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최고·최악 무기

 

6·25전쟁은 마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무기전시장 같았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사용된 무기부터 개발 된지 1년도 안된 최신 무기까지 온갖 무기들이 우리 한반도를 뒤덮었으며, 그 무기들의 위력을 우리 민족은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6·25전쟁에서 쓰인 양쪽 최고 및 최악의 무기를 살펴보는 마지막 무기시리즈를 살펴보겠다.

 

최고의 무기
➀ F-51D 무스탕
‘하늘의 캐딜락’이라고 불리며 2차 세계대전 최고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F-51D 무스탕 전투기는 사실 6·25전쟁 직전에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나고 만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고 당장 한국에 투입할 공군력이 없어지자 F-51D는 급하게 복귀했고,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되어서 대활약했다. 당시 전선에 야전비행장이 없었던 한국에서 대충 만든 거친 활주로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이륙할 수 있었으며, 북한군의 Yak-9이나 IL-10M등도 심심치 않게 격추시켜 ‘역시 무스탕’이란 말을 들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시찰 당시 호위로 따라붙은 전투기도 당시 최신예 기종인 F-80이 아니라 F-51D였다.

 

전쟁 초기 한국에 전개한 F-51D 무스탕 전투기. 독특한 샤크마우스 노즈아트가 눈에 띤다.

 

➁ 중공군의 인해전술
6·25 당시 떠오르는 중공군의 이미지에 대한 기억은 아마 인해전술일 것이다. ‘적을 사람의 바다에 빠지게 한다’는 식의 인해전술을 병력의 수만 앞세운 무식한 전법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로 인해전술은 결코 무식한 병법이 아닌 고차원 적인 심리전술이다. 인해전술을 쓰기에 앞서 중공군은 구대전법(口袋戰法 : 큰 자루 전법)을 시행하고 난 후 인해전술을 썼다. 구대전법은 우선 중공군은 대규모 보병부대를 우군 후방 깊숙이 침투시킨 후 큰 자루를 만든 다음, 자루의 입을 벌려 적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어 놓고, 적이 들어오면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적을 뱀을 토막 내듯이 각개 격파하는 전술이다. 이렇게 당한 국군과 UN군은 퇴각을 하고 후방에 방어진을 만들면 바로 이 때 약해진 아군을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덮치는 것이다. 또한 인해전술에 빠질 수 없는 도구는 꽹과리와 피리다. 중공군은 낮에는 히트앤드런식의 게릴라전법으로 아군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밤이 되면 공격과 동시에 꽹과리와 피리소리로 아군의 심리를 동요시켰다. 야간전에는 아군이 보기에 중공군이 잘 안 보여 군세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 전에 호되게 당했는데 이런 악기들의 계속되는 소리를 들으면 적군은 예상하는 숫자보다 더 많다고 느끼게 되는 심리적인 타격을 받게 되어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된다. 더군다나 공중지원 및 지원포격도 어둠 속에서는 그리 큰 효과가 없었다. 중공군이 주로 야간에 공격했던 이유는 미군의 공군력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방식의 전투가 이어지자 공포가 퍼지기 시작했고, 이는 곧 국군과 UN군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이는 인해전술이 무식한 전술이 아닌 고차원적인 심리전술이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 흡사 나무같이 보이는 것들이 모두 사람이다. 이런 식의 인해전술은 야간에 특히 위력을 더 발휘한다.

 

➂ F4U 콜세어
2차 대전 당시 참전한 전 국가를 통틀어 최강의 전투기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F4U 콜세어를 꼽는다. 미 해군과 해병대가 사용했던 F4U 콜세어는 그 터프함으로 유명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한 F4U 콜세어 전투비행단은 71:0 이라는 가공할만한 교환 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후 6·25전쟁에서는 6정의 12.7mm 기관총을 4정의 20mm 기관포로 교체해 화력을 강화했으며, 특히 레이더를 장착하고 야간전용전투기로 명성을 날렸다. 심지어 미그15기를 격추하기도 했다. 전쟁 초반 북한군의 Yak-9과 IL-10M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이었으며, 지상의 북한군들도 치열한 대공사격을 견디며 불벼락을 쏟아내는 F4U 콜세어를 가장 무서운 무기로 생각했다.

  

6·25전쟁 당시 F4U-5N에 탑승한 Lt. Guy Bordelon는 북한군의 Yak-9IL-10M에 맞서 활약하며 6.25전쟁에서 유일한 프로펠러기 에이스이자 유일한 해군 에이스임과 동시에 최후의 프로펠러기 에이스로 남았다. 

