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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항공무기

로터이야기


헬기를 좀 어려운 말로 회전익기라고 한다. 날개가 고정되어있는 기존의 고정익기와 달리 회전익기는 날개자체가 회전하며 항공기를 움직인다는 뜻이다. 무거운 동체를 띄우기위해서는 회전익, 즉 로터를 움직여야 하는데 이 로터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운동역학적 원리가 숨어있다. 오늘은 이런 로터의 재미있는 내용을 알기 쉽게 얘기해보자

 

헬기로터란?
일단 알기 쉽게 프로펠러 항공기에 대해 알아보자. 1차 및 2차 세계대전의 항공기들은 거의 대부분 기수에 탑재된 엔진에서 프로펠러를 가동시켜 추진력을 얻었다. 엔진이 프로펠러를 돌리면 기체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 발생되고, 여기에 날개의 양력이 더해져 항공기는 비로써 비행을 할 수 있다. 항공기의 엔진이 크고 강력할수록 더 큰 프로펠러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지만, 프로펠러가 지나치게 크면 이착륙이 곤란 하므로 항상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강력한 2천 마력급 엔진을 탑재했던 미국의 F4U 콜세어는 거대한 프로펠러를 달기위해 어쩔 수  없이 역 갈매기 날개형태의 주익을 선택하였다. 날개가 구부러지는 Ⓐ지점에 랜딩기어를 장착해 프로펠러가 땅에 닿지 않게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자연히 기총좌는 Ⓑ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같은 프로펠러라도 헬기의 로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무거운 기체를 오직 로터, 즉 프로펠러의 힘으로만 들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직으로! 따라서 헬기는 큰 양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커다란 프로펠러, 즉 로터를 회전시켜야 한다. 헬기에는 ‘스터브윙’ 이라는 날개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이건 오직 군용 헬기에서 무장을 탑재하기위한 용도로 쓰일 뿐이다. 비행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꼬리부분에도 날개 비슷한 것이 달려 있지만 이것은 날개가 아니라 단지 헬기의 수평운동을 안정화시켜주는 안정판이다. 일단 공중에 떠오른 헬기는 배기가스를 뒤로 밀어냄으로써 전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헬기는 전진뿐 만아니라 후진, 공중정지비행(호버링), 측면수평비행 등 고정익기 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비행을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이것 역시 헬기 로터 덕분이다. 헬기로터의 구동축과 ‘로터블레이드’(쉽게 말해 프로펠러 날개)는 ‘슬리브’라는 부분으로 연결되어있다. 이 슬리브에 연결된 로터블레이드는 좌우로 각도를 변형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로터블레이드는 다양한 각도와 방향으로 양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헬기는 고정익기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직비행이 가능하다.

 

헬기 각 부분의 명칭. 로터블레이드 외에 양력이나 비행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없다.[출처 : Britannica Visual Dictionary ]

 

헬기의 소리는 로터의 소리
하지만 헬기에게 있어서 로터블레이드는 양날의 검이다. 로터블레이드가 크고 숫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양력을 발생시켜 헬기가 뜨는 것이 수월해 지지만 그러자면, 더 큰 엔진이 필요하다. 당연히 엔진이 커지면 중량도 많이 나가게 되며, 연료의 양도 많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로터블레이드의 크기 및 숫자와 헬기 중량간의 절묘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군용을 예로 들자면 경쾌한 기동성을 살린 경량헬기의 경우 로터블레이드의 숫자를 늘려 기동성의 향상을 꾀할 수는 있지만, 반대급부로 무장이나 화물의 중량을 희생해야 한다. 수송용 헬기의 경우 로터블레이드를 최소화해 화물의 중량을 늘리는 대신 마찬가지로 기동성을 희생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월남전에서 대 활약한 UH-1 헬기인데, 두 개의 로터만 장착했기 때문에 민첩한 기동은 좀 곤란했다. 그리고 이러한 약점은 공격용헬기에까지 이어진다. UH-1의 구동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한 세계 최초의 본격 공격용 헬기 AH-1 코브라는 실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긴 했으나, 아무래도 수송용 로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았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 경량 신소재 기술과 공기역학기술, 그리고 엔진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약점들은 많이 개선이 되었다. 특히 코브라는 개량을 거듭하게 되고, AH-1 시리즈의 최신형 모델인 AH-1Z Viper는 네 개의 로터와 두 개의 강력한 엔진을 사용하는, 아파치헬기 부럽지 않은 고성능 헬기로 거듭나게 된다.

 

베트남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UH-1 헬기.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명확했다.

 

베트남전에서 데뷔한 AH-1 코브라 헬기. 전쟁이 끝난 후 아쉬운 기동성과 엔진파워 때문에 개량을 거듭하게 된다.

 

AH-1 시리즈의 끝판 왕 바이퍼 공격용 헬기. 네 개의 로터가 확연히 보인다.

