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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동향/국내

제1회 서해수호의 날 특별기획 - 천안함 피격 ‘스모킹 건’ 발견한 권영대 대령과 수색팀

"천안함 '스모킹 건' 발견, 전우들의 영혼이 도운 덕분"

제1회 서해수호의 날 특별기획 - 천안함 피격 ‘스모킹 건’ 발견한 권영대 대령과 수색팀

 

미궁 속에 빠질 뻔했던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3인방, 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다

 

지난 17일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 27전대 전대장실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전대장 권영대 대령을 찾아온 이들은 작전사 6전단 헌병대 천종필 원사와 육군중앙수사단 3지구수사대 채종찬 상사. 함정들을 이끄는 전대장과 헌병 수사관들의 만남. 언뜻 보기엔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다. 권 대령의 소개를 들어보자.
"2010년 5월 15일.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스모킹 건’(결정적인 증거)이 나오던 그 날 저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전우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 증거물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죠."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중령 계급으로 해군특수전여단 1특전대대장을 맡고 있었던 권 대령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중수색을 지휘했었다. 당시 천 원사(당시 상사)는 국방부 조사본부 합동수사단 소속 현장수사관으로 수사를 도왔고 육군수사단 광역수사대 3지구수사대 수사관이었던 채 상사(당시 중사)는 과학수사를 돕기 위해 백령도 앞바다에 파견을 나왔었다. 2010년 망망대해를 뒤지며 전우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제는 각자 한 단계씩 진급해 자신의 영역에서 입지를 굳게 다진 베테랑 군인들은 국방일보와 해군본부의 주선으로 천안함 피격사건 6주기를 앞두고 재회했다. 

 

2010년 5월 15일 천안함 피격의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인 어뢰 추진체 발견 현장을 지휘했던 권영대(가운데) 대령과 당시 수색에 참가했던 천종필(왼쪽) 원사, 채종찬(오른쪽) 상사가 인천해역방어사령부를 거닐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경원 기자

 

 


 

“전우의 영혼이 증거물을 올려주는 느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스모킹 건’, 즉 북한제 어뢰(CHT-02D) 추진체를 찾았던 순간의 일이었다. “그물을 올리던 선원이 ‘또 발전기 같은 게 올라왔네’라고 말했어요. 가만히 살펴보니 발전기와는 다른 물체였죠. 예전 미국에서 폭발물처리반(EOD) 교육을 받을 때 봤던 어뢰 특유의 양날 스크루였습니다. 그때 직감했습니다. ‘찾았구나.’

세 사람 모두 추진체를 발견하던 그날 묘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수색팀을 도왔다는 것이다. 다시 세 사람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날 첫 작업에서 (추진체가) 바로 올라왔었죠.” (채 상사)

“맞아요. 그날따라 쌍끌이 어선의 그물 내리는 순서를 바꿨는데 그게 천운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들의 영혼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증거물을 올려주는 느낌이었어요.” (권 대령)

“저도 그랬어요. 그날따라 날씨도 좋고 기분도 무척 좋더라고요.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열심히 찾기도 했지만 전사한 후배들이 도와줬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천 원사)

 

권영대(오른쪽) 대령과 천종필(가운데) 원사, 채종찬(왼쪽) 상사가 천안함 피격 증거물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경원 기자

 


 

“철통 보안을 유지하라”…숨 막히는 이송 순간


 


추진체를 끌어올렸지만 난관은 계속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안 유지. 수색팀은 인양과 동시에 “이것은 분명히 어뢰다”라는 확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칫 허위보고가 될 수도 있고 기밀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색팀은 발견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권 대령은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금세 ‘이제 어쩌지’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지휘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보안 유지가 중요하다”며 “아직 이것이 북한의 어뢰라고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가 새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히 주변에 있던 모포로 추진체를 덮었다”고 말했다. 천 원사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작전사령부에 헬기 지원 요청을 해야 하는데 ‘찾았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했다”고 전했다. 캠코더로 인양부터 이송까지 모든 순간을 기록했던 채 상사는 “추진체를 평택항에 위치한 합동조사본부로 가져가는 과정에서도 철통 보안을 유지했다”며 “혹시라도 운전병이 눈치챌까봐 합동조사본부에서 수사관이 직접 차를 끌고 와 함께 추진체를 옮겼다”고 떠올렸다.

  


 

세 사람이 밝힌 수색 작업 에피소드는

 



 

채 상사는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밝혔다. “발견된 추진 모터가 80㎏이 넘었거든요. 옮기느라 선원들과 장병들이 끙끙거렸는데 합동조사본부에서 나온 수사관은 증거가 나온 사실이 얼마나 기뻤는지 혼자 그 무거운 모터를 번쩍 들어서 차로 옮기더라고요.

천 원사도 수색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하마터면 추진체에서 분리된 모터를 방치할 뻔했다는 얘기다. “인양 당시 모터는 따로 떨어져 나왔어요. 저는 스크루를 유심히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판장이 ‘같이 딸려 올라오다 뚝 떨어진 것이 있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때 확인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죠.”

권 대령은 무엇보다 탐색 작업에 동참한 민간 어선 선원들의 고생이 컸다고 밝혔다. 무거운 쇳덩이를 끌어올리는 고된 작업인데도 묵묵히 도와준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에 여덟 번이나 그물을 끌어올린 날이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차마 선장에게 말을 꺼내진 못하고 저에게 슬쩍 와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감독관님, 너무 힘듭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그러면서도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바다를 지키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이들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다시 한 번 안보의식과 군인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천 원사는 “바다를 지키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힘주어 말한 뒤 “천안함 피격은 우리에게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 천안함 피격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영해를 지키는 해군 장병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채 상사는 “천안함 피격의 아픔을 잊지 말고 육·해·공군, 해병대 모든 장병들이 안보의식과 가치관을 굳건히 해 조국 방위에 힘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의 말을 묵묵히 듣던 권 대령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군인의 임무는 단순합니다.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해는 안보와 직결된 한반도의 화약고입니다. 서해를 지키는 게 우리의 사명이죠. 저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바다에 나서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천안함과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정신무장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5년여 만에 만난 전우들, 서로의 얼굴이 닮은 이유는 

 



 

천안함 피격에 대한 긴 대화가 끝난 뒤에도 5년여 만에 재회한 세 사람은 덕담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육군, 그것도 헌병이라 배를 탈 일이 없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배를 탔는데 뱃멀미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배가 달릴 땐 괜찮은데 바다 위에 멈춰서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사실 뱃멀미보다 더 힘든 것은 땅멀미였죠.(웃음)” (채 상사)

그래도 수색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어요. 멀미 때문에 토하고 와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도 맡은 일은 다 하던데요. 천 원사는 힘든 작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늘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줘서 고마웠어요.” (권 대령)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갑자기 힘이 쫙 빠지더라고요. 그나저나 전대장님이 인방사에 오시고 한 달 만에 제가 포항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제대로 식사도 못했네요. 그게 늘 아쉬웠습니다.” (천 원사)

그래요. 우리 이제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지냅시다. 시간 맞춰서 함께 식사도 해요.” (권 대령)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이어지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대화를 마치고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닮아 보이는 것은 아마 유난히 힘들었던 2010년을 함께 헤쳐나간 전우애 때문으로 보였다. 또 미궁 속에 빠질 뻔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천안함 장병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