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여수항 야경> 

 
전남 여수(麗水)는 한겨울에도 붉은 동백꽃 피어나는 남도의 항구 도시다. 1479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들어서면서 남해안 방어의 중심적인 군사도시로 떠오른 여수는 1895년 좌수영이 폐지될 때까지 400여 년 동안 경남 통영과 더불어 남해안 방어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2012년에 열릴 세계엑스포 준비에 여념 없는 남도의 항구 도시 여수로 떠나보자.


 

임진왜란 직전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


겨레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었을 것이다. 장군은 이곳을 수군의 중심 기지로 삼고, 기고만장하던 왜군을 맞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연전연승을 거뒀던 것이다. 그래서 여수엔 임진왜란과 관련된 흔적이 넘쳐난다. 그중 ‘충민사~진남관~고소대~이충무공 자당 기거지~오충사~시전동 선소’로 이어지는 동선은 ‘충무공 루트’라 할 수 있다.



        <여수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산공원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덕충동 마래산(385.2m) 기슭에 터를 잡은 충민사(忠愍祠)는 임진왜란이 끝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 민심을 둘러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왕에게 간청하여 건립했는데, 충무공을 모신 최초의 사액 사당으로 이름 올렸다. 1606년에 세워진 통영의 충렬사보다는 5년, 1704년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이나 앞선다.



함께 배향한 인물도 쟁쟁하다. 전라우도 수사(水使)로서 당항포․옥포 등지에서 크게 승리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칠천량 싸움에서 전사한 이억기(李億祺, 1561~1597), 이순신장군의 선봉장으로 공을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안골포에서 전사한 안홍국(安弘國, 1555~1597) 등이다. 사당 옆에 있는 석천사(石泉寺)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종군한 승려 옥형과 자운이 충무공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단이 기원이 된 수호사찰이다.



                              <전라좌수영의 중심이었던 진남관>


군자동에 있는 진남관(鎭南館, 국보 제304호)은 전라좌수영의 중심이다. 진남(鎭南)은 ‘남쪽 즉 왜구를 진압하라’는 뜻이다. 진남관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제사 지내거나 왕명으로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대규모 객사(客舍)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할 당시엔 이 위치에 진해루(鎭海褸)가 있었다. 그때의 사령부 건물인 진해루는 충무공이 백의종군 중이던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렸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선조 32) 12월에 삼도수군통계사겸 전라좌수사인 이시언이 그 터에 진남관을 세웠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려 세운 타루비

진남관을 나와서 도로를 건너 언덕길을 오르면 고소대(姑蘇臺)가 반긴다. 이순신 장군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서, 군령을 어기고 도망했던 병사의 목도 여기서 베었다. 고소대 비각 안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 동령소갈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모두 장군과 관계 있는 소중한 비석들이다.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후 옛 부하들이 장군을 그리워하며 세운 타루비>


그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타루비(墮淚碑, 보물 제1288호)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지 6년 후인 1603년에 임진왜란 당시 살아남은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이다. 타루(墮淚)는 ‘눈물이 한없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충무공 휘하의 병사들이 장군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비석이다.



일제강점기엔 임진왜란 관련 유물유적이 유달리 수난을 많이 당했는데, 이 비석들도 얄궂은 운명을 감내해야만 했다. 1942년 봄, 일본인 여수 경찰서장 마쓰끼가 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를 감춰버린 것이다. 다행히 광복 후인 여수의 유지들이 수소문 끝에 1946년 당시 국립박물관 정원에 묻혀있던 비석을 발견해 이곳으로 다시 옮겨올 수 있었다.



고소대를 내려오면 동백꽃으로 유명한 오동도가 가깝다. 동백꽃은 한겨울에도 한두 송이 피어나지만 보통 3월 초순부터 만개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동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해도 어찌 동백섬 구경을 마다할까. 한겨울에도 짙푸른 상록수 숲을 거닐며 건강한 정기를 맘껏 받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겨울 남도 여행의 덤이 아니겠는가. 오동도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여수 선소’에서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거북선을 실물크기의 4분의 1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오동도 들렀다 나오면 길은 중앙동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이순신장군의 어머니 초계 변씨(草溪 卞氏, 1515~1597)가 5년 간 머물던 송현마을의 충무공자당기거지,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정철, 정대수장군 등을 모신 오충사(五忠祠)를 차례로 지나면 시전동 선소(船所)다.



<임진왜란 당시 순천귀선으로 불리는 거북선을 만든 시전동 선소>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에선 모두 3척의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좌수영 선소에서 직접 만든 영귀선(營龜船), 지금의 돌산읍 군내리인 방답진 선소에서 만든 방답귀선(防沓龜船), 그리고 순천부에 속했던 이곳 시전동 선소에서 만든 순천귀선(順川龜船)이 그것이다.



벅수 한 쌍의 안내를 받고 선소마을로 들어서면 깊숙한 만(灣) 안에 다시 직경 40m에 이르는 둥그런 굴강(屈江)이 보인다. 거북선을 비롯한 선박들을 건조하고 수선했던 곳이다. 부근엔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무기를 갈고 닦았던 세검정(洗劒亭), 무기를 보관하던 군기고가 복원되어 있다. 거북선을 메어두었다는 계선주(繫船柱)도 남아있다.

 


돌산도 향일암에서 보는 일출 장관



여수 여행에서 돌산도 향일암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침 새해를 맞이했으니, 한 해의 소원도 빌 겸 향일암 일출을 감상해보자.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하였다는 향일암은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이름을 가진 절집답게 일출 광경이 좋다. 향일암은 경내의 건물들이 모두 해가 뜨는 쪽을 바라보고 있어 건물 주변 어디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출 감상 최고의 포인트는 대웅전 앞마당. 대웅전엔 세 분의 부처가 모셔져 있는데,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서 퍼진 햇살이 세 부처 중 한곳에 바로 비친다. 이는 계절에 따라 해 뜨는 위치가 조금씩 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한다. 좀 더 호젓하게 일출을 보려면 대웅전 위쪽의 관음전도 괜찮다. 앞이 탁 트여 있어 대웅전에 뒤지지 않는 일출 포인트로 꼽힌다.

 

사진 & 글 : 여행작가 민병준 
sanmin@empal.com 


 

여행정보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비룡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간고속도로)→진주 분기점→남해고속도로→순천 나들목→17번 국도→여수 (수도권 기준 5시간30분 소요)



●맛집 =
오동도 입구엔 동백회관(061-664-1487) 등 한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2인분 기본 4만원, 3인 이상 1인분 1만5000원.



<별미 한정식>



연안의 얕은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서대는 맛이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서 회무침이나 찜으로 애용되고 있다. 막걸리를 1년 이상 삭혀서 만든 식초로 맛을 내는 것이 비법. 중앙동의 중앙파출소 인근 부둣가 횟집촌에 있는 삼학집(061-662-0261), 여수똑순이집(061-663-8877), 구백식당(061-662-0900) 등이 있다. 1인분 10,000원.



●숙소 =
오동도 주변에 청호장(061-662-1212), 골든모텔(061-665-1401), 신라장(061-664-3412) 등 숙박시설이 많다. 향일암 아래 임포마을에도 일출모텔(061-644-4729), 황토방모텔(061-644-9231), 고향모텔(061-644-5102) 등 전망 좋은 여관이 여럿 있다.



※참조 =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2225, 오동도관리사무소 061-690-7301, 향일암 061-644-0309.

 

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