 

경쾌한 기동성을 자랑하는 500MD 헬기. 로터블레이드의 숫자를 늘려 기동성을 향상한 대신 수송중량을 희생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헬기 특유의 소리 역시 로터블레이드의 산물이다. 프로펠러 비행기의 경우 프로펠러의 크기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수 십대가 아주 낮게 비행하지 않는 이상 지상에서는 소리만으로 항공기의 접근을 알아채기 힘들다. 하지만 헬기는 단 한 대만 상공에 지나가도 특유의 ‘타타타타’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이유는 헬기의 거대한 로터블레이드가 회전하며 공기의 흐름을 연속으로 강타하기 때문이다. 이는 헬기에게 꽤나 큰 약점이 되는데, 이로 인해 은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 개발된 헬기들은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아파치헬기의 경우 로터블레이드가 신소재로 대폭 경량화 됨과 동시에 로터블레이드 끝에 공기역학적 설계를 적용해 헬기 특유의 공기 파쇄음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최신형 아파치헬기 로터블레이드 끝단의 모습. 공기역학적 설계로 헬기 특유의 파쇄음을 상당부분 감소시키는데 성공했다.

 

테일 로터는 왜 필요할까?
헬기의 꼬리에 보면 작은 프로펠러가 수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테일 로터라고 부르는데 헬기의 메인로터는 한쪽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관성의 법칙에 의해 헬기는 로터가 회전하는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게 된다. 프로펠러 비행기의 경우 주 날개와 보조날개 및 꼬리날개의 방향타 등으로 이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만, 헬기는 수직방향으로 기체를 통제할 날개를 달기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테일 로터가 필요하다. 즉, 테일 로터는 헬기의 수평방향의 운동성을 제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테일 로터의 모습. ‘위험’문구가 보이시는가? 헬기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만큼 사고도 많이 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테일 로터 역시 헬기에겐 또 하나의 부담이다. 먼저 헬기의 동체 끝부분에 장착되기 때문에 인명사고의 위험도 있고, 또한 테일 로터가 손상될 경우 비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세심한 정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헬기 개발자들은 테일 로터가 필요 없는 헬기를 고안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두 종류의 헬기가 등장하게 된다. 첫 번째가 트윈로터 시스템이다. 보통 치누크 헬기 같은 대형의 수송용 헬기에 많이 쓰이는 방법인데, 두 개의 거대한 메인로터를 기체 앞뒤에 나누어 장착하고 이 두 개의 로터를 거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 기체를 통제하는 방법이다. 꽤 요고하적인 방법이지만 작은 기체에는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이중반전로터시스템이다. 즉, 메인로터 두 개를 샌드위치같이 겹친 다음, 이 두 개의 로터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함으로써 기체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주로 러시아제 헬기들이 이 시스템을 애용하는데, 비교적 작은 기체에도 적용이 가능하고, 중량대비 추력도 좋으며, 이로 인해 기존 헬기에 비해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장점들이 있다. 하지만 기체의 체고가 높아져 군용헬기의 경우 탐색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기계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신뢰성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거대한 트윈블레이드를 탑재한 치누크 헬기. 수송용에나 어울리는 시스템이다. 

 

 

러시아의 카모프 공격용헬기의 모습. 이중반전로터 덕분에 테일 로터가 없는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대신 기체 높이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졌다.

 

새로운 로터
요즘 새로운 로터로 주목받고 있는 로터방식은 틸트로터이다. 로터 블레이드의 회전축과 면을 직접 기울여 수직 상태에서는 헬리콥터처럼 수직이착륙을, 수평 상태에서는 고정익기처럼 고속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추진 방식인데, 미 공군 및 미 해병대가 사용 중인 V-22 오스프리가 대표적인 기체이다. 이 방식은 헬기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속도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통상적인 헬기는 공기역학적으로 시속 300km 이상을 내기 매우 어려운데, 틸트로터를 장착하면 최고속도가 시속 560Km까지 나온다. 웬만한 프로펠러 수송기와 맞먹는 속도이다. 다만 필연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이 요구되기 때문에 가격이 대폭 상승되고, 아직은 출력대비 탑재량 및 기체중량대비 탑재량 모두 헬리콥터보다는 떨어진다.

 

 

수직으로 세웠던 프로펠러를 수평으로 하기 직전의 틸트로터의 모습. 군에서 채용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헬기의 속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이 최근 등장했다. 미 시콜스키 (Sikorsky) 사가제작한 ‘S-97 레이더’는 이중반전로터에 후방 프로펠러를 결합해 수직 이착륙과 고속 추진력을 얻는 새로운 방식의 헬기이다. 특히 이 기체는 엔진 한 개로 이 모두를 구동시키는 방식인데, 테스트에서 시속 400Km 이상의 속도를 내기도 했다. S-97은 미 육군의 차세데 스카웃 헬기 선정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아직은 갈 길이 먼 S-97의 모습. 시스템이 복잡해 예정대로 미 육군에 채용될지는 의문이다. 가격이 두 배로 비싼 것은 덤.

 

이상으로 헬기 로터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전히 로터는 헬기에게 아킬레스건이다. 하지만 로터 특유의 비행특성 덕분에 헬기는 고정익항공기에게 필수적인 활주로도 필요 없고, 심지어 공중에서 정지비행을 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비록 60년이 넘게 기존의 로터방식이 헬기를 움직였지만, 얼마 전부터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새로운 형태의 로터는 이미 항공역사의 신세계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신세계는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글, 사진 : 이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