 

➃ 공산군 수류탄
중공군의 참전 이후 전선은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사실 중공군은 무기나 탄약 등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2~3명에 하나씩 소총이 지급될 정도였으며, 특히 탄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부족함이 없이 풍부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수류탄이었다. 파인애플형 부터 방망이형까지, 중공군을 비롯한 공산군은 다양한 수류탄을 사용했는데, 거의가 소련에서 공급된 수류탄이었다. 소련제 수류탄의 특징은 혹한에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작동했는데, 중국제 수류탄도 이런 영향을 받아 신뢰성만큼은 괜찮은 편이었다. 반면 미제 수류탄은 종종 혹한에서 불발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장진호에서도 미 해병대가 고생을 좀 했다.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펼칠 때 마다 수류탄을 비 오듯 퍼부어 국군과 UN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공산군이 주로 사용한 67식 방망이 수류탄. 1인당 5~6개의 수류탄을 휴대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최악의 무기
➀ M1948 셀 자켓
6·25전쟁 이전까지 미군은 혹한의 날씨에서 전투를 임한 예가 거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겨울을 한 번 겪기는 했지만, 뭐 못 견딜 만큼의 혹한은 아니었다. 따라서 미군의 병사들의 동계장비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6·25전쟁에 임했다. 아마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전쟁이 겨울을 넘기지 않을 것 이라는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그것도 한국 북부의 겨울은 달랐다. 당시 미 해병대는 M1948 셀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특히 장진호에서 미 해병대는 이 자켓을 입고 한국의 강추위에 그야말로 호되게 당했다. 영하 40도까지 수은주의 급강하는 러시아의 혹한을 무색케 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M1948 셀 자켓은 역부족이었다. 사실 자켓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소총이나 수류탄 역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힘겨운 전투를 해야 했다. 결국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무려 4천명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전투가 되었다. 미군은 장진호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고 바로 방한기능을 강화한 M-51 신형 파카를 병사들에게 지급하게 된다.

 

 

장진호 전투에서 M1948 셀 자켓을 입고있는 미 해병대원들. 이정도 필드자켓으로 한국의 혹한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➁ Yak-9
2차 대전 중반 이후, 소련공군의 주력전투기가 된 Yak-9은 당시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심한 부담으로 다가올 만큼 우수한 전투기였다. 미그15가 등장하기 전까지 명실상부한 소련공군의 주력 전투기였으며, 6·25전쟁 발발 당시에도 70대의 Yak-9이 북한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침략의 선봉에 섰다. 그야말로 공산권 전투기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첫 공중전에서부터 미 공군 전투기에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어이없게 격추당하는 등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전쟁발발 한 달여 만에 소멸되는 등 제대로 된 활약은 커녕 연습표적으로 전락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사라져갔다.

 

 

미군의 공습으로 격파된 Yak-9. 이처럼 날아보지도 못하고 격파된 숫자도 꽤 된다.

 

➂ F-80 슈팅스타
2차 대전이 끝나자 선진국들의 공군은 제트기 시대로 접어들었고, 미 공군은 주력전투기였던 F-51D를 제트전투기로 교체하는 작업을 서둘렀다. 그리고 곧 F-80 슈팅스타가 미 공군의 주력기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바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당히 미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전쟁 초반, 공산군의 Yak-9이나 IL-10M등을 상대로 일방적인 우세를 보이며 승승장구했지만, 후퇴익을 채용한 소련의 제트기 미그15가 등장하자 F-80은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어버린다. 결국 미 공군은 미그15를 잡기위해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하게 되고, F-80 슈팅스타는 주력전투기로 채택 된지 채 5년도 안 되어서 F-86에게 주력전투기의 자리를 내주고 지상공격기로 전환된다. 화려했던 여배우가 한 순간에 퇴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직선익을 가진 F-80 슈팅스타는 후퇴익을 가지고 있는 미그15에 비해 속도 등 성능의 열세가 현저해 주력전투기의 자리를 F-86에 내주고 말았다.

 

➃ IL-10M
2차 대전을 통틀어 최고의 근접지원기인 IL-2는 전쟁 후 개량을 거듭했고, 6·25전쟁이 발발 할 무렵 최종개량형인 IL-10M으로 발전해 있었다. 소련은 무려 154대의 IL-10M을 북한에 제공했고, 북한은 IL-10M을 지상군 근접지원에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이미 하늘은 제트기의 시대였다. 둔중한 IL-10M는 곧 미 공군의 F-80 슈팅스타 전투기에 학살당했고, 심지어 F-51D나 F4U 콜세어 같은 동종의 프로펠러전투기에게도 속속 격추당했다. 결국 불과 한 달여 만에 IL-10M은 더 이상 한반도의 하늘에서 볼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때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말아먹은 것이었다.

 

격파된 IL-10M 주위에 미 해군의 F4U가 가득하다. 아마도 북한의 야전 공군기지를 접수한 상황인 듯하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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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Trackback 0 : Commen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