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음 엄마’에서 ‘김소연’으로 다시 태어나기
방송통신위원회 '스마트폰 감동 Story 공모전'의
감동적인 수상작 - 우수상편
[우수상] ‘하음 엄마’에서 ‘김소연’으로 다시 태어나기
수상자 : 김소연 “아니...남편 뒷바라지에 애들 건사하는 게 쉬운 일 아니라는 거 알지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하는 줄 아나. 되게 튕기네...” 여동생의 앙칼진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는다. “언니! 결혼하면 다들 그렇게 변하는 거야? 아니 애 엄마 사정 생각해서 5명이 지 편한 시간대로 맞춰줬는데 지하철 타고 딱 다섯 정거장만 오면 되는 걸 못 나와? ” 결혼 후 연락이 뜸해진 한 친구를 위해 어렵게 시간을 맞춘 동창 모임이 불발 되었다. 고대했던 모임을 하루 앞두고 친구 하나가 취소 통보를 한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두 돌 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외출을 강행하기가 무리라는 것이다. 이십 년을 쌓아 온 우정인데 어쩜 결혼하고 나서는 자기 남편과 새끼밖에 모르냐며 본인을 위해 다섯 명이 시간 맞추고 장소 맞추느라 고생한 것은 생각 못 하냐며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에휴... 오죽하면 그랬을까... 너도 결혼해 봐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아지 새끼를 데리고 외출한다는 게 뭐 쉬운 일인 줄 아냐? 더군다나 그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같은 아기 엄마 입장으로서 십분 이해가 되는 핀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참았다. 서른 둘, 세 살 된 큰 아이와 8개월 된 둘째를 키우며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 지 삼 년이 되었다, 스물일곱에 결혼, 서울을 떠나 낯선 외곽에서 시작한 신혼살림. 외로운 타지 생활로 사람이 그리워질 때쯤 임신 소식을 알았다. 그러나 계류 유산으로 콩알만한 생명을 하늘로 보낸 후 감사하게도 얼마 안 돼 다시 임신이 되었다. 또 다른 아픔이 두려워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그렇게 열 달을 보내고 금쪽같은 큰 아이를 출산한 후에는 산후 조리로 발이 묶였다. 그 후 이어진 육아와의 한판 전쟁에 외출은커녕 내 몸 하나 씻을 시간도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큰 아이의 배변 훈련이 끝나고 말귀도 알아들을 만 해 슬슬 콧바람 좀 쐬어 볼까 했더니 바로 둘째가 들어섰다. 다시 반복된 임신, 출산, 산후조리, 육아의 사이클이 만 4년을 향해 간다. 학교 친구들을 만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지는 사이, 구닥다리가 된 피처폰의 주된 통화 상대는 친정 엄마와 여동생이 되었다. 대출, 보험 상담에 할인 마트 세일 문자들이 사서함을 가득 채웠다. 큰 맘 먹고 만나는 사람이라야 아랫집 사는 같은 처지의 아기 엄마인 슬픈 현실 속에서 어느덧 내 삶에 친구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나 역시 골드 미스 친구들의 뒷담화 꺼리가 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결혼 5주년 선물이라는 상자엔 최신 유행 스마트폰이 들어 있었다. 육아에 찌들어 시들시들해진 얼굴이 매끈한 액정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잔소리를 쏘아 붙였다. “아니 우리 형편에 2년 단말기 할부금까지 내가며 비싼 스마트폰 요금제를 써야겠어?” ‘차라리 현금으로 주면 좋았을 것을...’ 인터넷 검색이야 집에 있는 노트북을 쓰면 그만인데다 그마저도 애 키우다보면 전원 스위치 켤 시간도 없는 사정을 뻔히 아는 남편이 벌인 일이라 더 화가 났다. 기계치인 내가 다양한 앱을 활용할 리 없었고 빠름, 빠름으로 메아리치는 lte속도는 내 밥 챙겨 먹는 속도가 더 절실한 하루하루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지난 여름, 액정 수리로 초기화된 2g폰의 불편함을 모른 채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버린 나는 그렇게 남편에게 투덜댔다. 이런 내 반응에 오히려 남편은 측은한 눈빛으로 차근차근 자초자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큰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단체 카톡 공지사항이 왔다. 이번 주에 있는 현장학습 준비에 변경사항이 생겨 급하게 돌리는 알림 메시지였다. 엄마인 내가 스마트폰이 아니니 아빠에게로 카톡이 간 모양이었다. 그 후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이어진 아기 엄마들의 쉴 틈 없는 카톡 수다에 남편은 뻘쭘했다고 한다. 애들 데리고 언제 키즈카페에서 한번 뭉치자며 시간과 장소를 잡는 사이, 우리 마누라는 왕따가 되고 있다는 서글픈 생각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는 것이었다. 그 충격에 바로 사 온 선물을 가지고 남편을 면박하고 있었다니... 꼭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남편의 깊은 배려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밀려올 때였다. ‘띵똥’ 카톡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초기화된 피쳐폰으로 모두 날린 전화번호는 ‘내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무심하게 했다. 