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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박물관, 용감한 철도원 이야기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철도박물관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기차와 지하철을 비롯한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생활상에는 철도는 깊게 들어와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철도박물관을 다녀와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과거의 기관차들

초창기의 철도는 영국에서 스티븐슨이 1814년에 증기기관차를 건조하면서 산업혁명기에 교통의 변혁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의 철도로 불리게 된 것은 1930년에 개통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이다. 이 철도회사의 기사로 고용된 스티븐슨이 제작한 증기기관차 로켓호는 양시간 31마일을 평균 시속 14마일로 주행하게 되었고 궤도의 혁신과 함께 철도시대의 막을 열게 하였다. 이후에 철도건설 붐이 일어나게 되었고 영국의 철도간선망은 계속적으로 확대가 되었다. 1840년에 1,500마일, 1851년에 6,800마일, 그리고 1870년에는 13,600마일에 달했다. 그것은 당시 어느 나라도 추종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큰 규모로 이는 영국의 산업발달과 국력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만큼 철도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상당하다.

철도의 가져다주는 이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도가 건설됨으로써 도시와 농천, 도시상호간 공겁지대와 항만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체계가 완성이 되어 수송능력에 혁명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의 단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철도는 거대한 자본을 수요함으로써 경제활동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었다. 대규모의 철도건설은 진행 중인 산업혁명을 더욱 촉진시키고 막대한 자본수요를 야기함으로써 국가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셋째, 국가적인 전쟁으로 인한 재난상황에서 사람과 물자 등을 수송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군대에서도 전략적인 활용수단 및 임무에 있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군의 철도를 파괴하는 것도 군부대의 임무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처럼 철도는 19세기 초의 인류의 교통과 생활을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현재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역마차 시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물자와 인력을 빠르게 수송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철도이다. 바로 이 철도를 이용해 군에서는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실제로 프로이센은 보오전쟁(1866)과 보불전쟁(1870)에서 철도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철도의 역할을 군대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장갑차와 전차들을 비롯하여 각종 중장비가 많은 기갑부대 경우는 원거리를 이동할 때 철도를 통해 이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급품도 신속하게 전장에 투입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대가 TMO로서 국군수송지원반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텐데, 장병들이 휴가 때 이용할 수 있는 군 수송열차편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곳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철도박물관이다. 철도박물관은 의왕역과 바로 인접하고 있어 쉽게 방문할 수 있으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철도의 역사와 문화, 변화와 발전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된 코레일 산하의 박물관이다.

▲ 지금은 운행이 중단된 통일호 실내

이곳은 오래된 기차와 어른들에게는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처음 보는 형태의 기차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철도박물관에는 1층에 역사실, 차량실, 철도체험실, 모형철도 파노라마실이 있고, 2층에 전기-신호-통신실, 시설-보선실, 운수-운전실, 미래철도실, 영상실이 갖춰져 있다. 역사실에는 한국 철도 최초로 운행한 모갈탱크형 증기기관차, 한국전쟁 당시 운행됐던 미카 증기관차, 철도휘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차량실에는 증기기관차와 디젤전기기관차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고, 철도 체험실에는 관람객이 직접 기관사가 되어 열차를 모의 운행해 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2층 전기-신호-통신실에서는 각종 철도 신호기와 통신시설을 볼 수 있고, 시설-보선실에서는 철도를 수리하는 모습과 다양한 종류의 레일이 전시되어 있으며, 운수-운전실에서는 철도 승차권, 검표용 가위, 역장의 제복 등 철도 문화와 관련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이밖에 옥외 전시 공간에는 19량의 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사용했던 기관차

이곳에서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용하던 열차도 볼 수 있었는데, 이후에 기증이 되어 디젤기관차 경부선 특급열차로 운행되었다고도 한다.

