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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명칭 6ㆍ25 참전자 이름에서 유래

미군기지 명칭 6ㆍ25 참전자 이름에서 유래

<15>영광의 이름들

경기도 의정부의 경민대학을 지나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미군 부대 한 곳이 나온다. 입구에 “Second to None(최고다)”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는 이 기지는 주한미군 육군의 핵심부대인 미 2사단의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한때 미 육군 1군단과 한미연합야전사(Combined Field Army)의 사령부가 위치하기도 했던 이 유서 깊은 기지의 이름이 바로 캠프 레드 클라우드(Camp Red Cloud)다.

 고전 문학작품이나 시구의 한 구절처럼 느껴지는 ‘붉은 구름(레드 클라우드)’이란 기지 명칭은 6ㆍ25 전쟁 때 영웅적으로 활약하다 전사한 아메리카 인디언 출신 미 육군 병사인 미첼 레드 클라우드 주니어(1924~1950) 상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기지 외에도 캠프 코이너, 캠프 에드워드, 캠프 워커 등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 이름은 대부분 6·25전쟁 당시 활약한 미군 참전용사에서 기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캠프 레드 클라우드    목숨을 걸고 임무 완수한 초병 추모 의미 

캠프 에드워드           수류탄 돌격 3번 감행한 중사 이름이 기원

 

<경기도의정부캠프레드클라우드연병장에서미2사단기수들이‘받들어총’ 구령에맞춰기를들어올리고있다. 캠프레드클라우드라는기지 명칭은 6·25 때 맹활약한 미첼 레드 클라우드 주니어 상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 2사단 자료사진>

 

▶인디언 출신 상병의 대활약

 1950년 11월 5일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경계지점인 청천강 북안의 123고지에서 전방청음초(Forward Listening Post)로 근무 중이었다. 주력부대 전방에 매복해 적군의 접근을 조기에 파악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중대병력의 대부분이 잠에 취해 있던 한밤중에도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육군에 입대하기 전 미 해병대 2기습특공대대(2nd Marine Raider Battalion)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수상한 소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방을 주시했다.

 이내 레드 클라우드 상병의 눈앞에 야간기습작전을 위해 접근하는 중공군 대부대가 포착됐다. 청음초로 근무 중인 다른 병사들을 깨운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적이 30m 앞까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30구경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을 발포했다.

적의 접근로를 막아선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접근하는 중공군 공격부대에 맹렬하고도 정확한 사격을 가했다.

 중공군이 응사하면서 레드 클라우드 상병도 총상을 입었지만, 그의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청음초는 적의 접근을 경고하면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이 주임무였지만, 레드 클라우드 상병의 판단은 달랐다.

후방의 E중대 본대가 잠에서 깨어나 방어태세를 갖추려면 자신이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총상으로 스스로 서 있기도 힘들게 되자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스스로를 나무에 묶어 버티면서 전투를 계속했다. 레드 클라우드 상병의 살신성인으로 중공군의 기습 공격은 실패했다.

 다음날 오전 레드 클라우드 장병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아군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나무에 묶인 상태로 8발의 총상을 입고 전사한 레드 클라우드 상병 주변으로 중공군 시신이 가득했던 것.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이 공로로 사후 명예훈장을 추서받았다. 이후 그의 활약을 기리는 의미에서 1957년 5월 18일 의정부에 위치한 미군기지에 캠프 레드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돌격의 화신 에드워드 중사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라 지난 2007년 우리나라에 반환된 경기도 파주 월롱면의 캠프 에드워드(Camp Edward)는 원래 미 2사단 예하 지원부대가 주둔하는 기지였다. 한때 이화여대 캠퍼스 부지로도 거론됐던 이 기지의 명칭 또한 6·25전쟁에서 활약한 참전용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주니어 딘 에드워드(1926~1951) 중사가 소속된 미 육군 2사단 23연대 H중대는 1951년 1월 강원도 횡성 부근에서 교전 중 적의 맹렬한 기관총 사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대원들이 당황하자 에드워드 중사는 주저하지 않고 단신으로 적 기관총을 향해 돌격, 수류탄을 던져 제압했다.

 또다른 중공군들이 반격을 가했지만 에드워드 중사의 용기는 꺾이지 않았다. 에드워드 중사는 몇 번이나 수류탄을 재보급 받은 후 다시 적을 향해 돌격하는 초인적인 용기를 발휘했다. 세 번의 돌격 끝에 에드워드 중사는 전사하고 말았지만 그의 활약 덕에 H중대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 중사의 용기를 인정한 미 정부는 사후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살신성인의 상징 조지 일병

 대구 대명동에는 미 19지원사령부의 지원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캠프 조지(Camp George)가 있다. 이 기지의 이름은 주방위군 부대인 미 육군45사단 179보병연대 C중대의 찰스 조지(1932~1952) 일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조지 일병은 1952년 11월 적 포로를 잡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주요 고지 위주로 전선이 고착된 상황에서 적 후방으로 침투해 포로를 잡아오는 작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철수 길에 조지 일병은 아군 침투요원의 제일 후방에서 부대를 엄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적의 추격 상황을 감시하며 뒤따르던 조지 일병은 마침 적 병사가 아군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 조지 일병은 수류탄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동료를 안전한 곳으로 밀어낸 후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었다. 조지 일병의 살신성인 덕에 나머지 요원들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캠프 조지라는 기지 명칭에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 버렸던 진정한 군인을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캠프 코이너와 캠프 워커

 이처럼 주한미군 주요 부대가 주둔한 기지 이름은 대부분 6·25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헌신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방일보 본사 건물 맡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캠프 코이너(Camp Conier)라는 기지 명칭도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3년 4월 16일 전사한 미 육군 7사단 31연대 소속 렌달 코이너 소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주한 미 육군의 군수를 책임진 미19지원사령부 예하 부대가 다수 주둔한 대구의 캠프 워커(Camp walker)도 마찬가지다. 이 기지 명칭은 6·25 당시 서울 북방 순시 중 사고로 순직한 월튼 워커(1889~1950) 중장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미 텍사스 주에서 태어난 워커 중장은 한때 그의 상관이었던 패튼 장군처럼 남다른 용기와 강한 집념, 그리고 의지를 가진 전형적인 의미의 장군이자 야전군인이었다. 6·25전쟁 참전 초기 미군들이 전쟁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해 후퇴를 거듭하면서 악전고투할 때 “1인치의 후퇴도 안 된다”며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호통쳤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낙동강 전투에서 대한민국이 국가 존망의 위기에 빠졌을 때, 쓰러지는 기둥을 부여잡고 버텨낼 수 있기까지 그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미군들 사이에 절망이 퍼져가던 암울했던 시기에 분투 정신을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내선작전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 과감한 지휘로 낙동강 전선의 붕괴를 막아낸 주인공이 바로 워커 장군이었다. 캠프 워커라는 기지 이름도 대한민국을 절망의 위기 속에서 구해낸 역전의 노장에게 바쳐진 추모의 헌사인 셈이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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