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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1주년] 나가사키에 일본 스스로 세운 '반성의 역사' "기억하려는 그들, 우린 잊어가는데..."

나가사키에 일본 스스로 세운 '반성의 역사' "기억하려는 그들, 우린 잊어가는데..."

● 르포-원폭기념관 평화공원 평화자료관


안내서에 없는 조선인희생자 추모비

비석에 뿌려진 생수 자국 눈물 같아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 기억 공간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어

일본인 자원봉사자만 자리 지켜

 

<나가사키 원폭기념관 입구 화장실 옆에 있는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화장실 옆 추도비와 성대한 원폭기념관


지난달 20일, 나가사키 원폭 낙하 중심지 일대에 조성된 기념관으로 향했다. 사실 기념관보다 먼저 갈 곳이 있었다. 원폭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도비다. 기념관 공식 안내서와 지도에는 그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이곳저곳에 물어가며 겨우 장소를 찾아냈다.


추도비는 지대가 낮고, 볕이 잘 들지 않는 공공 야외 화장실 옆에 있다. 추모의 마음이 들기도 전에, 화장실의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온갖 날벌레도 들끓었다. 잠시 둘러보는 사이, 평소 추모객이 없던 것을 항의라도 하듯 피에 굶주린 모기가 팔과 다리를 물어댔다. 타는 듯한 갈증 속에 죽어간 조선인을 위해 추도비에 뿌려진 생수 자국이 눈물 자국처럼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이어서 원폭기념관과 평화공원을 둘러봤다. 일본은 지하 1·2층에 걸친 웅장한 전시관에서 자신들의 아픔을 성대하게 기리고,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원폭 폭격을 당한 11시2분에 멈춰 버린 시계, 열기로 인해 두개골이 붙은 철모, 유리와 엉겨 붙은 손뼈 등이 처참함을 더한다. 물론, 일본의 가해 역사와 반성이 엿보이는 전시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해자로서의 기억이 완전히 휘발된 것은 평화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예술가가 만들었다는 10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이 피해자 일본을 위한 ‘평화’와 ‘기억’을 외치고 있었다.


<평화공원의 거대한 조각상이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일본을 위한 평화를 외치고 있다.>



가파른 언덕 위 불 꺼진 평화자료관


원폭기념관을 떠나 JR 나가사키 역 인근의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랐다.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을 때쯤 하얀색 외벽의 4층 건물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보였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아! 휴관이구나’하고 발길을 돌리려 했다. 


실내의 모든 불이 꺼져 있고, 냉방도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중년의 일본인 여성이 나타났다. 비로소 휴관이 아님을 알았다.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며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이 자료관의 안내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자료관의 취지에 공감해 자원봉사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소개하며 “운영이 어려워 단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관람객이 없어 전등과 냉방을 껐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일본의 침략과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호소하기 위한 공간이다.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 속한 일본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원폭기념관에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운 것도 이들이다. 이곳에 30명의 일본인 자원봉사자가 돌아가며 출근, 아무런 보상 없이 안내석을 지키며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시실로 사용되는 공간은 1·2층, 규모는 소박하지만 전시물은 하나하나 뜻깊다. 나가사키 지역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상을 고발하는 각종 자료와 책자, 군함도에서 직접 가져온 당시 인부들의 장비, 직접 수집한 하시마 탄광 희생자 명부, 일본군 위안부 사진 등이 빼곡하다. 무엇보다, 일본인 스스로 가해 역사를 알리고 반성을 촉구하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일본인 고(故) 오카 마사하루는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대표였다. 그는 나가사키 외국인 피폭 실태와 보상문제를 직접 조사하고, 정부에 책임을 추궁하던 인권운동가이자 종교인이었다. 평소 일본의 가해 역사를 알릴 자료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오카 마사하루는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94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 1년, 그 의지를 이어가고자 결의한 사람들이 언덕 위 중화요리점 건물을 빚을 내 사들였다. 그리고 오카 마사하루의 이름을 붙여 자료관을 세웠다.

 

<일본의 가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일본인들이 세운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평화자료관에 전시된 군함도 탄광의 희생자 명부. 이들 가운데 122명이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기억하는 그들, 잊어가는 우리


이 뜻깊은 자료관의 방문객은 그리 많지 않다. 관람객 대부분은 단체로 온 일본 학생들이다.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일본 여성은 “요 며칠 동안은 단 한 명의 관람객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도 없는데 굳이 자리를 지킬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우리(일본)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자료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은 “성수기 원폭기념관의 관람객은 하루에 1만 명이다. 이곳의 1년 방문객의 두 배가 넘는다”며 “부디 나가사키를 찾은 아이들이 우리 자료관과 원폭기념관을 둘 다 둘러봤으면 좋겠다. 그게 균형 잡힌 교육이다. 피해자로서의 일본만 잔뜩 배우고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한사코 거부하는 그의 손길을 피해, 관람료 겸 기부금 몇 푼을 안내석에 올려놓고 자료관을 나섰다. 자료관은 오늘의 유일한 관람객이 사라지자 즉시 냉방과 전등을 모두 껐다. 언덕을 내려와 만난 화려한 관광 거리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났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사진 < 양동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