쟁 당시 옹진반도전투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역전의 용사로 당시 총상을 입었습니다.
▲ 김요한 육군참모총장이 윤덕영 옹을 소개하고 있다. 윤덕영 옹(’30년 11월생, 예비역 중사)은 1949년 1월부터 1955년 9월까지 2사단 17연대, 8사단 16연대에서 6년간 복무했다.
이러한 전쟁 영웅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37사단 장병들은 지난달 6일부터 연인원 370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지자체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낡고 오래된 흙집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탈바꿈시켰다.
육군이 추진하고 있는 나라사랑보금자리 사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참전용사의 집을 새롭게 단장해드리는 사업으로, 민․관․군․기업이 협력하는 감동의 보은사업입니다. 2011년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까지 235명의 참전용사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했으며, 올해 말까지 273가구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6·25전쟁 당시 참전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강조하고, 선배님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승리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더욱 굳건하게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글/사진 임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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