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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항공무기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미국의 전략폭격기 삼총사

미국의 전략폭격기 삼총사

 

지난 16, 북한은 또 한 번 핵실험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북한은 이번에 당당하게도 수소폭탄의 실험 성공을 공표했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진짜 북한이 수폭실험을 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결과는 수폭 바로 직전단계의 실험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994년 이후, 3~4년을 주기로 꾸준히 핵실험을 실시해왔으며, 현재까지 모두 네 번의 핵실험을 실시해 온 바 있다이렇게 한반도에 다시 한 번 핵 위기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고, 특히 한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은 전격적으로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초계 비행시키며 북한에 대한 경고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한반도 핵우산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미군의 전략폭격기들은 그 강한 상징성으로 매우 효과적인 대북경고수단으로 간주되어져왔다. 오늘은 한반도 핵우산의 핵심인 미군의 전략폭격기 삼총사에 대해 알아보자.

 

전략폭격기 삼총사가 한데 모여 비행하고 있다. 이들은 미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핵우산의 한 축으로서 유사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B-52

 

2차 대전 후반, 세계 최초의 실용화 제트전투기인 독일의 Me262를 경험한 미군은 기존의 터보프롭 엔진 폭격기의 한계성을 느끼고, 강력한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전략폭격기를 구상한다. 이를 바탕으로 8개의 제트엔진을 장착한 B-52가 탄생하게 된다. 1952년에 처녀비행에 성공해 B-52라 명명 되었고, 1955년부터 실전 배치되었으며, 1962년에 생산 종료되었다. 실전데뷔는 베트남전쟁에서 했는데, 220기의 B-52가 동원되어 3735,00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참고로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독일에 떨군 폭탄 량은 170만 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여러 차례 B-52카드를 써서 북베트남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다. 하지만 전쟁 중에 30대의 B-52가 격추되어 그 약점도 드러냈다. 이후 미 공군은 B-52를 순항미사일 발사플랫폼으로 사용하면서, B-52는 전략과 전술폭격 둘 다를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에 B-1이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그 엄청난 가격으로 생산이 미루어졌고, 결국 B-52는 수명 연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미 공군은 폭격기의 심리적 효과를 항상 강조해왔고, 1991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그 사례를 톡톡히 보여주었다. 60여대의 B-52는 무려 1,624회를 출격하며 25,700톤의 폭탄을 이라크군 진지위에 흩뿌렸고, 공포에 질린 이라크군 병사들은 다국적군이 진격해오자 너도나도 손에 손잡고(진짜 Hand in hand 였다!) 항복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만세! 이제 B-52를 안 봐도 되는구나!’

 

21세기에 들어서는 현역에서 물러날 듯 했던 B-52는 다시 일선의 부름을 받았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이 아프간으로 파견된 것이다. 특히 B-52 폭격기는 적의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2,000파운드급 벙커버스터를 최대 24발까지 탑재할 수 있었고,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F/A-18들과는 달리 오랜 시간 체공하면서 지상의 특수부대가 지정한 목표에 대하여 정밀타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아프간 전쟁초기에 투하된 전체 폭탄 가운데 72%가 겨우 18대의 전략폭격기(B-52 10대와 B-1 8)에서 투하되었다는 사실은 B-52가 여전히 매우 효과적인 전략·전술폭격 수단임을 증명한다. 미군은 여전히 B-52를 애용하고 있고 최소한 2040년까지는 사용하길 원하고 있다. B-52B-1을 대체할 차세대 폭격기 B-2는 그 어마어마한 기체가격으로 21대만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 공군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무인스텔스폭격기는 아직도 실전배치까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B-52만큼 효율적이면서 운용비용이 저렴한 기체도 드물다. 노인 학대(?)의 진정한 예이다.

 

세계 최초의 실용화 제트전투기인 독일의 Me262. 이 전투기의 등장으로 미군의 폭격기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진다.

