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에서 바라본 장단·사천강지구 전적지의 모습. |
해병대 창설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승만(지프 위 왼쪽) 대통령이 장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
1953년 7월 해병1전투단 장병들이 장단·사천강지구전투에서 전사한 776명의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조총을 발사하고 있다. |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남북은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고지 쟁탈전을 계속하게 된다.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해병대 1연대는 1952년 3월 17일부터 서부전선 장단지구로 투입됐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일까지 1년4개월여 동안 판문점에서 사천강에 이르는 11㎞의 주저항선 전초 진지에서 중공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그것이 바로 장단·사천강지구전투다. 정전협정일을 앞둔 지난 10일 이 역사적인 현장을 찾아갔다.
적에게 내줬던 수도 서울 방어는 이승만 대통령의 간절한 의지
해병대 중공군 맞서 서부전선 사수 이 전투 승리로 지금의 서울 존재
“이 싸움터에서 자유조국의 수호신이 된 776명의 젊은 해병 영령들이여! 그대들의 투혼과 공훈은 이 겨레와 더불어 영원무궁하리라.”
장단·사천강지구전투에서 희생된 해병대 장병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해병대 파로비에 새겨진 비문이다.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당시 임진강 북쪽 장단 지역에서 해병대1연대가 미 해병1사단과 함께 중공군에 맞서 서부전선을 사수했고 이 전투의 승리로 지금의 서울이 존재할 수 있었다.
“다시는 수도 서울을 적에게 빼앗겨선 안 된다.”
1952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은 해병대에 굳은 의지가 담긴 명령을 내렸다.
도솔산전투 등 동부전선 산악지역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운 해병대에 대한 이 대통령의 믿음은 확고했다.
6·25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겼고 1·4후퇴 때 또다시 적에게 서울을 내줬던 아픔이 있었기에 수도 서울 방어는 이승만 대통령의 간절한 의지이자 한 맺힌 소원이었다.
이 대통령은 1951년 8월 도솔산 승리를 격려하기 위해 중동부 전선을 방문했을 때 수행한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에게 한미 해병대가 함께 수도권을 방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믹스마스터(Mixmaster)’라는 수도권 방어계획이 수립됐고 양국 해병대는 중동부에서 서부전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해병대는 이곳에서 임진강에 배수의 진을 치고 중공군과 사천강을 경계로 대치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순간까지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중공군은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전선에서 공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야간에는 포격 소리가 서울 시내까지 울렸고, 유리창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서울 시민들은 이 포격 소리에 놀라 한강을 건너 영등포 쪽으로 피난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해병대는 5000여 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4개 사단 4만2000여 명과 맞서 사살 1만4000여 명, 부상 1만1000여 명이라는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에 반해 아군은 776명이 전사하고 3214명이 부상했다.
6·25전쟁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해병대원 1822명 중 40%인 776명이 이곳에서 전사한 것만 봐도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전투의 승리는 개성~판문점~서울로 이어지는 축선을 지켜내 군사분계선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설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곳은 국군1사단, 미 기병사단, 영국 글로스터 부대가 쓰라린 굴욕을 당했던 곳이어서 전투에 임하는 우리 해병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야말로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이곳을 사수함으로써 국민과 대통령의 기대에 보답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병대의 투혼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 평화공원에 해병대 파로비가 지난 2008년 10월 28일 세워졌다.
‘파로(破虜)’란 오랑캐(虜)를 무찌른다(破)는 뜻으로 우리 해병대 1연대가 화천댐에서 중공군 10·25·27연대를 수장시키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 군을 물리쳤던 화천댐을 파로호로 명명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파로비 앞에서는 해마다 장단·사천강지구전투 전승 행사와 합동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는 참전 노병과 주요 관계자, 시민들이 참석해 지금의 수도 서울을 존재하게 한 빛나는 승리를 기념하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파로비를 뒤로 하고 임진각 평화누리에 도착했다. 임진각 관광지 약 99만㎡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 평화누리는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평화,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공연·전시·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행사가 연중 열리고 있다.
이곳에 있는 망배단은 1985년 제작된 제단으로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 등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이곳에 모여 북에 있는 부모와 조상에 제례를 올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망배단에서 바라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가 보였다. 1953년 전쟁포로 교환을 위해 가설된 것으로 당시 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온 뒤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해서 ‘자유의 다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 앞에는 녹슨 증기기관차가 서 있었다. 6·25전쟁 때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이 열차는 장단역으로 들어오다 폭격을 맞아 그 자리에 멈춘 것이다. 비무장지대에 붉게 녹슨 채 방치돼 있던 이 기관차는 2009년 6월, 2년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자유의 다리 남단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언젠가 힘찬 기적을 울리며 대륙을 달리게 될 기관차의 모습은 분단의 아픔이자 안보의 산 교육장으로 후세에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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