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자료

조기의 섬 연평도에는 조기가 없다. 그러나 해병대가 있다!

북한의 웅진반도를 향해 바다위로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쳐져 있어 연평도라 불린다는 섬,  연평도를 찾아 보았다. <첨부된 사진들을 클릭하시면 큰사이즈로 보실수 있습니다.>

연평도를 가기 위해서는 인천연안부두에서 연평도행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인천 연안부두의 여객터미날, 여행안내소를 찾아 물어보니 연평도 포격사건이후 아직도 관광객은 많이 줄어있는 상태라고 한다.

오전 9시 연평도 출항을 위해 정박중인 여객선 코리아익스프레스호는 하루 1회 연평도를 왕복한다.

언제나 만석이었다는 코리아 익스프레스호의 여객실, 빈자리가 많아 보인다.


인천연안부두를 떠난 여객선은 인천대교를 지나 먼저 소연평도를 향해  달린다. 지난달 방문계획때에는 풍랑주의보로 출항을 못했었는데 전날부터 비가 내려 또 못가보나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출항을 했다.

소연평도 

2시간 15분을 달려 도착한 대연평도 부두

사람들은 연평도하면 조기를 떠오를 정도로  조기의 섬으로 유명했다. 조선 18조 인조대왕 14년(1636년) 임경업장군에 의해 조기가 발견된 후 1968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어장을 이루었으나 더이상 조기는 잡히지 않는다. 조기잡이가 한창일때는 부두전체가 배들로 붐벼 배위를 걸어서 가까운 섬까지 갔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였다는 연평도는 이제 조기보다 꽃게가 더 유명하다.

이 연평도를 북한은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부터 170여발을 무차별 포격했다. 이로 인해 연평도에서 복무하던 해병대원 2명(故 문광욱 일병,故 서정우 하사)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하였으며, 민간인 3명과 해병대원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연평도에는 그 현장의 일부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평도의 일명 라스베가스 거리, 특히 민간인 지역에 떨어진 포탄은 해병대에서 연평도에 근무하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는 연평도의 라스베가스라 불리는 곳인 민간인 밀집지역에도 떨어졌다.




TV에서 많이 본 연평면사무소의 포격장면사진과 현재사진, 이 연평면사무소 바로 옆에는 연평초등학교가 있다

연평초등학교내에 설치된 임시가옥에는 포격으로 집을 잃은 연평도 주민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교길에 촬영을 하고 있는 기자를 바라보는 이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겪었을 그날의 공포는 어떠했을까?

포탄이 떨어져 화재가 발생한 연평면사무소와 뒷산

20여발의 포탄이 떨어졌다는 해병대원들의 생활관 앞 산

포격으로 인해 파괴되고 불타버린 곳들의 흔적들

연평도 곳곳에서는 아직도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서해 북한과 밀접한 서북도서는 해병대가 지키고 있고  특히 북한의 황해도 부포리와 불과 10여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연평도 역시 해병대가 지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해병대 연평부대 정훈담당 양승호하사가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촬영한 사진, 이사진이야말로 연평도를 지키는 해병대원들의 용감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날 그 사진의 현장 그자리에 그대로  해병대가 있다.

우리 해병대원들이 북한의 포격에 맞서 용감하게 대응한 K-9 자주포

K-9진지 곳곳에 남아있는 포격의 흔적

포격전 당시 포병중대장 김정수대위(좌)와 불탄 철모의 주인공 임준영해병,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포연탄우 속에서도 즉각 대응사격으로 강인한 해병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해병대 연평부대 장병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해병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주어진 임무수행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모두 일치 단결해 서북도서 절대사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해병대원원들의 생활관 입구 게시판에서 본 "11월 23일,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는 문구를 보며 해병대원들의 서북도서 절대사수의지를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연평부대를 위문방문한 김명환 제24대 해병대사령관, 1989년 2월 24일부터  제13대 연평부대장으로 연평부대를 지휘한바 있고 또 연평부대에서 복무하며 신혼생활을 시작하여 유난히 연평부대와 인연이 많다는 김명환 前사령관은 해병장병들에게 더욱 투철한 해병정신으로 무장하여 서북도서 절대사수의 임무를  완수해 주기를 당부했다.

해병대는 한국전쟁중이던 1951년 독립5대대 22대대 1소대가 연평도에 처음 상륙했다. 이후 해병도서경비부대, 해병도서방위부대등을 거쳐 해병대6여단 예하부대에서 1996년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 직할부대로 재편된 해병대 연평부대는  해병대 6여단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서해6개전략도서를 방어하는부대로서 지금까지 60여년을 변함없이 서해최북단 연평도에서 적활동을 감시하며 경제수역확장 및 주변어로작업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해병대 연평부대는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백경순(46 ∙해사42기) 대령이 2011년 1월초부터 부임하여 지휘하고 있다.


이제 다시 평온을 찾아가는 연평도에서는 여느해와는 달리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주민들은 꽃게잡이 조업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포격사건이후 연평도를 떠난 주민들은 이제 95%정도가 다시 연평도로 돌와왔다고 한다. 그들이 다시 연평도로 돌아온 것은 이곳이 그들의 소중힌 삶의 터전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섬 연평도이기 때문일것이다.

 

끝으로 짧은 일정으로 많이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연평도의 몇 곳을 소개한다.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아직 사람때가 많이 뭇지 않은 연평도는 자연이란 이런것이라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연평도는 아름답지 못해 천연덕스럽기조차 하다.

 


관광전망대와 조기박물관

연평도 역사와 함께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여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건립한 등대공원 옆 관광전망대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병풍바위를 비롯한 가래칠기해변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북녘하늘과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기만 하다.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서해교전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기상이 좋은 날씨에는 해주의 시멘트공장 연기까지 보인다고 한다.


조기역사관 아래 군터널관광시설지역 해안절벽에  위치한 해안포


가래칠기해변에 둥글 넙적 매끈한 자갈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는 여느 해변에서 느끼는 것과 전혀 다른 시원함을 느낀다. 띄엄띄엄 넙적바위가 만들어 주는 천연정자에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자!  이제 지난간 역사, 숨겨진 신비, 황홀한 절경과 함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섬  연평도로 떠나보자!  연평도부두가 가까워지면 흰색과 빨간색의 두 등대가 여러분들을 반갑게 맞이 할 것이다.

- 생략
연평도를 지키다 전사한 용감한 해병용사야!
나는 영결식장에서 울부짖는 유족들을 보며
사랑하는 아들아! 해병인 아들이 자랑스럽다.
먼훗날 우리 후손들은 연평도를 지키기 위해
해병이 싸우다가 쓰러져 갔다고 자랑할게다.
연평도는 우리 해병대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우리땅! 아름다운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들이
만선의 기쁨으로 웃음 지으며 평화를 누리게
하느님! 그들에게 소생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 시인, 제20대 해병대사령관 임종린의 시 "눈물의 연평도 中에서 -

임영식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