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T-6 연습기
국민들 애국심과 소망 담겨

 

지난회에 소개한 것처럼 T- 6 연습기의 도입은 천신만고 끝에 이뤄졌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국민의 성금으로 도입한 항공기인 만큼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T- 6을 특별히 건국기(建國機)라고 명명했다.
1950년 3월부터 계약에 따라 T- 6 연습기가 1대씩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두 달 뒤인 5월 열 번째 T- 6이 한국에 도착, 도입이 완료됐다. 같은 달 14일 개최된 T- 6 도입식에서 이대통령은 “장비만으로는 우리 공군이 아직 열세이지만 국민의 애국심이 뭉쳐진 건국기를 보유한 만큼 정신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공군보다 우리 공군이 더 우세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만큼 T- 6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무기 체계였던 것이다.
T- 6은 비록 연습기였지만 기관총 2정을 탑재할 수 있고 재질도 금속으로 돼 있어 무장도 없고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L- 4/5 연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이 우수한 항공기였다. 또 이착륙시 사용하는 랜딩 기어도 L- 4/5와 달리 고정식이 아닌 접철식이어서 공중에서 보다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한때 AT- 6으로도 불리던 T- 6은 원래 미국 노스아메리칸(North American)사가 1935년에 개발한 항공기다. 미국에서는 연습 혹은 훈련기로만 사용돼 무장이 장착된 사례가 없으나 외국으로 수출된 T- 6은 기관총 2~3정을 장착한 경우가 많다.
T- 6은 최초 개발 이후 여러 차례 개량된 후 1938년부터 50년대 초반까지 1만7000대가 생산됐다. 40, 50년대 미국의 연습기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기종이 바로 T- 6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 조종사가 T- 6으로 비행훈련을 했기 때문에 T- 6은 항공기 발달 사상 매우 중요한 항공기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또 중고 항공기를 수리해 직접 비행하기를 즐기는 미국의 고전 항공기 마니아들의 구입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지금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T- 6을 도입한 지 한 달 만인 50년 6월 6·25전쟁이 발발했다. L-4/5 연락기는 폭탄을 손으로 던져야 했지만 T- 6은 날개에 국산 폭탄 8~10발을 탑재할 수 있어 작전 수행이 좀 더 용이했다. 하지만 전투기가 아닌 연습기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직후 50년 7월 급히 새로 도입된 F- 51 무스탕 전투기에 밀려 T- 6은 전투 임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무스탕 도입 이후 T- 6은 다시 연습기로 임무로 전환돼 62년 12월1일 퇴역할 때까지 총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했다. T- 6은 실전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공군 발전에 대한 국가 최고 지도부의 의지와 국민들의 소망이 서려 있는 항공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그 어떤 항공기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T- 6은 현재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 야외 항공기 전시장을 비롯, 서울 현충원 등지에 실제 기체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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