▲ '미카 3-129호' 故 김재현 기관사가 몰던 기관차

한편, 실물을 1/2로 축소된 '미카 3-129호'라는 명판이 붙어 있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이 기관차는 한국전쟁 당시 대전 전투에서 실종된 미군 제24단장 윌리암 F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김재현 기관사가 적진을 뚫고 들어갔던 바로 그 기관차이다. 그에 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6.25 한국전쟁 당시 순직한 故 김재현 기관사 이야기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지형에 어두웠던 미군은 대전지구에서 많은 희생을 당했고, 최후까지 선두에서 대전지구 사수를 진두지휘했던 딘 소장 자신은 미처 적진을 탈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영동에 집결한 제24사단 장병들은 딘 소장의 행방불명을 확인하고 구출특공대 33명을 조직하고 열차를 이용, 적진에 들어가 구출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의 위급한 전황으로 봐서는 적치하에 들어가 있는 대전으로 열차를 몰고 진격하여 구출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기관차를 몰고 적진에 뛰어들겠다고 분연히 자원한 기관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27세의 젊은 김재현(金栽鉉)기관사였던 것이다.

김재현 기관사는 현재영ㆍ황남호 두 기관조사와 함께 성명을 무릅쓴 미결사대원들을 기관차에 연결된 석탄차와 화차 1량을 연결하고 이원역을 출발했다. 그러나 적진으로 들어가 증약터널을 빠져나오자 북한군이 기관차를 향해 공격을 했다. 탄수차에 타고 있던 미군도 일제히 기관총으로 사격을 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재현 기관사는 최고속도로 기관차를 운전했으며 두 기관조사는 쉴틈없이 비지땀을 흘리며 화구에 석탄을 퍼 넣고 있었다. 이렇듯 치열한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간신히 세천을 빠져나와 대전역 남부 신호실 앞에까지 달려가서 정차했을 때는 대전시내는 불바다가 되어 하늘에는 검은 연기로 휩싸여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미군결사대원 중 이미 10여명이 희생되었으나 기관사와 기관조사들은 모두 무사했다.

북한군의 탱크와 포탄이 휩쓸어버린 적치하의 대전에서 딘 소장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치하의 대전까지 목숨을 걸고 달려온 결사대원들이 적지에서 1시간여 동안 수색했으나 더 이상 머무르면서 수색해보아야 구출작전에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대전역을 출발하여 전속력으로 남하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은 미군결사대는 단 한 명의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원 전멸당하고 김재현 기관사도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현재영기관조사가 쓰러진 김재현 기관사를 부등켜 안았으나 그의 입에서는 먹물같은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이미 눈이 감기면서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김재현 기관사는 전신에 8발의 총탄이 관통되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제24사단 특공대의 영웅적인 딘 소장 열차구출작전은 너무나 큰 댓가를 치루고도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김재현 기관사의 유해는 황남호 기관조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영동산 아래 묻혔다가 휴전협정 후 다시 고향인 논산군 노성면 정암리 뒷산으로 이장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 12월 5일 대전철도국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적의 흉탄에 맞아 산화한 지점인 대전시 삼정동 철로변에 그의 순직비를 세웠다.

이후 김재현 기관사 순직 28년 뒤인 1978년 3월 그의 희생정신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3년 6.25 전쟁 33년만에 대전지방철도청 및 유족들의 협조를 받아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묘지의 영관급묘역에 안장되었다. 이처럼 전쟁에서는 군인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순직한 철도인들이 다수라고 한다. 김재현 기관사처럼 총탄에 쓰러지거나 철도를 건설하다가 순직한 사람 등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철도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고, 많은 아픔을 안고 있기도 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특히, 철도박물관을 둘러보면 녹슨 기관차가 눈에 띄었다. 6.25전쟁 때 탈선했던 비무장지대의 철도의 모형이라고 한다. 실물은 임진각에 가시면 볼 수 있다. 이 열차는 역사에 남을 문화유산으로서 근대문화유산 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50년 12월 31일 개성을 출발 서울로 오던 열차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 장단역 부근에서 멈춘 바로 그 기관차로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 철도박물관에 있는 비무장지대 철마

비무장지대에 서있는 이 기관차에는 이런 푯말이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의 역사가 통일을 염원하는지 녹슨 철마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철도박물관에 방문을 하게 되면 이런 배경을 한 번쯤 알고 관심깊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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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종근 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참조 : <경제사> 김종현 저, 경문사 / 블로그 열혈국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