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일생 <13>공군 전투기 폭격 유도



항공기로 육군의 전투를 지원하는 공군의 근접항공지원(CAS) 작전은 생각보다 어려운 임무다. 

6·25전쟁 기간 중 미 공군이 근접항공지원 작전을 수행하면서 보인 오폭률은 10%가 넘었다. 열 번 중 한 번은 적군 대신 아군이나 민간인을 실수로 오인, 공격한 것이다. 특히 개전 초기 미 공군의 오폭은 심각할 정도여서 한국 육군의 연대장 중에서도 미군 오폭에 부상한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오폭을 방지하고 육군과 공군의 합동 작전을 유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군은 다양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했다. 우선 육군부대에 공군 소속의 전방항공통제관(FAC)을 파견, 육군과 공군의 연락 임무를 담당케 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방항공통제기에 공중통제관을 탑승시켜 공중에서 다른 전투기의 지상 폭격을 유도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 전방항공통제기는 다름 아닌 2인승 T- 6 연습기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T- 6의 후기형에 장거리 무전기를 탑재한 것이 눈에 띈다. 이를 LT - 6G 모스키토(Mosquito)라고 부르며 전방항공통제기로 가장 많이 운용했다. 

모스키토는 전선 지역 상공을 비행하다가 적을 발견하면 이를 육군과 공군에 통보했다. 뒤이어 적을 공격하기 위해 나타나는 아군 전투기에게 무전으로 적 지상군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는 것도 모스키토의 임무였다. 혹은 흰색 연기가 나는 로켓을 적의 위치로 발사하는 등 시각적 방법으로 전투기에 공격 위치를 통보하기도 했다. 아군 전투기의 폭격 후 적의 피해를 확인하는 것도 모스키토의 몫이었다. 

6·25전쟁 중 전방항공통제기를 운용한 부대는 미 공군 소속이었지만 이곳에 한국 공군 조종사들도 다수 근무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쟁 기간 중 미 5공군 6147전술항공통제대대에 파견 근무한 위상규(魏祥奎·78)예비역 중령은 모스키토를 타고 100회 출격하는 등 큰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같이 근무한 미군 조종사들이 한국의 생활 풍습과 지리 환경을 잘 몰라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미군 조종사들이 산에 있는 문중 무덤을 적의 곡사포 진지로 착각할 때가 많아 오해를 풀어 준 일도 많다”고 증언했다. 미군들이 한국식 무덤 형태를 몰라 무덤을 특수한 형태의 군사 진지로 오해한 것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L- 4·5·6 같은 연락기들이 원래 전방항공통제기로 운용하기 위해 만든 기종이다. 하지만 당시의 L 계열 연락기들은 무전기조차 탑재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성능이 빈약했다. 개전 초기 미 공군은 L- 5 연락기를 운용해 보았으나 전방항공통제기로서 임무 수행 능력은 그리 신통치 못했다. 미 조종사들이 한국 지리를 잘 몰랐던 이유와 함께 바로 아군 전투기의 근접항공지원을 유도한 L- 5 연락기의 빈약한 성능이 오폭의 큰 원인으로 꼽히곤 했다. 

결국 미 공군은 L- 5를 포기하고 무전기도 탑재 가능하면서 속도도 빠르고 운용이 간편한 T- 6 연습기를 전방항공통제기로 최종 선택했다. 운용 결과 T- 6을 개조한 LT- 6G 모스키토는 전선 부근에 급히 조성한 짧고 거친 활주로에서도 쉽게 이륙할 수 있었고 정비도 간편했기 때문에 전방항공기통제기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종전 후 미 공군 6147전술항공통제대대 소속의 모스키토는 1955년 한국 공군에 제공, 연습기로 운용되는 등 한국과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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