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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기타

전쟁의 역사를 바꾼 기관총의 탄생과 진화

기관총의 탄생과 진화

 

1차 대전 이후 기관총은 지상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보병의 화력지원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하지만 무서운 화력을 자랑하는 기관총엔 뜻밖의 과거가 있다. 원래는 인명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뭐? 기관총이 인명을 구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는 진실이다. 지금부터 시간여행을 통해 기관총의 탄생과 그 진화과정을 살펴보자.

 

 

기관총의 탄생
‘리처드 조던 개틀링’박사는 원래 의사였지만 의술 대신 공학에 삶을 받쳤던 사람이다.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개틀링은 자신의 고향 인디애나에서 무수한 사상자들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뿐 아니라, 질병과 영양부족으로 고통 받는 병사들도 많았다. 병사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개틀링은 발사속도를 높인 새로운 총을 개발하기로 한다. 그는  병사 한사람이 100명의 몫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고, 자신의 이름을 따 개틀링 기관총이라고 명명했다. 이 총의 특징은 개별 발사장치가 부착 된 여러 개의 총신이었다. 손으로 돌리는 L자형 손잡이가 총신을 돌리면서 총 위쪽에 있는 탄창 밑을 지나게 한다. 각각의 총신은 12시위치에서 장전되고 1시위치에 왔을 때 용수철이 장착된 핀이 총알을 발사한다. 그 후 총신은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사용한 탄피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결과 한 총신이 발사하는 동안 다른 총신은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사격이 가능하다. 개틀링은 이 기관총이라는 기계가 소총 여러 자루의 화력을 대체해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 반대가 되었다. 병사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고, 개틀링 기관총의 숫자도 늘어나면서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전을 치루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들어났다. 흥분한 사수가 너무 빨리 손잡이를 돌릴 경우 작동불량이 일어나기 일쑤였고, 너무 크고 무거워 마치 대포처럼 운용해야했기 때문에 쉽게 다룰 물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개틀링 기관총은 신뢰를 잃고 창고신세가 되었다.

 

리처드 조던 개틀링 박사와 그가 만든 수동식 개틀링 기관총. 애초 그의 순수했던(?)의도와는 다르게 기관총이 쓰이게 된다.

 

1877년에 찍힌 개틀링 기관총의 모습. 커다란 수레바퀴에 실려 마치 대포처럼 운용되었다.

 

진정한 기관총이 나타나다
하지만 탄환을 연속 발사한다는 개념은 공학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도전과제였고, 드디어 1883년 ‘하이람 맥심’이란 발명가는 제대로 된 기관총을 세상에 내놓았다. 당대 에디슨과 견줄 정도로 뛰어난 발명가였던 하이람 맥심은 친구들과 사격연습을 하던 중 기관총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즉, 발사시마다 어깨로 전해지는 반동의 충격에너지를 이용해 탄환을 재장전하는 전자동식 기관총을 고안해낸 것이다. 맥심의 친구들은 돈을 긁어모으고 싶으면 유럽 사람들이 대규모 시설에서 생산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을 만들라고 얘기해줬고, 맥심은 기관총의 시제품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가 ‘쇼 케이스’를 벌이며 열심히 홍보했다. 당시 맥심기관총은 1분에 무려 450발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다. 맥심은 전 세계 군관계자들을 불러모아놓고 기관총으로 나무를 쓰러뜨리는 시범을 보여주는 탁월한 마케팅 능력으로 사업을 진행시켰다. 곧 맥심기관총은 유럽의 표준 기관총이 되었고,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야말로 빅히트(?)를 쳤다. 기관총 앞에 적의 돌격과 진격은 번번이 가로막혔고 이는 곧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적을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단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대대 하나가 기관총에 녹아 없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헬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발명한 맥심기관총을 시연해 보이는 하이람 맥심. 기관총 앞에 무수한 탄피가 보인다. 맥심기관총을 처음 본 일부 국가의 지도자들은 엄청난 탄약소모량을 걱정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을 주름잡은(?) 맥심기관총. 피아간 할 것 없이 표준 기관총으로 자리 잡았다.