 

B-52의 엄청난 폭장량을 보여주는 사진. B-52 1개편대로 웬만한 도시 하나를 없애버리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에게 뿌려진 삐라이다. B-52의 폭격사진 위에 아랍어로 항복을 권유하는 문구가 있다. 내용은 항복하지 않으면 오늘 밤 그대들의 머리 위로 이 녀석이 찾아 가리

 

B-1

 

애초에 미 공군은 B-52의 후계기로 XB-70 발키리 폭격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적국(소련)의 영토까지 고도 25,000미터의 초고공을 마하3이라는 초고속으로 날아가 22톤의 폭탄을 퍼붓는다는, 외계인을 납치해 고문하지 않는 이상 얻기 힘든 기술상의 스펙을 요구한 이 폭격기는 결국 그 기술적, 비용적 한계로 인해 취소되었다. 미 공군은 발상을 전환해서 초저공을 마하로 날아가 신속히 폭격을 하고 돌아오는 새로운 개념의 폭격기를 고안했고, 이것이 바로 B-1 폭격기였다.

 

B-52의 후계기로 만들어진 XB-70 발키리. 하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시제품 두 대가 만들어진 후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B-1은 지상 60m 초저공을 마하로 날아가기 위해 가변익 날개를 채택하였고, 세계 최초의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 하였다. 또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스텔스 설계가 적용되어 저공에서 여간해서는 적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 무장은 실내외에 약 30톤을 장착할 수 있어서 기존 B-52의 두 배에 가까웠다. 실로 가공할만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가격이었다. 한 대에 무려 1억 달러(1970년대 후반 기준)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던 것 이다.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B-1 계획을 취소하려 했으나, 미 공군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겨우 시제품 3대만 만들어지고 끝나나 싶었다. 하지만 80년대가 되자 공화당정권이 들어섰고, 레이건 대통령은 그 어떤 역대 정권보다도 강한 미국의 힘을 표방하며 군사력으로 소련을 압도하려 했다. 특히 당시 가열 차게 추진하던 스텔스 폭격기는 충분히 소련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있는 상태였으나, 그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이 19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은 레이건행정부의 깊은 고민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해 B-52와 새로운 스텔스 폭격기 사이의 간극을 메울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B-1 폭격기가 부활하게 되었다. 기존의 시제품을 개량한 B-1B 100대의 생산이 통과되었고, ‘죽음의 백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적에게 공포를 안겨주기 충분한 성능으로 돌아왔다. 1991년 부시 대통령의 전술핵 포기 선언으로 B-1B는 현재 주로 재래식 폭격임무에 임무의 중점을 두고 있다. B-1B는 통상형 폭탄 이외에 클러스터폭탄, JDAM, 벙커버스터 등 정밀유도폭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B-1B 최초의 임무는 이라크를 공습하는 사막의 여우 작전이었다. 후에는 코소보 항공전과 아프간 전쟁에도 투입되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폭격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답게 전장에서의 공포감은 절대적이다.

 

Mk.82 통상폭탄을 투하하는 B-1B의 모습. 생산계획이 취소되었다 부활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배치되었지만, 폭격기로서의 능력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B-2

 

앞서 언급한대로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고등기술폭격기(ATB : Advanced Technology Bomber)계획을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B-2 스텔스폭격기 이다. 일단 B-2 스텔스폭격기는 그 외형자체가 매우 특이하다. 동체와 날개의 구분이 매우 모호한 전익기(全翼機)이기 때문이다. 꼬리날개도 없는 이 기체는 그야말로 날개가 날아가는 형태이다. 전익기는 이론적으로는 매우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중을 날개 전반에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고, 동체나 꼬리날개가 없어 가벼워지며, 적재능력 또한 좋아진다. 하지만 수직 꼬리날개 등이 없어 항공기를 조작하는데 매우 까다롭다. 과거 나치독일군도 전익기를 전쟁 후반 생산하려 했고, 미 공군 역시 전익기를 연구했으나 그 기술적 한계로 인해 개발을 멈춘 상태였다.

 

