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일생 <11>T-6 연습기 구입 사연



건군 초기 우리 군이 보유한 L - 4·5 연락기로는 공중전이나 근접 항공 지원 등 본격적인 전투 임무 수행이 불가능했다. 이때문에 군은 물론 이승만(李承晩)대통령 등 국가 수뇌부도 새로운 항공기 도입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전투기 등 추가적 항공기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미국은 엄청난 양의 잉여 무기를 갖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등에는 단돈 1달러에 전투기를 매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한국에만은 무기 제공에 극히 인색했다. 

1949년 초 미국을 방문한 조병옥(趙炳玉)특사는 전투기 75대, 폭격기 12대, 연습·정찰기 30대, 수송기 5대를 한국에 원조해 주도록 미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대통령은 49년 2월 한국을 방문한 케네스 로열 미국 육군장관에게 다시 항공기 원조를 요청했다. 이때도 미국 측은 “설사 항공기를 원조해도 한국은 운용비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대통령은 이미 북한이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항공기 원조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 무렵 미 공군은 서울 김포 비행장에 주둔하고 있던 B - 26 경폭격기 30대를 퇴역시켰다. 한국 측은 미 공군 당국에 B - 26을 해체하지 말고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해당 미 공군부대 관계자들은 “미 정부의 방침은 한국 측에 폭격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라며 도끼로 폭격기를 파괴, 고철로 매각해 버렸다. 이처럼 공군의 항공기 도입 계획이 지지부진하자 태양신문 등 일부 언론은 “미국이 항공기 원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국민 성금을 모금, 외국에서 항공기를 구입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회도 이에 적극 호응, 49년 9월30일 ‘항공기 헌납 운동에 대한 긴급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49년 10월1일 한국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했으며 성금 모금도 더욱 힘을 얻었다. 

49년 말까지 일반 국민들은 물론 공무원·해외 교포 등의 성원에 힘입어 총 3억5000만 원이 모금됐다. 원래 항공기 10대를 구입할 수 있는 2억 원이 모금 목표였으나 1억5000만 원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용기백배한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은 미국 측에 항공기 판매를 요청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미국은 항공기 판매를 거절했다. 우리 공군은 공식 계통을 통한 항공기 구입에 실패하자 비공식 경로로 항공기 구입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49년 말 미국의 민간 항공기 판매사인 에어 캐리어(Air Carrier)사의 일본 대리점을 통해 캐나다제 중고 T - 6 연습기(사진) 도입 계약을 간신히 체결할 수 있었다. 이때 소요된 금액은 총 1억9000만 원(30만 달러)이었다. 한국 공군은 전투기나 폭격기도 아닌 연습기를 구입하는 데도 이토록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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