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일생 <10>공군 L-5 연락기

우리 군 두번째 보유 항공기




L - 5 연락기는 원래 미국에서 민간용으로 사용된 경비행기인 스틴슨 105 보이저(Stinson 105 Voyager)를 군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미 육군항공대는 1941년부터 약 1년간 보이저 경비행기를 테스트한 후 42년 L - 5기로 제식화했다. 이후 3590대가 생산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항공대(현 미 공군의 전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연락기로 기록됐다. 

우리 군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48년 10월 처음으로 L - 5기를 도입했다. 여순사건에 출동한 L - 4연락기의 항속 거리가 322㎞로 짧아 임무 수행에 차질을 초래하자 항속 거리 676㎞인 L - 5기 2대를 미군으로부터 급히 도입한 것이다. L - 4에 이어 우리 군이 두 번째로 보유한 항공기다. 이후 우리 군은 48년 12월 8대를 추가 도입, 총 10대의 L - 5를 보유하게 됐다. 

우리 군의 L - 5기는 49년 제주4·3사건이 일어나자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출동하기도 했다. 당시 제주도에서 L - 5는 군경의 토벌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정찰·지상군 유도·전단 살포·지휘관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49년 2월 태백산 지구 공비 토벌작전에도 출동하는 등 건국 초기 게릴라전과 소요 사태 진압에 공헌했다. 

49년 5월26일 38선에서 남북한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을 때도 출동, 부상병을 후송하고 약품을 수송하는 등 육군의 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L - 4와 동일하게 무장이 없고 이착륙 거리가 짧은 L - 5는 연락기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기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정찰, 경상자 후송, 고립된 부대에 대한 소규모 보급, 통신선 부설, 아군 전투기나 포병을 위한 적 표적 지정, 조난자 구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건군 초기 전투기·폭격기가 없던 한국 공군은 6·25전쟁 중에는 L - 4와 마찬가지로 L - 5 후방 좌석에 국산 15kg 폭탄 2발을 탑재, 후방석의 정비사가 손으로 폭탄을 던지는 등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특히 L - 5기에 육군용 2·36인치 바주카포를 장착하는 기상천외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한형대(韓炯大)·손재권(孫在權)예비역 준장 등 초창기 공군에 몸 담았던 원로들은 “김정렬 초대 공군참모총장의 지시로 L - 5기 좌우 날개에 바주카포를 철사로 묶고 전기 장치를 연결, 공중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는 증언을 남기고 있다. 

L - 5기는 기본 골격만 금속제일 뿐 표면은 캔버스 천으로 돼 있는 등 강도가 매우 약한 항공기다. 바주카포 발사시 후방으로 화염이 나오기 때문에 L - 5에 장착할 경우 캔버스 천에 불이 붙을 위험도 있다. 이렇게 무리하게 바주카포를 장착한 것은 그만큼 당시 사정이 절박했음을 보여 준다. 

미군에서도 55년 퇴역했으며 한국 공군에서는 54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운용하지 않았다. 현재 충북 청원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 야외 항공기 전시장에 L - 5기 1대가 보존돼 있다. L - 4·5기는 결코 성능이 우수하다고 할 수 없지만 초창기 공군의 애환과 눈물이 담겨 있는 대표적 항공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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