 

중기관총인 맥심 기관총은 너무 무거워 보병이 이동하며 쉽게 다룰 수 없었다. 따라서 보병들에게도 화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경기관총이 필요했다. 사진은 루이스 경기관총의 모습. 하지만 이마저도 신뢰성과 성능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

 

진화하는 기관총
1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열강들은 기관총의 악몽에 몸서리를 치며 이를 돌파할 수단을 찾고 있었다. 먼저 보병들에게도 기관총과 맞먹는 화력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경기관총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경기관총의 신뢰성이 극히 낮았고, 2차 대전 직전에서야 그런대로 쓸 만한 경기관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차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처절한 복수를 꿈꾸었고,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무기개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관총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독일은 중기관총이나 경기관총을 따로 개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기관총으로 경기관총, 중기관총, 심지어 차재기관총 등 모든 기관총으로 사용이 가능한 다목적 기관총을 개발한다. 바로 MG-42 전설의 시작이다. 독일군은 전작 MG-34가 있었으나 절삭가공방식의 제조방법 때문에 생산단가가 높았고, 결국 철판프레스 공법으로 제조단가를 낮춘 MG-42를 내놓으면서 기관총의 선진국의 정점에 서게 된다. MG-42는 1분에 무려 1,500발을 탄환을 발사하는 무시무시한 성능과 발사 시 독특한 기계음으로 일명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 보병들을 가장 많이 죽인 총기라고 일컬어지는 MG-42 기관총은 당시 연합군들 사이에선 ‘전차를 타고가면 88에 맞아죽고, 걸어가면 히틀러의 전기톱에 썰려 죽는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고갈 정도로 가공할만한 성능을 가진 무서운 기관총 이었다. 이 MG-42의 개념은 전쟁이 끝난 후 세계 각국 기관총 운용의 표준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경기관총일 때 MG-42의 모습. 사실 독일군 보병분대는 기관총의 탄약을 운반하는 짐꾼에 가까웠다. 독일군의 보병 교리가 기관총운용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삼각대에 얹어 중기관총으로 운용중인 MG-42. 우수한 삼각대의 설계 덕분에 중기관총으로서의 능력도 매우 높았다.

 

차량에 탑재된 MG-42. 한 마디로 만능 기관총이었다. 함께 장착된 원통형 구조물은 야간용 적외선 서치라이트. 대전 최 후반기의 물건으로 보인다.

 

베트남전부터 1990년대 까지 미군의 주력기관총이었던 M-60. 디자인이나 운용 개념에서 MG-42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인된다.

 

기관총과 기관포
자 그럼 이제 기관총과 기관포의 차이를 한번 알아보자. 구분은 간단하다. 구경 20mm 미만은 기관총, 이상은 기관포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기관포는 왜 필요할까? 2차 대전의 혁신적인 무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항공기의 발달은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을 정도였다. 1차 대전과는 달리 항공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기존의 7~8mm급의 기관총탄으로는 적 항공기를 격추하기 매우 힘들게 되었다. 따라서 파괴력이 큰 기관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전투기에는 20mm정도가 탑재할 수 있는 한계였다. 이 20mm기관포는 발사 시 큰 충격을 기체에 전달해 조종에 상당한 노련함이 필요했지만, 일단 명중하면 확실히 적기를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전쟁 후 기관포는 또 다른 도전을 받게 된다. 바로 제트전투기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전의 항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제트기의 등장으로 기관포는 훨씬 빠른 연사속도를 요구받게 된다. 여기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개틀링건의 개념이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동식이이 아닌 완전 자동식의 기계적으로 우수한 신뢰성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7.62mm 미니건 에서부터 시작해서 A-10 공격기에 탑재된 GAU-8 30mm 기관포에까지 이 개틀링건이 쓰이고 있다. 특히 GAU-8은 1분에 4,200발을 발사할 수 있고 6Km밖에 떨어진 적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특히 장갑차와 같은 경 장갑차량에는 사신과 같은 존재이며, 3세대전차라도 안심할 수 없다.

