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겨울은 눈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아열대기후에 가까워지는 우리나라의 사정 덕분이다. 보통 비가 오면 우산을 들면 되지만, 양손을 모두 이용해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들은 우산을 사용할 수 없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싸우거나 아니면 비를 어느 정도 막아주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군인들은 우의란 것이 필요하다. 우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 많이 쓰이지 않지만, 군인들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우의 중에 군용 우의가 단연 실용적인 면에서 으뜸이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위병근무자들도 입는 군용 우의.
이정도 팬션 감각이 있는 우의는 민간 시장에서도 찾기 힘들다.
➀ 근세부터 1차 대전 까지
근세라 하면 대충 19세기까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 때 까지 군용우의 그런 것 없었다. 통일된 유니폼을 지급하면 다행인 군대도 적지 않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대로 맞으며 전투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장교의 경우 색코트(Sack coat)라는 옷을 상의에 덧대 입었다. 사실 이 옷은 우천 시 사용하는 옷이라기보다 방한용으로 어울리는 옷 이었다. 하지만 우천 시에도 비교적 요긴하게 쓰였으며, 색코트가 없는 일반 병사들은 장교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색코트를 잘 보면 판초우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비가 와서 물을 머금으면 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19세기 미군 기병대 장교가 색코트(Sack Coat)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판초우의의 앞이 벌어진 형태이다. 방수 기능은 없었지만 비오는 날 장교들은 요긴하게 사용했다.
1차 대전 역시 대부분 국가의 일반 병사들은 별도로 우의를 지급받지 못 했다. 1차 대전 때 우천 시 사진을 보면, 병사들이 별다른 우의 없이 텐트조각 등을 이용해 진창에서 비를 피하는 힘겨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장교들은 달랐다. 특히 영국군은 그 유명한 버○리사에서 장교용 우의를 제작해 보급했고, 이 형태의 코트가 오늘날 버○리코트로 굳어졌다. 버○리코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오른쪽 어깨에 소총 견착용 천이 덧대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오늘날의 일반 코트에서도 그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우천중에 부상병을 옮기는 1차 대전 당시 영국군 병사들.
진창으로 변한 길을 힘겹게 가고 있다. 이들에게 비를 막을 우의는 없었다.
➁ 2차 대전과 6.25 전쟁 까지
2차 대전부터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우의를 지급받았다. 특히 미군은 페루 전통의상인 판초(또는 폰초-Poncho)를 응용한 우의를 개발했고, 오늘날 군용우의를 판초우의라고 부르는 시초가 되었다. 판초의 뛰어난 보온성에 주목한 미군은 판초를 방수천으로 제작했고, 방수천으로 제작된 판초우의는 신체뿐만 아니라 장비 전체를 비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판초형태의 우의는 미군뿐만 아니라 독일군도 사용했다. 하지만 독일군 하면 역시 카리스마 있는 형태의 우의가 인상적이다. 독일 해군 U보트 승무원들은 우천 시 고무코팅이 된 우의를 입었으며, 부대 간의 긴급 연락을 맞은 오토바이 병은 그 독특하고 멋진 모습으로 많은 밀리터리 팬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 후기가 되어 우의의 지급이 여의치 않아지자 독일군은 이른바 ‘스모크’로 불리는 우의 겸 방한복을 사용했다. 이 스모크는 원래 영국군 공수부대가 사용한 것을 독일군이 모방하여 병사들에게 지급한 것이다.
이게 바로 판초다. 페루 전통의상인데, 보통 마카로니웨스턴에서 자주 보이는 옷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무법자 시리즈 내내 이걸 입고 나온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판초우의.
이 병사의 경우 장비까지 우의로 보호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오토바이 연락병의 모습. 고무 코팅된 우의를 입고 있다.
전천후로 활약해야 하는 오토바이 연락병들에게 이런 특수 우의는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이른바 ‘스모크’를 군복 위에 입은 독일군 친위대원의 모습.
영국군에서 유래한 스모크는 전쟁 후반 물자가 부족해진 독일군에게 귀중한 방한, 방수 장비였다.
