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사용된 무기 시리즈

③UN10대 무기

 

6·25전쟁에서 UN 회원국 중 무려 16개국이 한국을 위해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을 했다. 물론 절대적인 병력이나 물자는 미군의 지원이 있었으나, 나머지 참전국들도 나름 분투를 하며 공산군과 싸웠다. 오늘은 6·25전쟁 10대 무기 시리즈 UN군의 10대 무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➀ Lee-Enfield 소총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등 6·25 전쟁에 참전한 모든 영연방군이 사용한 보병용 소총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볼트액션 소총인 독일제 모우저 소총을 집중 분석해 만든 소총이다. 여타 다른 볼트액션소총에 비해 볼트레버의 왕복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반자동 소총인 미군의 M1소총 못지않게 빠른 연사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 등 공산군이 보유한 소련제 모신-나강 소총에 비해 신뢰성이나 편의성이 좋았기 때문에 영연방군들 사이에서의 Lee-Enfield 소총에 대한 평가는 아주 높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6·25전쟁까지 모든 영연방군의 주력 소총이었고, 1956년에 영국군을 중심으로 신형 돌격소총인 FAL L1A1소총으로 교체되었다.

 

6·25 당시 Lee-Enfield 소총을 재장전 중인 호주군 병사. 일반적인 볼트액션소총이 5연발인데 반해 Lee-Enfield 소총은 10연발이었기 때문에 화력 면에서는 훨씬 유리했다.

 

➁ M-26 퍼싱 전차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군은 독일 전차의 무서움을 통감했고, 특히 독일군의 6호 전차 ‘티이거’를 상대하기 위해 90mm전차포를 탑재한 M-26 퍼싱 전차를 유럽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 등장 시기가 너무 늦어 전장에서 활약 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6·25전쟁에서는 총 300대가 한반도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소련제 T-34를 상대로 압도적인 성능의 차이를 보여줬다. 다부동 전투에서는 북한군의 전차부대를 그야말로 전멸시켜버려, 이 이후 북한군이 더 이상 전차를 이용한 공세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에 개량을 거쳐 M46부터 M48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패튼’ 전차시리즈의 토대를 마련했다.

 

6·25전쟁 당시 이동 중인 M-26 퍼싱 전차의 귀중한 컬러 사진이다. 90mm 포의 위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M-26이 전선에 등장하자 북한군의 T-34/85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게 된다.

 

➂ 셔먼 M4A3E8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의 명실상부한 주력전차인 ‘셔먼’시리즈의 최종 진화형 이다. 보통 ‘이지에잇’이라고 불린다. 6·25전쟁에서 이지에잇 셔먼도 신형 철갑탄을 충분히 지급받았기에 북한군의 T-34/85와의 교전에서 먼저 보고 쏜다면 불리하지 않았고, 당시 퍼싱이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훌륭히 북한군을 저지했다. 그러나 셔먼의 고폭탄 화력 부족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90mm 포를 탑재한 M-26 퍼싱으로 점차 교체되었다. 특히 M4A3E8은 후에 대한민국 육군 기갑부대가 처음으로 보유한 진짜 전차가 된다.

 

북한군 진지를 향해 포격을 하는 M4A3E8. 우리 국군에 최초로 배치된 전차이기도 하다.

  

➃ 센추리온 전차
영국은 미국의 M26 퍼싱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티이거’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전차를 개발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센추리온 전차이다. 센추리온 역시 너무 등장시기가 늦어 본격적인 데뷔는 6·25전쟁에서였다. 6·25전쟁에서 투입된 센추리온은 20파운드 포를 사용하는 Mk.3 모델이었다. 센추리온이 한반도에 전개될 당시에는 북한군의 전차가 거의 남아나지 않아서 기갑전을 치를 기회는 없었다. 때문에 보병과의 전투를 주로 치르게 되었는데, 임진강 유역 전투에서는 대전차무기가 부족한 중공군이 해치에 기어올라 수류탄을 전차 안에 던져넣으려는 걸 건물을 들이받아 떼어낸 사례까지 있다. 영국군 전차답게 장갑을 중시해 상당한 중장갑을 두른 덕분에 비교적 속도가 느렸지만 M26 퍼싱을 능가하는 안정된 기동능력과 등판능력, 동등 이상의 화력에 명중률은 더 높다는 평을 받는 등 6·25전쟁 참전 전차 중 최강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6.26 전쟁에서 센추리온 전차는 당시로서는 최강의 전차였지만 이렇다 할 기갑전을 치루 지는 못 했다.

 

➄ M16 ‘Meat Chopper’
2차 대전에 사용된 M3 하프트랙 장갑차에 M2 대공기관총 4문을 탑재한 반궤도 장갑차. 정작 대전 후반기가 되면 미군이 적 전투기나 공격기에게 시달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공용보다는 대지상용, 특히 보병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6·25 전쟁에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응해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고기 다지기(meat chopper)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만큼 화망이 무서웠다는 얘기. 참고로 우리나라 역시 M2 중기관총 4문을 묶은 대공기관총을 ‘승공포’라는 이름으로 고정식, 혹은 트럭 탑재형으로 만들어 주로 공군에서 An-2기 저지 및 여기서 투하된 적 특수부대 저지용으로 운용하고 있다.