 

영국군 호커 타이푼에 탑재된 20mm 기관포. 20mm의 위력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많은 조종사들이 선호했던 무기이다.

 

GAU-8의 모습. 빠른 발사속도를 위해 개틀링 기관총의 개념을 사용했다. 밑에 있는 커다란 드럼은 탄약통.

 

GAU-8의 위력을 보여준 사진. 장갑차와 같은 소프트스킨 차량은 말 그대로 썰려나가며, 전차조차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운용중인 기관총과 기관포
우리 군도 매우 다양한 기관총과 기관포를 운용하고 있다. 먼저 K3 경기관총은 1989년부터 보급이 시작된 5.56mm 분대지원 화기이다. 미군이 운용하는 M249와 같은 개념의 지원 화기로 현재 분대지원화기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K4 고속유탄 기관총이 있다. 수류탄정도 폭발력을 가진 유탄을 고속 자동발사 할 수 있는 기관총으로써 40mm 유탄을 씀에도 불구하고 기관총으로 분류되어 있다. K6 12.7mm 중기관총은 기존의 M2 중기관총을 세부적으로 개량한 모델이다. 주로 차재화기로 쓰이는데 1989년부터 생산되어 보급되고 있다. 또한 신형 7.62mm K12 기관총이 있는데, 기존의 노후화된 M60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4년부터 양산되어 현재 전력화를 기다리고 있다.

 

K3 기관총은 현재 M60 기관총을 대신하는 분대지원화기의 핵심이다.

 

K4 고속 유탄기관총은 화력이 집중될 경우 적 보병에게 지옥을 선물해 준다.

 

현재 k6 중기관총은 기존의 노후화된 M2 중기관총을 대체하고 있다.

 

 

K12 기관총은 소대지원화기로 앞으로 M60을 전부 대체할 예정이다.

 

기관포로써는 먼저 20mm 견인발칸포가 있다. 대공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미국제 M167 20mm 발칸포를 국산화 한 것 이다. 엘리콘 35mm 대공기관포 역시 대공용으로 스위스에서 35문을 도입하여 현재까지 운용중이다. 기관포는 해군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일단 20mm 시발칸 기관포가 있고, 30mm 발칸포가 탑재된 골키퍼와 20mm 발칸포가 탑재된 팔랑스 CIWS(Close-in Weapon System : 근접대공방어시스템)가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 브레다 40mm기관포를 국산화 한 노봉 기관포와 30mm 에머슨 기관포도 쓰이고 있다.

 

20mm 발칸포는 현재 거점대공방어의 핵심이다.

 

엘리콘 35mm 대공기관포는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한 대공포 중에 가장 우수한 명중률을 보여준다.

 

시발칸은 해군의 각종 지원함이나 해경의 경비구난함 등의 주력 무장이다.

 

30mm 골키퍼 CIWS는 강력한 3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있다.

 

1980년 실용화한 20mm 팔랑스는 현재 우리 해군 함정의 주력 CIWS이다.

 

에머슨 기관포는 제한적이나마 대함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다.

 

 

개량을 거듭한 노봉 40mm 기관포는 ADD에서 개발한 탄도계산 기법을 통해 놀라운 명중률을 자랑한다.

 

이상으로 기관총의 탄생과 진화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기관총은 말 그대로 기계가 발사하는 총이다. 따라서 인간이 구현할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으로 탄환을 발사할 수 있다. 즉, 걸리면 사망이란 소리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틀링이 처음 생각한 10명의 병사 몫을 하는 총은 진화를 거듭하며 여전히 병사의 수를 줄이는 데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병사들과 장비들을 더욱 중무장 시키고 있다. 앞으로 기관총의 또 어떤 진화가 이어질지 궁금하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