6·25전쟁에서 대부분 국가의 병사들은 미군타입의 판초우의를 입었다. 특히 판초우의는 3장을 합쳐서 간단한 텐트를 만들 수 있었지만, 간이 형태의 텐트라 세찬비가 들이치면 속수무책이었다. 유독 한국군의 우의 착용사진을 찾기가 힘든데, 아마도 한국군의 경우 최전선까지 사진촬영을 할 군 선전반이 가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미군용 우의를 지급받아 싸우던 한국군이 그리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대부분 우의를 지급받았다고 말한다. 아마 한국군 특유(?)의 성격에 웬만큼 폭우가 아닌 이상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우의를 입고 싸우기 보다는 그냥 비를 맞으며 싸우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장진호전투의 미군 사진을 보면 많은 병사들이 판초우의를 방한용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있는 미군의 모습들도 하나같이 판초우의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6·25 당시 캐나다군 막사의 모습. 텐트 위에 판초우의가 덮여있다.
6.25 당시 우의 및 판초우의를 입고 행군중인 미군.
한국의 혹독한 겨울날씨를 알지 못 했던 이들에게 우의는 요긴한 방한수단이었다.
➂ 월남전에서 현대전까지
월남전에서 역시 판초우의가 쓰였다. 다만 열대의 더운 환경에서 통풍성이 0점인 판초우의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우천 시 행군을 하거나 후방에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판초우의를 입지 않았고, 월남전에서도 역시 한국군은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우의 없이 전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월남전 이후 판초우의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바로 위장 패턴의 판초우의가 지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월남전 당시 작전에 투입된 미군병사들의 모습.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우의를 입은 병사는 보이지 않는다.
후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미군병사의 모습.
세찬 비속에 판초우의 하나로 버티고 있다.
작전지역에서 벗어나 휴식할 때면 비속에서 판초우의를 입곤 했지만
그래도 처량한 모습은 어쩔 수 없다.
80년대 후반부터 위장복이 서방세계 전군에 지급되고, 우리나라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위장 패턴의 판초우의가 대세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판초우의는 기본 보급품으로 전 병사에게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미군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방수와 방한 기능이 우수하면서도 땀이 배출될 수 있는 고기능성 섬유를 개발해 이를 군복 자체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어텍스 섬유이다. 원래 미국 뒤퐁의 W.L.고어가 발명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빗물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나, 안쪽에서의 땀이나 증기는 밖으로 내보내게 된 새로운 방수가공품으로, 천에다 이 막을 붙임으로써 종래의 방수 가공한 옷을 입었을 때 생기는 '더운 습기'의 문제를 해소하게 되었다. 비결은 구멍의 크기에 있는데, 1만분의 2mm의 구멍은 최소 1mm의 빗방울을 통하지 못하게 하고 1,000만분의 4mm의 수증기는 통과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 미군 특수부대를 비롯해 서방세계 대부분의 특수부대가 이러한 특수섬유를 이용한 군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우리나군도 일부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군은 전 전투병과에 고기능성 군복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헬기에서 내리는 현대의 미군 특수전 요원. 고기능성 고어텍스 군복을 입고 있다.
이 한 벌로 별도의 장비가 필요 없이 방수, 방한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 판초우의를 입고 근무를 나가던 기억은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갔다 온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험이며, 사실 비 올 때 판초우의만큼 실용적인 물건은 없다. 밤샘 매복 훈련 할 때도 판초우의 하나로 밤이슬을 피했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판초우의 하나만 뒤집어쓰면 거짓말 좀 보테 오리털 파카만큼 따뜻했다. 야전취침 시에도 A형 텐트 위에 두 장만 덮으면 훨씬 따뜻했던 기억도 난다. 이 추억을 잊지 못해 많은 군필 사나이들이 제대 후 판초우의를 하나 사봤지만, 그 때 군 시절만큼 감흥이 없는 것은 왜일까? 고생스러워도 나라를 직접 수호한다는 자부심의 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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