미국 Northrop사에 보관되어있는 나치독일군의 비밀병기 Ho 2-29의 모습. 전형적인 전익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로 모로 B-2와 외형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자 컴퓨터로 기체를 정밀하게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고, B-2 스텔스폭격기의 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B-2 스텔스폭격기는 제조 과정도 매우 독특한데, 보통 항공기는 기본 골조 위에 장비를 장착하고 마지막에 외피를 덮는 방식으로 제작하지만, B-2 스텔스폭격기는 스텔스성능을 높이기 위해 외피를 먼저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 논 후 내부를 채우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쉽게 말해 껍데기를 먼저 만들고, 알맹이를 채워가는 방식이다. 또한 스텔스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항공기 동체에 수직면은 존재하지 않으며(수직면은 레이더파를 수직으로 반사해 탐지되기 쉬워진다.), 레이더 반사 면적이 큰 날개 후미는 톱니바퀴모양으로 만들어 레이더파의 난반사를 꾀했으며, 엔진에서 발산되는 열을 지상에서 탐지하지 못 하도록 엔진을 동체 상부에 올려놓았다. 결정적으로 무장을 전부 동체 안에다 수납시켜 스텔스성능을 극대화 시켰다. 예를 들어 제한적인 스텔스 기능이 있는 B-1B의 레이더 반사 면적이 1인데 반해, B-2 스텔스폭격기는 그 면적이 0.1. , 비둘기 한 마리 정도의 반사면적을 자랑한다. 게다가 폭장능력은 16톤으로 B-52와 큰 차이가 없다. , 항속거리가 6,000마일에 이르러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재급유 없이 40시간을 비행할 수 있다.

 

B-2의 제조모습. 외형이 먼저 만들어 진 후 내용물을 채워 넣는 독특한 방식이다.

 

미 공군의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정밀무기로 무장한 2대의 B-2기는 스텔스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재래식 항공기 75대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132명의 공군요원의 몫을 단 4명의 승무원이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승무원은 보통 2명이 탑승하는데,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커맨더나 인스트럭터가 1명 더 탑승할 수 있다. 조종사는 간단한 3개의 스위치 조작을 통하여 이륙 모드, 전투 모드, 착륙 모드에 부합되는 비행과 임무 장비의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초 미 공군은 133대의 B-2 스텔스폭격기를 배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자 상황이 급변했고, 세계적인 군축분위기에서 기체의 대당 가격이 5억 달러가 넘는 B-2 스텔스폭격기를 133대나 배치할 수는 없었다. 결국 21대만이 생산되고 중단되었다.

B-2 폭격기 최초의 실전참가는 19993월 나토의 유고 연방 공습작전인 코소보전이다. 이 작전에서 총 6대의 B-2 스텔스폭격기가 45회의 출격수를 기록하며 중요한 목표물에 656여 발의 스마트 폭탄을 투하하였다. 이후 B-2 스텔스폭격기는 2001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시작된 대테러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참가했다. B-2 스텔스폭격기는 107일 첫 공습을 시작으로 3일 동안 총 6회의 공습 임무를 수행했다. 개전 초기 적의 중요한 표적이 제거 된 뒤에는,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부의 뒤를 쫓아 이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3년 제2차 걸프전인 이라크 자유작전에서는 총 4기의 B-2 스텔스폭격기가 참가했고, 583여 발의 JDAM이 공습에 사용되었다. 특히 미국이 가능성 있는 목표물(Target of Opportunity)이라고 부른, 사담 후세인과 그의 추종세력에 대한 공습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에는 리비아 공습작전인 오딧세이의 새벽(Odyssey Dawn)’에도 참가했다. 작전 첫날 3대의 B-2 스텔스폭격기는 45발의 JDAM을 나눠 싣고, 지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8,300Km를 날아 리비아에 공습을 감행했다. 공습 목표는 리비아에 위치한 가르다비야 민군겸용공항의 군사 시설물로, 미 해군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함께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파괴했다. 이 임무에 투입된 B-2 스텔스폭격기들은 25시간을 넘게 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4차례의 공중급유를 받았다. 이른바 본토 출퇴근폭격기의 전설이다.

 

B-2 폭격기의 모습이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전략폭격기로서 폭격기의 정점에 있는 항공기이다.

 

이상으로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삼총사에 대해 알아봤다.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이미 북한의 김정은은 B-2 스텔스폭격기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방공망으로서는 탐지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론 한·미 연합군의 전력을 감당하기 힘들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이나 SLBM, 핵무기 등 비대칭 무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이 전략폭격기 삼총사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순환 배치되어 언제든 유사시 3시간 내에 한반도에 출격이 가능하다. 이미 북한의 핵실험은 실행되었고, 이제는 이에 대한 한·미 동맹군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줄 차례다. 그러므로 이번 B-52 폭격기의 초계 비행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B-52 폭격기의 초계 비행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위기상황마다 한·미 동맹군은 강력하고도 결연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의 오판을 사전에 차단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