 

미군의 M16 ‘Meat Chopper’가 북한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된 희귀한 사진이다. 12.7mm 중기관총 4문이 동시에 발사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➅ 전함 미주리호
2차 대전 당시 미국 아이오와급 전함의 4번함인 미주리호는 마셜군도 작전을 시작으로, 유명한 레이테만 해전 등에 참가하고, 오키나와 공격에 참여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미주리호는, 1945년 9월 2일 이루어진 일본의 항복문서조인식 장소로 역사적 이름을 남긴 전함이 되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자 현역에서 활동하던 미주리호는 한국으로 급파되었고, 한반도 해역에 머물며, 16인치(400mm가 넘는다) 함포로 지상군을 지원했다. 당시 북한군과 공산 진영은 항공기를 볼 수 있는 공중폭격과 달리, 포탄만 날아오는 미 해군 전함의 함포사격을 매우 두려워했다. 특히 6·25 전쟁 최대의 철수 작전이었던, 흥남 철수 작전에서 미주리호 전함은 마지막까지 남아 강력한 포격으로 철수하는 유엔군과 피난민들을 지원했다. 이 후 1951년 3월까지 한국의 동해안에서 지속적인 포격임무를 수행했다. 보급을 위해 일본으로 돌아간 미주리호는 1952년 10월 말에 다시 동해로 돌아와 이른바 ‘코브라 작전’이러고 불리는 동해안의 공산군 보급루트 파괴 작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6·25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월남전에서부터 걸프전까지 활약하며 미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전함이 되었다.

 

6·25 전쟁에서 불을 뿜는 전함 미주리호. 16인치포의 막강한 위용은 공산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➆ H03S1 헬리콥터
미군은 6·25전쟁에서 헬리콥터를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해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8월2일, 부산에 도착한 H03S1 헬리콥터는 다음날 해병대의 ‘크레이브’ 준장을 태우고 정찰임무를 수행, 전선 지휘용으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 후 H03S1는 정찰 및 관측, 물자보급, 병력수송, 부상자 후송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고 그 평가도 아주 높았다. 이 때까지 과소평가 된 헬리콥터의 잠재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부상자의 긴급 후송에서 대활약하였으며, 의외로 적의 총격에도 강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6·25전쟁에서 헬리콥터의 가능성을 절감한 미군은 이 후 신형 헬리콥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전투부대 역시 헬기수송에 의한 신속전개부대로 개편되어 월남전에 투입된다.

 

6·25전쟁에서 해병대에 의해 최초 사용되기 시작한 H03S1. 미군으로 하여금 헬기의 군사적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➇ B-29 폭격기 
미 공군의 B-29 폭격기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실전에서 핵을 떨어뜨린 폭격기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전토를 초토화 시켰으며, 6·25 전쟁에서도 북한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폭격기이다. 특히 평양폭격에서 위력을 발휘했는데, 평양시 전 구역을 거의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렸다. 실제 미 공군은 6·25전쟁동안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비좁은 북한 지역에 퍼부었다. 이 때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북한은 전쟁 이후 엄청난 방공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제트전투기인 미그15가 등장하자 사정이 달라진다. 만주지역에서 출격한 미그15기들이 강력한 37mm 기관포로 집요하게 B-29를 공격했고, 결국 28대의 B-29를 상실한 이후에야 미 공군은 주간 폭격을 중단하고 야간 폭격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6·25 전쟁의 교훈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금까지 현역에 있는 B-52 폭격기이다.

 

 

북한에 대한 융단폭격을 실시중인 B-29 폭격기. 비록 미그15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략폭격이 북한에 심어준 공포감은 아직도 남아있다.  

 

➈ F4U 콜세어 전투기
2차 대전 당시의 미 해군항공대와 미 해병항공대 소속 최강의 전투기. 아니 2차 대전을 통틀어 최강의 전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도, 화력, 기동성 등이 고루 우수한 기종으로서 특히 고속성능이 뛰어났던 콜세어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에게 상상 그 이상의 지옥을 선사해줬으며, 1942년부터 1952년까지 모두 16개 모델, 1만 2,500대 이상이 생산되어 1957년까지 미 해군항공대와 미 해병항공대의 주요 야간전투기 및 전폭기로 활동하였다. 6·25전쟁에서는 주로 근접지원을 담당해 대활약하였으며, 그 터프함으로 인해 웬만한 대공사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초의 공산군 미그15를 격추한 것도 이 콜세어였고, 미 해병대의 유일한 야간 공격기로 공산군에게 불벼락을 선사했다.

 

6·25전쟁 당시 F4U-5N에 탑승한 Lt. Guy Bordelon는 야크기에 맞서 활약하며 6·25전쟁에서 유일한 프로펠러기 에이스이자 유일한 해군 에이스였다. 그리고 콜세어는 미그15까지 격추시켰다. 한마디로 시대를 역 주행했던 전투기.

 

➉ F-86 세이버 전투기
나치독일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미 공군의 제트전투기이다. 기존의 프로펠러 전투기와는 전혀 다른 특유의 제트엔진 소리 때문에 쌕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나치의 기술을 가져간 소련이 배다른 형제인 미그15를 6·25전쟁에 투입하자 이른바 ‘미그 쇼크’가 일어났고, 미 공군은 부랴부랴 당시로서는 최신형 전투기였던 F-86 ‘세이버’를 한반도로 급파하게 된다. F-86의 초기형은 미그15에 비해 일부 성능에서 열세를 보였지만, 후기형인 F-86F형에 이르러서야 전반적인 성능에서 미그15를 압도하였다. 특히 조종사의 질적 차이가 결정적이어서 F-86은 대부분 미그15와의 대결에서 항상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결국 F-86은 6·25 전쟁에서 미그15를 상대로 약 10:1이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거두어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전후 세계 각지에도 수출되었다. 전쟁 후 우리공군도 F-86으로 무장했고, 90년도 중반까지 일부 예비기체로 남아있기도 했다.

 

한반도 상공에서 편대비행중인 6·25 당시의 미 공군소속 F-86 세이버.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간 대결에서 미그15를 압도하였다.

 

6·25 전쟁에 사용된 무기시리즈

① 한국군 10대무기 보러가기

② 북한군 10대무기 보러가기

 

 

 

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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