그러던 중 ‘은진이’라고 뜬 대화창은 반가움과 더불어 미안함을 울컥 솟구치게 했다. 3년 전, 은진이의 결혼식 날은 영하 10도를 웃도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만삭의 임산부가 경기도 광주에서 일산의 웨딩홀까지 가기엔 너무나 버거운 초행길이었다. 예정일을 앞두고 잦아지는 가진 통에 지레 겁을 먹고 꼼짝없이 틀어박혀 있던 주말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안한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축의금을 친구 편에 부쳤지만 아쉬움과 찜찜함이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내 결혼식에는 1시간이나 먼저 와 신부대기실을 지키며 이것저것 챙겨주고 도와준 고마운 친구인데 정작 나는 만삭의 몸을 핑계로 가지 못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정신없는 사이, 분실된 연락처, 문을 닫은 미니홈피 그리고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었다는 게 더 솔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옛 추억의 희미한 그림자로 남겨진 은진이였다. 손바닥만 한 기계 속, 은진이의 얼굴과 돌이 지난 사랑스런 딸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날부터 소식 끊긴 이들의 친구신청이 속속 이어졌다. 이 문명의 이기가 주는 쏠쏠한 매력에 빠지자 어느새 나는 ‘하음 엄마’ 에서 ‘김소연’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면 허전한 품을 눈치 챈 큰 아이가 부스스 일어난다. 대충 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뜨며 큰 아이 등원 준비를 시키면 방 안 가득 밀려오는 똥 냄새가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얼른 씻긴 둘째를 아기 침대에 가두어 놓고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빈 집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쏟아낸 작은 아이를 들쳐 업고 난장판이 된 집안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해도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살림살이에 오늘도 엉덩이 붙일 겨를이 없다.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댁과 친정에 국한되어 버린 내 삶의 반경이 자연스레 ‘나’를 포기하게 했다. 나를 위한 한 시간, 나를 위한 돈 만원, 나를 위한 한 사람을 그렇게 내려놓는 사이, 남은 것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시작하는 팍팍한 하루에 목적 없이 달리고 있는 우울한 나의 모습뿐이었다. 그런 내 손에 쥐어진 작은 네모는 멀어진 사람들과의 잊어버린 추억을 이어주었다. 소중한 시간들을 공유한 ‘내 사람’들과의 소소한 한 줄 한 줄이 일상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신문이나 책을 펼치던 대중교통 속 아침 풍경이 어색해지는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검색하기 바쁜 사람들의 똑같은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차가운 기계 속에 갇혀 더 폐쇄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었다. 그러나 네모난 화면의 실체는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신비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에 답하며 마음 속 한 줄을 고백하는 사이, 웅크려 있던 ‘하음 엄마’를 ‘김소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꺼내 준 일등공신이기 때문이었다. 젖먹이와의 씨름이, 힘든 투병 생활이,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은 네모는 ‘나’의 존재와 세상을 이어주는 고마운 통로가 되었다. 이 신기한 녀석의 매력에 푹 빠진 어느 날, 큰 아이 장난감을 사기 위해 중고 시장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 사이 은진이에게 카톡이 왔다. 낮밤이 바뀐 아기 때문에 힘들다는 짤막한 한 줄에 지난 밤을 꼬박 새운 은진이의 한숨이 묻어 나온다. 3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듯 가슴 한 구석이 애틋해진다. 아이 스케줄에 맞춰 아이 잘 때 무조건 눈을 붙이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이 소중한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 보려 한다. ‘엄마’가 아닌 ‘학생’의 모습으로 일어서려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방송통신대학교 앱을 다운 받아 틈틈이 공부를 해 3년 안에 유치원교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친구이자 학습의 멘토가 되어 멋진 학사 가운을 입게 해 줄 스마트폰과의 2013년. 그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네모와의 하루하루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